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이웃이 며칠 전에 손자를 보았다. 첫째가 손녀여서인지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은근히 손자를 무척 바랐던 모양이다. 며칠 자랑하더니 어제는 식사 중에 슬그머니 내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홍조 띤 얼굴로 부끄러워하기에 흔히 하는 이야기로 “손주 자랑하려면 돈 내고 자랑하라”고 했다. 갓난이 손자 사진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예상이 빗나갔다. 손자 이름으로 어떤 것이 좋겠냐고 5개 중에 하나를 골라보란다.
본인 마음에 드는 이름과 가족들이 좋아하는 이름이 서로 달라서 결정을 못하고 있다고 조언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름을 누가 지었나요?” 물었더니 용하다는 작명가한테서 20만원을 주고 지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25만원을 요구했는데 단골이라 5만원 깎았단다. 사주팔자를 보고 지은 것인데, 이 이름은 가벼워 보이고, 저 이름은 흔한 것 같아서 망설여진다고 했다. 그래서 필자가 대답하기를 아들부부의 의견에 맡기라고 했다.
그러니까 돈은 작명가가 받고, 결정은 필자가 해준 셈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필자는 신앙적 관점과 함께 생각이 분명하다. 자녀 이름은 반드시 부모가 지어주어야 옳다. 인성시간에 대학생들에게도 교육한다. 어떻게 생면부지 점술가에게 생명 같은 가장 소중한 자식의 이름을 맡기는가? 열 달을 태중에 품고 산고로 낳은 자식은 부모가 가장 잘 안다. 작명가를 찾는 이유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솔직히 그가 아이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
이처럼 세상 부모는 자식에게 가장 좋은 이름을 지어준다. 그리고 그 이름에 걸맞은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한다. 부모가 붙여준 이름에는 축복이 담겨 있다. 예외가 없다. 필자도 학창시절 ‘목재’라고 놀림을 많이 받았다. 농담 삼아 이름 따라 언젠가는 철물점을 한 번 해보겠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선친께서 붙여주신 한자 뜻은 ‘밝을 철, 있을 재’이니 “빛 가운데 거하라”는 의미로 재해석하고 산다. 성경에는 계시에 의해 변경된 이름이 여럿이 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야곱이 이스라엘로 그래서 국가이름이 되었다. 그때마다 그들의 생애에 극적인 전환점이 있었다. 인생의 삶이 전면적으로 바뀌는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민주화 시절에는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지도자의 이름을 ‘DJ’, ‘YS’, ‘JP’ 등으로 영문이름 첫 글자를 따서 이니셜로 불렀다. 이후 정권부터는 대통령을 ‘쥐’, ‘닭’ 등으로 폄하하여 별명으로 불렀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인터넷에서 동물이름 대신 ‘문재앙’으로 부른다. 연관검색어로도 분명히 검색창에 뜬다. 연관검색어는 빅데이터에서 버즈워드(Buzz Word)로 유사검색어의 집합체이다. 어찌되었거나 가장 무겁고 침울한 별명이다.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대한 우려를 최빈국으로 추락한 베네수엘라에 견주어 하는 말이다.
이름도 소중하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몸도 소중하다. 군인의 몸은 국가의 몸이다. 그래서 강의시간에 자신의 허리를 만져보게 하고 무엇이 있느냐고 묻는다. 허리에 만대에 이를 후손이 들어 있다고 깨우쳐준다. 그러니 자기 몸은 자기 것이 아니라 후손의 것이라고 강변한다. 제발 담배 피고 술 마시고 몸을 망가뜨려 후손에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하는 경거망동을 삼가라고 가르친다. 조물주가 흙으로 사람을 빚고 생기를 코에 불어 넣어 생령이 되었다. 그 증거로 코에서 생기를 거두면 죽는다. 천하장사도 호흡이 끊어지면 시체가 된다. 그런 콧구멍을 담배연기 내뿜는 굴뚝으로 임의 용도 변경해서야 되느냐고 일침을 가한다.
최근 ‘버닝 썬’과 관련하여 예명 ‘승리’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거론되고 있다. 그의 이름과는 반대로 오명이 되고 있다. 우리는 과연 자신의 이름값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가? 인생의 소풍을 마치고 귀천하는 날, 비록 몸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지만, 천상의 나팔소리와 함께 자신의 이름이 크게 불려 지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
최철재
경동대 교수·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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