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청호동 새마을이 생긴 지 올해로 반세기가 넘었다. 새마을 주민들은 해일의 역경을 이겨내고 삶의 터전을 일궜고 그 시절 어린 아이들은 지역의 중추를 이룬 세대가 됐다. 새마을은 그간 크게 변했고 앞으로 또 다른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새마을의 새로운 발전을 앞둔 시점에 새마을의 과거를 돌아보고 변화를 바라는 목소리를 들어 본다.
■새마을의 과거
1968년 10월 24일, 거대한 해일이 동해안을 덮쳤고 청호동 아바이마을에는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속초해수욕장 남문 인근에 ‘새마을’을 조성했고, 불과 두 달 뒤인 12월에 이재민들이 이주했다. 새마을이 조성되기 전 속초해수욕장 남문 인근에는 여느 농촌처럼 몇 가구만 드문드문 있을 뿐이었다. 그런 곳이 해일 이후 순식간에 400세대가 넘는 이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새마을 집들은 관계 당국이 무상으로 제공한 것은 아니었으며 후에 이주민들이 불하를 받았다.
초기에 새마을로 이주한 이들 중에는 아바이마을에서 재해를 당한 이들뿐만 아니라 아야진처럼 다른 지역의 이재민도 있었다. 해일 이재민이 아니어도 교동 같은 인근 동네에서 새마을로 이주해 온 경우도 있다. 이정숙 새마을번영회장의 기억에 따르면 당시 새마을 전체 주민의 3분의 2 정도가 아바이마을 이재민이었다.
새마을에 지어진 집들은 한 채당 약 53㎡(16평)의 규모였다. 이 하나의 건물을 반으로 나눠서 두 가구가 거주했다. 한 가구 거주 공간에는 방이 두 개, 부엌 하나, 작은 마루도 하나였고 난방은 연탄으로 했다. 부엌의 바닥 높이는 전통 가옥처럼 방보다 낮았다. 집 하나에 변소가 하나씩 외부에 있어 이 역시 두 가구가 동시에 사용했다. 식구가 10명에 가까운 세대도 있어 재래식 변소 하나를 열 명이 훌쩍 넘는 이들이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 새마을에는 담과 대문이 없었고 집과 집 사이에는 작은 텃밭들이 있었다. 담이 없기에 집과 집 사이를 가로지를 수 있었고 초상은 마당에서 치렀다.
새마을 아이들은 갓 개교한 조양초등학교에 다녔고 등굣길에는 다 쓴 연탄을 두 장씩 줄로 묶어서 쥐고 가서 질퍽질퍽하고 울퉁불퉁한 학교 운동장을 메웠다. 학교에 가기 전에는 마을 공동 우물에서 물을 길어서 집마다 설치된 ‘물땅꼬’(시멘트 수조)에 물을 부어 그날 집에서 가족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집집마다 구정물통이 있었다. 이는 돼지를 키우는 집에서 돼지 먹이를 걷어갈 수 있게 놓아 둔 거였다. 마을 사람들은 쌀뜨물, 생선뼈 같은 음식물 찌꺼기를 그 통에다가 버렸다.
집집마다 변소에 인분이 쌓이면 이를 퍼서 현재 한신아파트 1동과 2동 사이의 공터에 한가득 모아 놓았다. 거름이 귀할 때라 그렇게 해서 발효된 인분은 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짓는 용도로 활용했다. 그 인분 더미에 아이가 빠지는 일도 있었다.
빨래는 공동우물 옆에서 했고 현재의 하수처리장이 들어선 곳에서 할 때도 있었다. 겨울이면 리어카에 한가득 빨래를 싣고 따듯한 물이 나오는 온정리(溫井里)까지 가기도 했다. 김치를 담글 때에는 배추를 바닷물에 절였다. 배추를 오전에 바닷물에 넣어뒀다가 오후에 꺼내 김장을 했다.
70년대에는 텔레비전이 있는 집이 거의 없었고 ‘카시미론집’에서 1인당 10원씩 내고 주민들이 모여서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볼 수 있었다. ‘카시미론집’은 평범한 가정집이었는데, 가볍고 푹신해서 인기가 있었던 합성섬유 캐시밀론(Cashmilon) 이불이 있는 집이라 그렇게 불렀다. <아씨>, <수사반장>, <여로>, <113수사본부>, <전우>가 하는 날이면 마을 주민들이 ‘카시미론집’ 거실로 몰려들어 북적였다. ‘카시미론집’은 새마을 주민들에게 일종의 영화관이었다.
새마을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어른들의 생업을 거들었다. 이정숙 새마을번영회장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오징어를 손질했고, 집에서 돼지를 키운 양순필 새마을부녀회장은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구정물통을 수거해 집으로 날랐다.
현재 ‘항아리물회’ 가게부터는 넓게 뻘밭이 있었다. 해안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그 해안도로 부근이 대부분 논밭이었고 농지 사이로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듯한 좁은 길이 외옹치까지 이어졌다. 예전 해안의 백사장은 매우 넓었고 속초해수욕장 근처에는 해송이 지금보다 더 큰 면적으로 군락지를 이뤘다. 그곳은 공동묘지이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현재의 속초해수욕장 남문 아래쪽 성황당 앞에 상여를 두고서 공동으로 이용했다.
밤이면 공동묘지가 무서웠지만 낮에는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숨바꼭질과 보물찾기가 공동묘지에서 하는 주된 놀이였다. 공동묘지 부근에는 해당화도 많이 피어 있었다. 해당화 열매는 아이들의 간식거리였다. 해당화 열매를 명주실로 묵주처럼 꿰어서 목에다 걸고 다니며 하나씩 뜯어 먹었다. 감자떡, 막걸리 빵도 아이들의 주요한 간식거리였고 아이들은 모여서 놀다가 메뚜기나 뱀을 잡아먹고는 했다.
예전 겨울에는 집 밖으로 나가기가 어려울 정도로 눈이 많이 내렸다. 눈이 많이 온 덕에 아이들은 눈을 쌓아 이글루처럼 만들어 놓고 그 아래에 굴을 파서 놀았다. 논은 썰매장이 됐고 아이들은 ‘빙구(강원도, 함경도, 평안도에서 썰매를 이르는 말)’를 만들어 타고 놀았다. 새마을의 야산도 아이들에게는 썰매장이었다. 아이들은 비료포대를 타고 비탈길을 내려왔다. 겨울이면 쥐불놀이도 자주 했다. 당시에는 쥐불놀이를 ‘망우리를 돌린다’고 표현했다.(망우리 – 망월, 달맞이)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새마을에는 아직도 옛 모습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①창고와 변소 ②당시 지어진 집 ③골목 풍경(초기에는 집과 집 사이에 담이 없었음) ④굴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