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날씨가 많이 따듯해진 4월 중순, 속초시 근로자종합복지관에 위치한 동방검도관에 열 명 가까운 어르신들이 검도에 열중하고 있다. 이 어르신들의 평균 나이는 80세. 최연소자는 69세이고 가장 고령인 이는 올해 구순이다. 그런데 어르신들의 인상과 몸동작을 보면 평균 나이 80세가 맞는지 의문이 든다. 여러 번 죽도를 내려치고서도 숨소리가 그리 거칠지 않다.
동방검도관의 이성근 관장은 2014년 7월부터 어르신 검도반을 무료로 운영 중이다. 수업에 나온 이들 중 매년 한두 명씩 꾸준히 수련을 이어가 현재는 아홉 명 정도가 매주 월·수·금요일이면 수업에 나오고 있다. 젊은 사람들의 경우 검도를 시작하고 1년 후 열 명 중 한 명 정도가 남지 않는 데 비해 어르신 반은 이보다 약간 더 높은 정착률을 보인다고 한다.
어르신들의 수준은 개인별로 차이가 크다. 여든셋인 고광배 어르신은 검도 2단에 조선세법 초단이고, 올해 일흔여섯의 조찬문 어르신은 검도 초단에 조선세법 2단이며, 이병철 어르신은 검도 1급이다. 참고로 조선세법은 신라 때부터 전해 오는 우리 고유의 검법을 말한다. 이 외 다른 어르신들은 경력이 4년 정도 되는 경우도 있고 시작한 지 한 달 된 초보자도 있다.
어르신 검도반에는 특이한 점이 한 가지 있다. 검도는 엄격한 예절을 요구하는데 어르신 반에서는 이보다도 건강을 우선순위에 둔다. 검도는 상대에게 예의를 표하는 것을 중시하며 보호구를 착용할 때에는 무릎을 꿇고 해야 한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검도 수업에서는 무릎을 꿇는 일은 피하고 있다. 그리고 쉴 때에는 자유롭게 서 있을 수 있으며 가끔씩 다리를 뻗고 앉을 수 있다. 무릎을 꿇거나 양반다리를 하게 되면 무릎과 허리, 발목에 무리가 가는데 고령의 나이에 이렇게 하면 몸이 좋지 않아져 검도를 오래도록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젊은 층의 수업과는 다르게 운영하는 것이다.
“검도를 하면서 동작이 빨라졌어요”
어르신 검도반에서 가장 열성적인 사람으로 평가받는 조찬문 어르신은 월·수·금에 이뤄지는 어르신 검도반 외에도 매일 오전 7시면 도장에 나와서 검도 연습을 하고 있다. 자택에서도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고 한다. 평소에 약주를 즐긴다는 조찬문 어르신은 검도가 술을 깨는 데에도 좋다며 자신만의 해장 비법을 자랑한다.
공무원 퇴직자인 고광배 옹은 총 15년의 검도 경력자로 젊은 시절 검도를 하다가 몇 해 전 다시 죽도를 잡았다. 현재 궁도, 탁구, 등산, 게이트볼, 골프 등등 여러 운동을 병행하며 건강을 관리하고 있는데 검도에 대해 묻자 그 장점을 여러 가지 열거하며 설명을 이어간다.
“나이든 이들이 모여서 화투를 친다고 한참 앉아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건강에 좋지 않아요. 검도는 노인에게 벅찬 운동일 수 있어요. 하지만 검도를 하면 순발력이 좋아지고 몸이 민첩해져요. 의지만 있다면 노인도 충분히 검도를 할 수 있습니다.”
고광배 옹은 주변에 검도를 적극 권하고 있다. 고 옹의 권유가 계기가 돼 팔순의 한응범 옹도 두 학기째 검도를 배우는 중이다.
“제가 검도를 한다고 하면 다들 그 나이에 어떻게 하냐고 놀라지요. 저는 검도를 하고 나서 동작이 좀 빨라졌어요. 요즘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젊을 때 검도를 시작하라고 얘기하고 있어요.”
한응범 옹도 고광배 옹처럼 어느새 검도 전도사를 자처하게 됐다.
일흔아홉의 김경숙 어르신은 이 반에서 유일한 여성이다. 검도를 배운 지는 오래되지 않지만 젊어서부터 검도를 좋아해 혼자서 검도 시합을 구경하러 다닌 일도 많다고 한다.
“절도 있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검도를 좋아했죠. 그래도 직접 배우지는 않고 있다가 일흔이 훌쩍 넘어서 시작했어요.”
김경숙 할머니는 얼마 전 큰 수술을 두 번 받았지만 검도가 좋아서 다시 수업에 나오고 있다.
아흔의 이기환 옹은 청력이 좋지 않다. 그럼에도 검도 수업엔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니는 중이다. 평소 노학동 집에서 텃밭을 가꾸고 있으며 도장에 나오는 날이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이 옹은 허리가 굽은 사람을 보고서 운동을 결심했다. 나이가 들면 허리가 약해지지만 이기환 옹은 이런 모습이 너무 싫었다고 한다. 검도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하기에 이 옹이 찾던 이상적인 운동이다.
어르신들은 저마다 검도의 장점을 몇 가지씩 늘어놓는다. 어르신들은 신체 건강이 개선된 것에 더해 정신 건강이 좋아진 것을 공통으로 짚는다. 그래서인지 참여자들은 검도를 더 일찍 시작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한다. 여든여덟 미수(米壽)의 송석환 옹은 이렇게 얘기한다.
“동작이 제대로 안될지는 몰라도 건강에는 자신감이 붙었어요.”
어르신 검도반 참여자들은 검도를 하는 것, 검도를 하나의 운동으로서 즐기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이성근 관장(첫째 줄 가운데)과 동방검도관 어르신 검도반.
검도를 수련 중인 동방검도관 어르신 검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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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이성근 동방검도관 관장
“검도는 아흔에도 할 수 있습니다”
- 어르신 검도반을 운영한 지 5년이나 됐다.
△ 처음에 12명이 시작해서 1년 지나니 두세 명 정도만 남아 그만두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열심히 하시는 어르신들을 두고서 관둘 순 없었다. 검도를 시작할 땐 몸이 뻣뻣해서 제대로 못 할 것 같은 분도 1년쯤 후에는 동작이 괜찮아지는 것을 보고서 가르친 보람을 느끼며 계속 하게 됐다.
- 검도가 어르신들에게 어떤 면에서 좋은가?
△ 근력이 약해진 어르신들의 신체 단련에 유익하고 이를 통해 어르신들의 신진대사가 개선된다. 그리고 검도의 동작을 익혀야 하기에 생각을 하게 함으로써 치매를 예방한다.
- 어르신 검도반에서 중점을 두는 점은?
△ 부상 예방이다. 한 번 다치면 검도를 한참 동안 못하기에 수시로 어르신들의 건강을 확인하며 수업을 진행한다.
- 앞으로 계획은?
△ 일흔 노인이 구순 어르신이 검도를 하는 모습을 보고서 놀라는 경우가 많다. 어르신 검도반을 통해 아흔이 넘어서도 검도를 할 수 있음을 널리 알리고 싶다. 또한 검도를 할머니들에게도 전파하고 싶다.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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