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운이 다하던 구한말, 설악을 비롯한 강원도 지역에서는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민중들의 항거가 있었다. 1894년 제2차 동학농민전쟁 때 강원도 홍천과 인제, 평창, 정선 일대에서 동학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켜 강릉관아를 점령할 정도로 위세를 떨쳤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896년 을미의병. 당시 고성군수와 양양군수가 민용호, 성익현 의병에게 붙잡혀 처형을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으로부터 촉발된 1907년 정미의병. 일제의 침략에 맞서는 의병들의 항전이 설악에서도 격렬하게 벌어졌다.
1907년 8월에 시작된 정미의병은 양양과 간성 일대에서 근 1년 이상 지속되었다. 당시 의병의 활동은 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에 간간히 보도되었다. 당시 대한매일신보에서는 일제 침략에 항거하는 이들을 폭도나 비도라 표현하지 않고 ‘의병’이라고 표현하며 전국적인 항거 소식을 알려 일제의 눈에는 가시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1907년 8월 5일 해산된 강원도 원주진위대의 대봉기를 시작으로 정미의병은 강원도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강릉과 양양, 간성, 인제, 양구 일대의 의병도 원주진위대에서 봉기한 해산 군인들이 중심이 되었다.
■1907년 의병항쟁 신문보도 내용
△양양과 간성군 사이에 소요(騷擾)가 있는 모양으로 사람들이 피난을 하였는데, 그 후에 의병이 읍내에 들어와서 대단히 위험해 일인(日人)들이 해변으로 쫓겨 원산으로 도주하였다.(대한매일신보 8월 23일자)
△8월 28일 의병 1백50명이 간성군을 습격하였는데 일어학교와 우편취급소를 다 파쇄하고 4일을 머물다가 건봉사를 습격하였다. 의병들은 사슴을 사냥하던 산포수들이라 양구와 인제군에 제일 많다고 한다.(대한매일신보 9월 18일자)
△9월 26일 새벽에 양양군 근처에서 의병 40명이 일병을 졸지에 습격한 즉 일병은 퇴각하였다.(대한매일신보 10월 4일자)
△10월 2일에 양양군 근처에서 의병 5백여명이 일병을 에워싸고 4시간이나 접전, 일병은 무수히 곤란을 당하고 탄환이 떨어져 진부역 분파소로 가서 탄약을 가지고 다시 의병과 싸워 의병은 1백여명이 죽고 일본군 경부도 싸움에서 죽고 일병 이등졸은 중상을 당하였다.(대한매일신보 10월 20일자)
△간성군수 김인식이 새로 발령을 받고 부임차 하인 1명을 데리고 가다가 양구군에서 의병에게 포살을 당하였다.(대한매일신보 11월 26일자)
△11월 상순경에 의도(義徒) 6백여명이 양양읍내로 들어와 점거하여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서로 사상이 발생하였다. 이후 1천여명이 다시 읍내로 들어와 양양군의 현산학교와 순검(巡檢)의 건물을 불태우고, 군주사급서기(郡主事及首書記)의 가옥을 파괴했으며, 지금도 주둔 중이다.(황성신문 12월 7일자)
△양양군 근처에 의병 수백명이 지금까지 주둔하면서 때때로 촌에 출몰하여 군량을 조달하고 있다. 군의 분견소에서 이 말을 듣고 가서 접전하였다.(대한매일신보 12월 6일자)
△12월 1일 양양군에서 일본 분견대와 의병이 고을 서북방에서 접전하여 의병이 산골 안으로 퇴거하였다.(대한매일신보 12월 13일자)
△12월 6일 한인 남녀 88명이 양양군에서 의도(義徒)로 인하여 원산으로 피난하였다.(대한매일신보 12월 24일자)
■1908년 의병항쟁 신문보도 내용
△간성군에서 온 사람이 전하는 이야기로 고을에 의병이 많이 주둔하고 있어 그 세가 굉장하여 일병이 소문을 듣고도 짐짓 그곳에 아니 간다고 한다.(대한매일신보 3월 15일자)
△5월 9일 오전 4시 의병 3백명이 양양군에 와서 일본 수비대와 5시간을 접전하였다.(대한매일 5월 14일자)
△5월 15일 양양군 남쪽 6리 지점에서 의병 6명이 강릉 일본토벌대와 접전하였다.(대한매일 5월 23일자)
△7월 23일 간성 서북방 30리 땅에서 의병과 일병이 접전하였다.(대한매일신보 8월 9일자)
△9월 25일 양양군 삼거리 부근에서 김경서의 30명 가량이 일 헌병대와 접전하였다.(대한매일 1908년 10월 15일자)
1907년 11월 장전순사주재소의 보고 문서에는 의병들을 피해 간성군 ‘한도’라는 촌으로 피난을 간 간성군 주사가 거론한 간성읍 출신 의병 7명의 이름이 나온다. 조병묵, 남희필, 정덕삼, 정모(포수), 최기환, 이두엽, 봉학. 아울러 당시 간성읍민은 의병의 내습을 두려워 가재도구를 땅 속에 묻고 있다고 보고했다.
또 다른 일본 경찰의 보고문서에는 양양읍 내에는 3백20명의 의병이 머물러 있고 읍민에게 겨울을 대비해 방한구 준비를 명령하고 읍내 동서쪽에 있는 산 정상에 참호를 파고 일본군의 내습에 방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당시 양양에는 민긍호, 함갑복, 주광섭(주광식?), 이모 등이 인솔하는 의병 5백 명이 주둔하고 있고, 민, 함 두명의 부하는 한병(韓兵)인 것 같다고 전했다. 그들은 강릉수비대 앞으로 일본군이 공격해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취지의 서한을 보낼 정도로 사기가 왕성하다고 전했다. 양양 주둔 의병은 인근 고성읍에 통문을 보내 양양 주둔 의병 1천명을 위하여 피복 등을 만들 것을 명령하고 의병에 가입해 국가 보위에 진력할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1910년 6월 일제의 문서 중에는 인제군 출신으로 의병에 가담했다가 체포된 김원거(金元巨)의 행적이 나온다. 김원거는 1907년 9월 1일부터 의병장 주광식의 부하가 되어 인제, 홍천, 양양, 고성, 회양 등에서 활동하면서 1908년 2월 하순부터 1개월 동안 설악산 오세암을 점거하였다. 일본군에게 패한 이후 이치화(李致化)와 함께 인제, 홍천, 양양 일대에서 항거를 계속 이어나갔다. 그러나 1910년 봄 잠시 집에 귀가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자료를 정리하면 당시 양양 지역에서는 김해석(金海石), 권주길(權周吉), 김명호(金明浩), 김덕여(金德汝), 주광식(朱光植, 주광석 또는 주광섭으로도 나옴), 이운경(李雲景), 김종한(金鍾漢) 등이 의병장으로 활동했으며, 양양의 농민들도 상당수 의병에 가담했다.
구한말 일제의 침략에 맞선 의병들의 활동은 설악권에서는 잊혀진 역사이다. 보다 많은 사료를 발굴해 구한말 구국의 일념으로 활약한 설악의 항일의병 역사를 다시 살려내고 그 숭고한 뜻을 기려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희생이 오늘의 우리를 있게 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엄경선 설악닷컴 대표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1907년 10월 20일자 대한매일신보. 양양군 일대에서 5백여명의 의병과 일본군이 교전했다는 소식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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