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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호 인근 화마와 싸운 현장
“불똥이 강풍에 휙휙 날아다니며 옮겨 붙어…도깨비불 실감”
등록날짜 [ 2019년04월15일 14시53분 ]

지난 4일 토성면 원암리에서 오후 7시 18분쯤 발생한 불이 영랑호 주변으로 광범위하게 밀어 닥치기까지는 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영랑호 인근에 위치한 주요 시설과 민가에서는 이 불에 맞서기 위해 밤새도록 사투가 벌어졌다.

환자 대피에 헌신한 속초의료원 직원들
화재 발생 시 112명의 환자가 입원해 있던 속초의료원에서는 불길이 코앞까지 와서 짚은 매연이 환자들을 위협했지만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여기엔 병원 의료진의 신속한 대처가 있었다. 김진백 원장이 오후 8시가 되기 전 전 직원을 비상소집했고 환자와 가족들에게 마스크를 지급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밤 10시쯤에는 환자를 자택과 대피소, 인근 병원으로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병상 환자 대피 시 승강기 사용에 시간이 오래 걸려 애를 먹었고 직원들이 들것으로 환자들을 옮기기도 해서 대피 시간만 해도 두 시간이 훌쩍 넘었다. 이후 직원들과 의료원 내 자위소방대원들은 눈앞에 들이닥친 불을 끄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여 불은 새벽 2시가 되기 전 병원 앞에서 잦아들었다. 밤새도록 화재에 대처한 의료원 직원 중 화재로 자택을 잃은 사람이 3명이나 돼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목조건물이 무사한 영랑호 보광사
영랑호 보광사에는 속초의료원보다 불길이 먼저 들이닥쳤고 경내가 온통 불바다가 됐다. 영랑호 보광사 김규환 사무장은 제173호 강원도 문화재자료 보광사 현왕도를 비롯한 문화재들을 속초시립박물관으로 미리 옮긴 후 주지 스님과 화재에 대처했다. 소방차 출동이 어려워 보광사에서는 살수차 5대를 따로 불렀는데 살수차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찰 종무소 건물 뒤 창고에 불이 났고 이는 곧 종무소로 옮겨 붙었다. 이후 대웅전 우측 야산에 불이 났으며 대웅전 앞 잔디밭에도 불이 붙어 7명의 인원으로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 처했고 결국 사찰 입구 쪽 창고와 사무실은 전소됐다. 불탄 사무실에는 가로 7m, 세로 3m에 달하는 대형 탱화가 있었는데 이는 꺼내지 못해 건물과 함께 불탔다. 이 탱화는 20년 전 제작 당시 5,000만원 정도였고 지금은 다시 제작하려면 억대가 넘어간다고 한다. 필리핀 어린이들에게 기증하려고 창고에 보관 중이던 아동복과 학용품도 전량 소실됐다. 이 건물들이 타기 전 주지 스님과 김 사무장은 비좁은 곳에 배치된 LPG 가스통을 유독가스를 마시면서도 목숨을 걸고 뽑아내 더 큰 화를 막았다. 대웅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목조 건물에는 불이 붙지 않았다. 김 국장은 “불똥이 강풍에 옆으로 휙휙 날아다니며 옮겨 붙어 도깨비불이란 말을 실감했다”면서 “아직도 담배 연기만 봐도 놀란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화마로 물탱크마저 불타서 며칠 동안 불편을 겪었던 영랑호 보광사에서는 현재 화재 피해를 입은 이들을 돕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보광사 신도회에서 쌀 50포대(500kg)를 이재민을 위해 속초시에 기증했으며, 보광사 문덕장학회와 (사)굿월드자선은행은 속초시의 협조를 받아 화재 피해를 입은 가정의 아동들에게 1,000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영랑호리조트 직원들 밤새 전쟁
영랑호리조트는 10명 남짓한 직원들이 밤새도록 전쟁을 치렀다. 리조트의 직원들은 화재 당일 손님을 대피시키고 3개의 긴 호스를 이리 저리 옮기며 영랑호리조트 본동 고층 건물 주변으로 계속 물을 뿌렸다. 밤 11시부터는 불길이 사방으로 거세졌고 이후 도망가려고 해도 건물에서 벗어나기 힘든 위기에 빠졌다. 오전 1시를 넘어서며 강풍이 잦아든 후에는 인근 지역 진화에 적극 나섰으나 오전 3시를 지나며 바람이 다시 강해져 큰 애로를 겪었다. 직원들은 내내 쉬지 못하다가 4시경에는 잠시 숨을 돌리려고 했는데 레스토랑과 식당이 있는 영랑호리조트 별채 건물에 불이 나 다시 바빠졌다. 진화 중 리조트의 시설 담당 이종군 과장이 유독가스를 많이 마시고 이마를 다쳐 며칠이 지난 현재도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는 5일 야간이 돼서야 병원에 입원했으나 화재 뒷수습을 위해 9일까지 병원에서 외출을 나와 오른손에는 링거 주사를 부착한 채로 업무를 봤다.
 영랑호리조트 골프장은 장비와 카트 등이 불에 타서 향후 최소 한 달 이상은 영업이 불가능한 상태이나 리조트 본동 건물은 8일부터 정상 영업 중이다. 지난 10일 10% 정도의 객실만 차 있어 예년 벚꽃 시즌 70~80%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 한다. 영랑호리조트 박수동 총지배인은 “화재 피해가 컸지만 타워 건물이 무사하고 대다수가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다. 화재 대처 과정에서 건강을 해친 직원들이 어서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췄다.

진로교육원 잔디밭까지 불로 뒤덮여
강원진로교육원에는 화재 당시 진로상담·체험교육을 위해 춘천 봄내중학교 학생과 교직원 179명이 2박 3일 일정으로 머무르고 있었다. 오후 8시경 강원진로교육원 전 직원에 비상소집령이 내려졌고, 30분 후 봄내중 학생들은 교육원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속초양양교육지원청으로 이동했다. 봄내중 학생들이 타고 온 버스는 춘천으로 돌아가고 없었지만 대형버스 섭외는 빠른 시간에 이뤄졌고 봄내중 학생과 교직원들은 인원 확인을 거쳐 오후 10시쯤 모두 무사히 춘천으로 떠날 수 있었다. 교육원 직원들은 그 사이 건물과 주변에 소방호스로 물을 뿌려 놓았지만 불길은 빠르게 다가왔다. 불이 건물에 붙진 않았지만 교육원 내 잔디밭을 뒤덮었고 수목으로 둘러싸인 교육원 주변에 온통 불이 나서 위험한 상황이 이어졌다. 국민은행연수원과 교육원 사이에 맞물려 있는 비탈에서 불길이 거셌는데 매연이 유난히 많이 나서 진화가 힘들었다. 하지만 40여 명 직원들의 쉼 없는 노력으로 새벽 2시 30분경에는 큰 불이 어느 정도 꺼졌고 이후에는 오전 10시까지 잔불을 정리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진화 과정에서 무거운 호스를 옮기던 직원 한 명이 넘어져 뇌진탕 증세를 보여 병원에 입원했지만 9일 오전 퇴원했다.
화재가 난 지 며칠이 지났지만 영랑호 주변은 지금도 그날의 흔적이 가득하다. 영랑호 주변의 빌라동 콘도 27개동이 불탔고 습지생태공원의 넓은 면적에는 불에 탄 가지들이 앙상하게 남아 있으며 화랑도체험관광지의 건물 한 동도 흉하게 변해 있다. 예년 이맘때면 벚꽃이 퍼져가는 관광지에 지금은 그을음이 날리고 탄내가 가득하다.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보광사 경내 입구 쪽 건물들이 전소됐고 뒤편 야산의 상당 부분이 불탔다. 한겨울에도 녹색이던 소나무 잎들이 화재 이후 누렇게 변했다.
영랑호 보광사 주지 스님과 함께 화재에 대처한 김규환 사무장이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던 화재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영랑호리조트 건물을 밤새 지키며 화재 진압에 앞장선 박수동 총지배인(우측 세 번째), 이종군 과장(우측 두 번째) 등 영랑호리조트 직원들. 이종군 과장은 병원에 입원했다가 사고 수습을 위해 링거액을 오른팔에 찬 채로 출근했다.
영랑호에 벚꽃이 폈지만 군데군데 불탄 펜션들이 사고 당시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강원진로교육원과 국민은행연수원 사이에서 난 불은 매연이 심해 진화가 어려웠다.
 

이광호 (campin@hanmail.ne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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