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강풍이 너무도 심해 예사롭지 않은 날이었다. 그 전날인 3일 방범대가 중도문에서 광케이블이 끊어진 것을 발견한 터라 그는 강풍에 전선도 끊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의 불길한 느낌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4일은 어머니 제삿날이라 그는 목욕재계를 위해 저녁에 대중목욕탕에 있던 중이었다. 오후 7시쯤 방범대원으로부터 설악자생식물원 가까운 곳에서 나무가 뿌리째 뽑혔다는 연락을 받았고 20분쯤 뒤에는 원암리 쪽에서 불이 붙었다고 전화가 왔다. 다시 10분 뒤 산불이 장천마을로 넘어갈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때 차를 몰고 미시령 쪽으로 가고 있던 그는 즉시 자율방범대 전체에 비상을 내린 후 차를 돌려 용촌리로 향했고 스피커로 대피 방송을 시작했다. 8시에 속초고로 들어가서 기숙사 학생들을 대피시키라고 전했지만 학생들을 옮길 교통수단이 없어서 학교 관계자들도 당황했고 김 대장은 속초고총동창회에 전화를 걸어 차량을 섭외했다. 그는 이때쯤 자신이 운영하는 용촌리 유리가공 공장에도 불이 덮칠 거라 예상했지만 공장을 포기하고 화재 대비를 위해 분주히 뛰어다녔다.
오후 9시쯤 용촌 일대에 불이 붙었고 불은 어느새 장사동까지 넘어갔다. 그는 이 상황을 보자마자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영랑교를 막고 차들이 시내 쪽에서 장사동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교통을 통제했다. 오전 1시 반에는 금호동 서울대명2차아파트 인근에 불이 붙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가서 주민들과 함께 화재를 진압했다. 그리고 새벽 내내 시민들의 대피를 안내하고, 교통통제를 하며 화재 상황을 점검하면서 속초 곳곳을 누볐다. 4시경에는 영랑호 부근에서 다시 불이 붙었다는 소식을 접한 후 속초시생활체육관으로 가서 장천마을 주민들이 귀가하지 못하도록 통보했다. 이후 오전 내내 시내를 돌며 잔불 감시에 힘을 쏟았고 그러느라 그는 오전 10시가 돼서야 자신의 공장에 가볼 수 있었다.
“청해학교 쪽에 불이 붙을 때 어떤 이들은 용촌 쪽으로 불이 안 넘어 간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강풍 때문에 불이 순식간에 번질 거라 예상했어요. 불씨는 마을 하나를 건너뛰고 멀리 넘어갈 수 있어요. 그래서 미리 조치하기 위해 노력했죠.”
그는 이번 화재로 자신의 유리공장을 잃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그의 표정이 아주 어둡진 않다.
“이번에 화재 대응이 신속한 편이었어요. 비상대피문자도 빨리 발송됐고요. 그리고 소방관들은 화재저지선을 잘 구축했고 경찰과 공무원, 각 기관 종사자들은 사람들이 잘 대피할 수 있게 했어요. 의용소방대와 방범대도 고생이 많았죠. 이분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최악의 참사가 났을 겁니다.”
화재 시 각계의 대처가 대체로 잘 이뤄진 사실, 그리고 본인이 이번 화재 상황에 헌신한 것에서 오는 뿌듯함이 속초 자율방범의 리더인 김용태 대장의 쓰린 마음을 아주 약간은 풀어주는 듯 보인다.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산불로 불에 탄 속초시 자율방범연합대 김용태 대장의 유리가공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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