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사는 세상은 무엇이 달라졌는지 궁금해서 텔레비전을 켜면 짜증부터 확 올라온다. ‘국민을 위해’라는 가짜 팻말을 들고 일도 하지 않으면서 억대가 넘는 연봉을 받아가는 국회의원 나리(?)들이 벌이는 싸움판으로 온통 도배되는 뉴스 프로그램이 보기 싫어 채널을 돌린다. 이번에는 일부 지각없는 연예인들이 벌인 마약, 성상납, 권력기관의 유착 등으로 얼룩진 썩은 양파 같은, 또 다른 세상의 일로 온통 난리굿이다. 짜증을 넘어 이제는 화가 난다.
그래서 리모콘을 한참 올리다 보면 바둑채널이 나온다. 이 곳 역시 싸움판은 맞지만 격이 다르다. 규칙이 있고, 매너가 있고, 책략이 있되 정석이 있으며, 승패가 갈라지지만 깨끗한 승복이 있는 싸움판이다. 이번에는 졌지만 다음에는 나의 노력 정도에 따라 한 번의 승리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하는 공정한 싸움판이다. 그런데 바둑을 두는 선수들의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 집중해서 보기에는 너무 지루하다. 다시 채널을 올린다. 이번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야생 동물의 세계다. 적자생존의 원칙과 유전자 번식의 본능이 가장 우선시 되는 세상이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이곳 역시 싸움판이다. 아니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가장 치열한 생존의 전쟁터다. 이곳의 유일한 원칙은 어떻게든 살아남기다. 그곳에도 공평한 규칙이 주어진다. 표범은 야생동물 중 가장 빠르지만 오래 달릴 수가 없어 사냥에 실패한다. 사자는 가장 무서운 발톱과 송곳니와 힘을 가졌지만, 아주 빠르지는 못하다. 그래서 포식자들의 사냥 성공률은 30%가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힘이 센 동물은 새끼를 낳는 숫자도 적고, 포육기간도 길어 쉽게 무리의 수를 늘리지 못한다. 반면에 약한 동물인 영양이나 얼룩말은 달리기 속도가 빠르고, 무리의 번식능력이 뛰어나 잡아먹히는 만큼 무리의 수를 쉽게 복원해서 유지해 나가는 능력이 주어졌다. 적어도 그 야생의 세계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세상처럼 온통 기울어진 운동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볼 것 없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만난 모 방송국의 ‘내일은 미스트롯’이라는 프로그램은 참으로 신선했다. 1만2,000명이 넘는 지원자 중 추려낸 100명의 참가자들에게 미션을 주고 트로트 경연을 펼치는 과정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그대로 재연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내일은 미스트롯’ 같은 프로그램이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가수로 데뷔는 했으나 그 동안 빛을 보지 못한 기성가수로 이루어진 현역부터, 결혼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마미부, 생업 때문에 가수의 꿈을 잠시 접었던 직장인부, 자신의 미래를 건 대학부와 고등부로 구성된 도전자들의 면면이 흥미롭다. 그동안 트로트라는 장르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던 다양한 사연을 가진 참가자들이 무대에 올라 끼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출발선이 똑같은 운동장을 마련해 준 기획자의 의도가 아름답다. 둘째, 오디션 경연방식에 패자부활전을 마련해서 너무 긴장한 탓에 실력을 다 보이지 못한 실수와 연습부족이나 컨디션 난조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도전자들에게 한 번의 기회를 다시 준다는 것이다. 셋째, 혼자만의 경쟁이 아니라 팀 미션 수행과정을 통해서 협동과 배려의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한 과정을 그대로 보여줘서, 시청자가 재미와 교훈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기획된 것도 매우 좋은 의도라는 생각이 든다. 넷째, 심사위원들의 구성도 전문가인 마스터 그룹과, 관객 평가단, 시청자의 온라인 투표평가가 합산되어, 최대한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가진 심사방법도 마음에 든다. 이런 이유로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 필자도 ‘내일은 미스트롯’ 시간이면 즐거운 마음으로 텔레비전 앞에 자리를 잡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재미있는 것은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반전에 반전, 그리고 또 반전이 일어나는 모습에서 우리는 대리만족을 느끼면서 ‘다시 나도 한 번’ 도전 해볼까? 그런 마음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다. 공공매체가 시청자들의 짜증 유발자가 아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내일의 세상이 보다 평평한 운동장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김종헌
시인·설악문우회 회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