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김종갑 사장이 산불발생 20일 만인 지난 24일 고성과 속초를 방문, 이재민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이날 오전 고성군 토성면사무소와 속초의 한전 규탄 집회장을 방문해 “한전이 관리하는 설비에서 산불이 시작됐다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경찰 조사를 성실히 받고 있다. 형사적 책임과 상관없이 민사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배상부분은 경찰의 수사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본 후 중앙정부와 지자체, 이재민 비대위(이하 비대위)와 협의해 결정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이날 아침부터 토성면사무소에서 나와 김 사장을 기다리던 이재민들은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항의에 나섰다. 이재민들은 “이번 산불은 한전 책임이 명백하다”, “이재민 보상책을 가지고 왔느냐”, “대책을 제시하라”고 외치며 격양된 반응을 보였다.
김 사장이 “수사 결과에 따라 한전의 책임 범위가 달라지고 명확해질 것이다. 일단 수사 결과가 나와야 배상이 될지, 보상이 될지 알 수 있다”며 말을 아끼자, 이재민들은 “누가 봐도 한전의 과실인데 배상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김 사장은 토성면사무소에서 이재민들에게 사과한 후 토성농협에 마련된 ‘고성 한전발화 산불피해 이재민 비상대책위원회’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비대위 위원들과 30분간 비공개로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에서 한전은 비대위가 한전을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하는 일이 없도록 대화를 통해서 피해 보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비대위에 밝혔다. 한전은 이를 위해 사업총괄부사장을 책임자로 하는 실무협상팀(TF)을 속초지사에 상주하도록 하고 고성과 속초를 오가며 협상에 나설 계획이다.
노장현 비대위 위원장은 “산불 발화의 장본인이 한전이기 때문에 한전이 모든 책임을 져야한다”며 “협의 과정에서 우리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으면 즉각 투쟁으로 돌입해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한 상경투쟁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이날 고성속초산불피해공동비상대책위원회가 한전 속초지사 앞에서 개최한 한전 규탄 집회장도 방문해 이재민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이재민들은 한전의 산불책임 인정과 성의 있는 보상을 요구했다. 그는 인명피해가 있은 것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하고 적절할 때 유족들을 뵙고 사과와 위로도 드릴 예정이라고 했다.
이재민들은 산불이 한전 설비에서 발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이 있느냐고도 따졌고, 김 사장은 “저희들은 최선을 다했다. 초속 37m의 강풍을 견디도록 설비를 했다. 그러나 산불이 난 만큼 여기는 지금보다 안전기준을 더 높여야 된다고 생각하며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재민들은 “불나기 전에 했어야지 불 난 다음에 하려고 하느냐”고 항의했다.
산불 책임을 둘러싼 산불피해공동비대위와 한전 측의 공방은 자리를 이동해 한전 속초지사 회의실에서 진행된 간담회에서도 계속됐다. 비대위측은 한전의 산불 발화 책임 인정과 책임 있는 보상을 주장했지만, 한전은 현재 경찰에서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뚜렷한 답변을 피해 비난을 사기도 했다.
한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지난 18일 감정결과 산불 원인은 특고압 전선이 바람에 떨어져 나가면서 발생한 ‘아크 (불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고명진·우지현 기자
김종갑 한전 사장이 고성군 토성면사무소 2층 회의실에서 이재민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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