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도리원 출신 최춘옥 할머니의 구술 중에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목격담이 있다. 70여년 전인 1946년경 물사람이라 불리던 인어를 직접 눈으로 봤다고 한다. 지난해 9월 15일과 10월 9일, 두 차례에 걸쳐 최춘옥 할머니로부터 인어 목격담을 직접 들었다.
“내가 12살 무렵에 인어를 직접 목격했어. 해방되던 그 다음 해가 될 거야. 영랑동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굽어 돌면 두 번째 집 바깥에 인어를 가둬놨어. 예전에는 그 길이 우차 한 대밖에 못 다니던 길이야. 거기가 신작로지. 지금 속초시청 자리에 있던 집 주인이 고동환이야. 집이 우물정자 모양으로 아주 잘 지었어. 고동환이가 정치망을 했는데, 그 어장에 인어가 들었어. 옛날에는 청어고 무어고 어장에 무진장 들었지.
그때 우리는 인어를 물사람이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생겼느냐 하면 머리가 사람같이 컸어. 머리카락은 새까맣고 아주 길어. 돼지터래기 모양으로 머리털은 아주 억세고 굵어. 암놈이라 젖이 있더라구. 양쪽 젖이 불었는데 인어가 젖을 짜면 뿌옇게 젖이 나와. 눈깨비는 지적지적 나와 있구. 자꾸 바다를 바라보며 우웅우웅하고 울어. 바다로 보내달라고 하는 거야. 키는 좀 작아서 어른 앉은키 만해. 몸 색깔은 거무스레하고.
사람처럼 눈이 있고 손가락이 오리발처럼 붙어 있어. 배꼽은 있고 그 아래 꼬랑지는 물고기야. 배꼽까지는 사람 모양이고, 그 아래는 물고기처럼 꼬랑지가 하나로 되어있어. 윗몸을 움직이면 꼬랑지도 같이 움직였어. 몸에 물고기 같은 비늘은 없어. 그냥 짐승 같았어.
그때 짓궂은 머슴아 학생들은 꼬챙이로 가둬놓은 인어를 막 찔러보고 그래. 그러면 그게 싫다고 우웅하며 바다만 손짓하더라구. 소리가 아주 우렁찼어.
우리집은 도리원(당시 노리1리)이라 걸어서 영랑학교를 다녔어. 원래 가던 길로 가면 5리인데, 인어를 보려고 10리길을 돌아서 다녔지. 어장 그물에 걸린 인어를 잡아다가 맨 바닥에다 망을 쳐서 가둬놨어. 그리 오래 가둬놓지는 않았어. 내 기억에는 한 일주일간 있었던 것 같아.
인어를 가둬놓고는 고동환이가 사업이 하도 안 되어 어디 가서 물어 봤다고 해. 그랬더니 바다에서 그리 중요한 걸 들여다 놨는데, 그걸 빨리 풀어줘서 바다로 돌려보내라고 했다고 하지. 인어를 바다에 내보낼 때 뱃사람들이 막걸리를 먹여 보냈다고 했어. 인어를 바닷물에 넣으니 뱃사람들을 뒤돌아 쳐다보고는 연거푸 절을 하더래.
인어는 내가 직접 목격했고, 인어를 바다에 내보낸 이야기는 우리 아버지들한테 들은 이야기야. 그렇게 인어를 바다에 내보내고 나서 고동환이 집이 사업이 크게 잘됐다고 해.
고동환이는 당시에 큰 갑부였어. 속초에서는 고동환이 갑부였고 내가 시집 온 이 곳 청간에서는 김연수가 갑부였어. 어렸을 때 아버지들이 모여 하시는 말씀이 속초의 고동환이가 부자지만 토성의 김연수가 더 부자라고 했어. 고동환이는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는데 딸만 둘이었어. 딸이 영랑학교 선생을 했지.
당시에도 물사람은 거의 보기 힘들었어. 나중에 우리 남동생이 고등학교 다닐 때 우리 애들 보라고 동물 책을 한권 가져왔는데, 그 책에 인어공주가 나온 걸 처음 봤어. 내가 본 물사람이랑 똑같더라구.
지금 내가 85살인데, 그때 인어를 같이 본 사람들은 이제 다 죽고 없어.”
12살 어린 나이에 학교가는 지름길을 놔두고 일부러 돌아서 등하교하면서 신기한 인어를 봤다는 이야기. 최춘옥 할머니는 물사람을 잡아가둔 장소뿐만 아니라, 고동환씨가 운영하는 정치망 그물에 걸려왔다는 것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고동환은 누구인가? 속초 수산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1930년대 유명 수산사업가로 대포어업조합장 출신이다. 일본어로 발행된 <부산일보> 1935년 6월 14일자 양양 특집판에는 고동환에 대한 소개 글이 나온다. 같은 면 하단에는 ‘속초항 고동환’이라고 광고까지 실었다.
속초 조선인의 대표적 인물 / 대포어업조합장
신흥 속초에서 조선인 제1인자는 누가 뭐래도 조선인 어업가(漁業家) 고동환(高東煥)씨이다. 그는 대포어업조합의 조합장으로서 조합원의 신망을 한 몸에 몰아서 받았을 뿐만 아니라, 수산조합(水組) 초대 총대(總代)를 비롯해 다수의 요직을 맡아 지역 발전에 힘을 다했다. 본 직업은 어업 및 비료제조업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반인반어(半人半魚)의 존재는 많은 이야기 속에 나오지만 그 실체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익히 아는 안데르센 동화 속의 인어공주나 독일 로렐라이의 인어 이야기처럼 그저 설화나 전설, 동화 속에 나오는 허구적인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먼발치로 어렴풋하게 바라본 것도 아니고, 바로 눈앞에서 잡혀온 물사람 인어를 목격했다는 최춘옥 할머니의 생생한 구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반인반어는 아닐지라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바다 속에 인간을 닮은 포유류 동물이 실제로 존재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우리 눈으로 보지 못했다고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서양의 인어전설과는 또 다르게 우리나라에도 바닷가 마을을 중심으로 인어 이야기가 제법 전해온다. 그중 대표적인 인어 이야기의 배경이 바로 속초와 가까운 동해안 간성과 흡곡이다. 유몽인이 쓴 <어우야담>에 그 인어이야기가 전해온다.
<다음호에 계속>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춘옥 할머니
직접 목격한 인어를 그려봐 달라는 요청에 최춘옥할머니가 연필로 그린 인어의 모습.
인어를 가둬 두었다는 속초 동명항 입구 사거리 부근. 사거리 서쪽 도로 두 번째 집 앞에 인어를 가둬놓았다고 한다. 건물 앞 도로와 남쪽 땅은 후에 바다를 매립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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