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 때우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던 때가 있었다. 음식의 맵시는커녕 맛까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먹기를 주저 않던 불과 30여년 전의 일이다. 딱히 탐식할만하거나 식탐을 부릴만한 음식이 다양하지 않을 때인지라, 당연히 그래야했고, 또 당연히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때를 지나 먹을 것이 풍족해지다 못해 별의 별 음식들이 넘쳐나는 지금은 한 끼 먹는 것이 오히려 노동이 되어 버릴 만큼 고민거리가 되어버렸다. 인터넷은 물론 TV채널마다 군침이 뚝뚝 떨어지게 먹음직스러운 음식과 맛집 소개가 수도 없이 넘쳐 나니, 낮선 길을 따라 맛집을 찾아가는 탐식의 흥미와 즐거움이 오히려 노동이 된 지금이다.
등급으로 구분되는 음식과 맛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다 먹어보지도 못할 음식들을 찾아 헤매고, 그런 음식들은 여전히 혀끝을 현혹하느라 정신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여기에 달콤 살콤한 음식으로 뱃속이 두둑해질 지경인데도 음식과 맛에 대한 타박까지 한 마디쯤은 하고 나와야 직성들이 풀리니, 이건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밥상을 난탕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기엔 요즘 유행하는 소위 맛집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밥상에 대한 기본이 되어버렸다. 잘 차려진 밥상 앞이라도 나름의 주관적 비판이 곁들여져야 무능한 입맛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의식을 치르는 셈이다. 밥 한술 먹는 것이 이토록 야단법석이니 당장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닐 터인데, 밥 한 끼 먹기가 녹녹치만은 아닌 것이 요즘의 유행이다.
세상에는 가장 맛있는 음식도, 가장 맛없는 음식도 없다. 세치 혀끝으로 오물거리며 먹을 때, 오직 직관적인 감정에 의해‘맛있다’와 ‘맛없다’를 느끼게 되는 것일 뿐, 사실은 음식 맛에 대한 극찬은 굳이 필요하지가 않다. 입에 살살 녹는 한우고기보다 돼지고기를 더 좋아는 입맛이 있고, 잣을 넣고 대추를 넣고 보양식으로 지은 밥보다, 감자 한 톨 깎아 갓 지어 낸 밥을 더 좋아하는 입맛이 있듯, 음식의 맛이란 어떤 음식이든 내 입맛에 딱 맞아 떨어질 때가 가장 맛있을 뿐이다. 여기에 속이라도 든든하게 먹고 난 뒤에 밀려오는 흐뭇한 즐거움까지 곁들여 지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맛집’이라는 등급의 구분도 사실상 필요치 않는 것이다.
‘도문대작’에 숨은 음식의 의미
다른 한 편으로는 수도 없이 넘쳐나는 음식 중에서도 가격대비 맛을 따지고, 품질을 따지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듯, 단순하게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이왕이면 맛있는 음식을 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토록 음식이 넘쳐나는 요즘에야 어디 조선시대 사람 허균이 쓴 ‘도문대작’의 뜻처럼 음식을 귀하게 여겨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움을 얼마나 느낄 수 있을까. ‘푸줏간 앞을 지나가면서 입맛을 다신다’는 뜻으로 실제로 먹지는 못하고 먹고 싶어서 먹는 흉내만 내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는 것을 비유하는 ‘도문대작’에는 조선의 온갖 별미 음식을 소개하고 있는데, 음식의 종류가 무려 134종이나 기록되어 있다. 가난한 집안이었지만 사방에서 나는 별미를 예물로 바치는 자가 많아서 어릴 때부터 온갖 진귀한 음식을 고루 먹을 수 있었고, 잘사는 집에 장가들어서도 산해진미를 다 맛볼 수 있었던 허균의 입맛이었다. 하지만 불교와, 천주교에 심취했다는 이유로 떠난 유배지에서 쌀겨마저도 부족하여 밥상에 오르는 것은 상한 생선이나 감자ㆍ들 미나리 등이었고 그것도 끼니마다 먹지 못하여 굶주린 배로 밤을 지새울 때면 언제나 지난날 산해진미도 물리도록 먹어 싫어하던 때를 생각하고 침을 삼키곤 하였다고 회상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먹어보고 싶다고 했던 허균의 입맛을 생각하면 어느 때인가 지금의 음식들이 사뭇 그리워질 때가 있을까.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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