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공터에서 누군가가 제법 크게 소각을 하고 있다. 연기는 사방으로 날린다. 그런데 근처 밭에서 일을 하는 또 다른 사람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본인의 일에 집중하고 있다.
민가의 소각 행위는 가을·겨울철에 많이 발생한다. 동절기나 봄에는 대기 정체가 자주 일어나므로 소각 행위는 사람들에게 불쾌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이웃 간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혹자는 누군가 임의로 무언가를 태우는 장면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단으로 소각하는 행위는 법에 저촉되는 일이다. 임의 소각은 건조기 대형 화재의 위험성을 높이고 미세먼지와 발암물질을 발생시킨다. 민가에서 소각 시 아무리 화재 예방에 만전을 기하더라도 미세먼지와 발암물질의 발생은 막기 힘들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소각 행위의 이와 같은 문제점을 잘 모르고 있다. 문제점을 제대로 알게 된다면 섣불리 무언가를 태우기는 어렵다.
속초·고성·양양도 더 이상 미세먼지의 안전지대는 아니다. 그나마 미세먼지 농도가 대도시에 비해 낮기는 하지만 최근 뿌연 하늘이 계속되는 날이 많아졌다. 대기 전문가들은 자동차나 선박의 배기가스, 공장의 매연을 미세먼지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한다. 비중이 낮긴 하지만 민가의 소각도 미세먼지 발생 요인의 하나이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미세먼지 PM10과 PM2.5 전체 배출량에서 ‘비산업연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2% 정도이다. 민가의 소각은 비산업연소의 일부이므로 민가에서의 소각 행위는 전체 미세먼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미세먼지의 대부분은 제품을 만들고 교통수단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산업시설과 도로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의 양이 어마어마해서 적어 보일 뿐 민가의 소각으로 인한 미세먼지는 무시할 수가 없다. 바로 인근에서 소각 행위가 이뤄진다면 그 주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다. 피해 당사자에게는 1~2%가 아니라 더 큰 비중으로 피해를 끼치게 된다.
미세먼지는 호흡기질환은 물론이고 심혈관질환과도 관련이 있다. 미세먼지는 크기가 매우 작아 폐포를 통해 혈관에 침투해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혈관에 침투한 미세먼지는 혈관을 손상시키며 이는 협심증, 뇌졸중을 불러올 수 있다. 무단 소각은 주로 노년층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소각을 하는 이가 고혈압, 협심증, 심근 경색 같은 심혈관질환을 앓고 있다면 몸에 미세먼지가 쌓여 산소 교환이 원활하지 못해 병이 악화될 수 있다.
소각 시 미세먼지도 문제이지만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에 대해서도 짚지 않을 수 없다. 다이옥신은 폐암, 간암, 유방암, 고환암 등을 일으킬 수 있는 1급 발암물질이며 당뇨, 갑상샘 질환, 혈관 손상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다이옥신은 내분비계 교란 물질, 즉 환경호르몬이다. 이는 정자 수 감소, 임신율 저하, 남성호르몬 감소, 기형아 출산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다.
다이옥신은 농약, 차량 배출가스, 산불, 화재 등 다양한 경로로 발생하는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원인은 폐기물 소각이다. 플라스틱 재료가 포함되어 있는 쓰레기를 태우거나 농약이 묻은 나뭇가지를 태울 때 다이옥신은 다량으로 생기게 된다. 따라서 도시에서의 쓰레기 소각뿐 아니라 농촌에서의 소각 행위도 다이옥신 발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농가의 경우, 농업 부산물들을 태우지 않고서는 처리 방법이 없다고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각의 문제점을 생각한다면 마냥 태울 수만은 없다. 물론 여기에는 당국의 대책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양주, 군산, 수원 등 소각 행위에 적극 대처하려는 시·군이 늘고 있다.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공터에서 누군가가 제법 큰 규모로 소각을 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