5구도선장. 속초에 오랫동안 살았던 주민들만 알 수 있는 단어이다. 아직 속초시의 행정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던 시절 지금의 청호동이 5구였다. 도선장은 나루터와 같은 말. 갯배가 있는 곳을 예전에는 갯배나루터라고 불렀다. 그러니 5구 도선장은 청호동 갯배가 정박해 있는 곳을 뜻한다.
5구도선장. 구 속초수협 옆에 새로 생긴 카페의 이름이다. 진짜 5구도선장 건너편에 위치해 있다. 이름만큼이나 가게도 레트로 하다. 50대 이상이라면 추억의 한 구석을 장식해 있을 장소이다. 낡은 소파, 다소 어지럽게 정리되었지만 그 자체로 디자인이 되어버린 소품들이 그렇다. 주인장의 개성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갯배나루터서 사랑고백 캐리커처
‘5구도선장’ 대표 김도경(59)씨는 10여년 전에 속초로 왔다. 그 전에는 인사동에서 초상화를 그렸다. 왜 속초일까?
“속초에 처음 왔을 때가 28년 전이었어요. 친구하고 갯배나루터에 왔는데 그때의 정취가 오랫동안 고향처럼 남아있었어요. 그때는 다리도 없어서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갯배나루에 대한 인상이 강했던 만큼 속초에 와서 처음 자리잡은 곳도 갯배나루였다. 다리 밑에서 관광객 대상으로 캐리커처를 그렸다. 집도 근처에 마련했다. 애초에 욕심이 없었으니 캐리커처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만했다. 답답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위로처럼 동해바다를 보았다.
관광객 대상으로 캐리커처를 그리면서 느낀 점은 여행이 아니라 관광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무슨 말인지 되물었다. “여행에 대한 정의는 다르겠지만, 저는 여행을 통해 함께 있는 사람을 확인하고, 그 지역의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바라볼 때 제대로 된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갯배에서 관광객들을 보니까, 청호동이 어떤 곳인지, 왜 갯배가 생겼는지 별로 관심 없고 그저 인증샷 하나 찍고, 냉면 한 그릇 먹고 다른 곳으로 가기 바쁘더라고요. 그게 좀 안타까웠어요.”
정보가 발달하면서 가야하고 먹어야할 리스트를 만든 후 그것대로 움직이기 바쁜 관광객을 많이 보았단다. 그래서 캐리커처를 그려줄 때 작은 이벤트를 생각했다. 캐리커처 그리는 공간 벽면에 약 150여개의 사랑 코멘트를 붙여놓았다. 그냥 그림만 그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그림에 사랑의 이야기를 담도록 한 것이다. 관광객 반응이 훨씬 좋아졌다. 수십년만에 처음 사랑고백 한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할머니가 펑펑 울었다. 결혼 4년만에 어렵사리 돈 마련해서 신혼여행을 온 부부도 감동이었다. 캐리커처에 이야기를 담으니 감동이 된다는 것을 보았다.
갯배 정체성과 실향의 음악
그가 가게명을 ‘5구도선장’이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갯배를 타고 건너면 닿는 곳의 옛 이름 5구 도선장을 통해 갯배의 정체성과 이야기를 전달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정확한 위치는 아니다. 하지만 이름에 대한 궁금증이 지역의 정체성과 만난다면 제법 좋은 마케팅이라고 생각했다.
‘5구도선장’은 지난해 7월에 인수하고 2개월간 준비한 후 9월에 개업했다. 그 전에는 시내에 ‘덤’이라는 공간을 마련했다. 덤은 짐캐리 주연의 영화 ‘덤앤더머’에서 차용했다. 속초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공간이었다. 속초의 음악인은 물론 최정남, 이종수 등 전국 언더그라운드 음악인의 라이브 공연을 개최했다. 테이블 2개와 조그만 스탠드바가 전부였지만 소위 마니아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다가 그리웠다. 속초에 정착한 이유의 전부가 바다였고, 갯배였다. 마침 눈여겨보았던 지금의 자리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5구도선장’은 낮에는 커피를 팔고 저녁에는 술을 판다. 낮에는 라틴쪽 음악을 주로 튼다. 갯배 앞을 보며 항상 라틴의 어딘가를 생각했다고 한다. 고향을 떠나온 흑인들이 정착한 곳, 고향 잃은 설움이 특유의 리듬으로 되살아난 라틴음악이 이곳과 맞다고 생각한다. 저녁에는 블루스 계통의 락과 클래식을 들려준다. 의외로 클래식 마니아가 많다고 한다.
그동안 이곳에서 15회 정도의 하우스콘서트를 했다. 속초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음악이 많았다. 지난 18일에는 대구에서 활동하는 블루스 뮤지션 ‘지구’의 공연을 열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앞으로도 이런 콘서트를 한 달에 한번 혹은 두 번 정도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 목표이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손님이 꾸준히 들어온다. 간판을 보고는 무슨 뜻이냐고 묻는 손님도 제법 있다. 그럴 때마다 일일이 설명하는 주인장에게 간판의 뜻을 적은 안내판을 만들자고 말했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엽서를 만들 생각은 갖고 있다고 한다. 화가의 솜씨가 곁들여진 ‘5구도선장’ 고유의 엽서, 이곳에서 만난 추억을 손글씨로 적는 여행객. 속초의 관광이 조금 더 따뜻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김인섭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주인장 김도경씨는 갯배 다리 밑에서 캐리커처를 그리던 화가였다. 그는 젊은 시절 만났던 갯배나루터를 그리워하다 10여년 전 속초에 정착했다.
<5구도선장>은 청호동의 옛 행정명 ‘5구’와 갯배나루터를 합친 이름이다. 실향민의 터전이었던 ‘5구’는 바닷가 모래위에 지은 공간이어서 물이 귀했다. 간판 앞 펌프가 이채롭다.
<5구도선장> 공연무대. 실내인테리어는 대부분 주인장이 직접했다. 그는 이곳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음악인의 하우스콘서트가 정기적으로 열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지난 5월 18일에는 대구에서 활동하는 블루스 뮤지션 ‘지구’의 공연이 열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