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금정이라고 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는 정자를 떠올린다. 그런데 영금정은 정자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속초등대 밑 바닷가의 크고 넓은 바위들이 깔려있는 일대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영금정은 예나 지금이나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이다. 예전에는 영금정의 모습이 지금과는 달랐다.
김규영 회장에게 영금정은 어린 시절 추억의 장소이다. 해안도로가 놓이기 전, 그리고 동명항이 개발되기 전 영금정 바닷가에는 수많은 돌덩이들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널려 있었다. 예전 영금정은 속초 시민들에게 자연이 준 일종의 유원지였다. 여름이면 가족끼리, 혹은 친구 단위로 영금정으로 몰려가서 휴식을 취하거나 노는 이들이 가득했다. 큰 솥과 장작을 가져가서 섭죽을 끓여 먹는 이들도 많았다. 수십 년 전 영금정엔 섭이 많았기에 현장에서 자맥질로 따서 죽을 끓였다. 당시 그곳은 음식과 즐거움이 있는 시민들의 여름 놀이터였지만 동명항을 정비하고 해안도로가 건설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어버렸다.
김 회장의 기억 속에서 해안 건설 공사로 바뀐 풍경은 이것 말고도 있다. 속초등대 북쪽으로 이어지는 바닷가에는 백사장이 꽤 넓었는데 이 또한 개발 때문에 망가졌다.
김 회장은 영금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스쿠버다이버로서 바다 밑 생태에 누구보다 민감하다. 김 회장에 따르면 영금정 앞바다의 생태계도 지난 세월 큰 변화가 있었다. 수심 아래로 2미터 이내에 사는 해초들이 토목공사로 많이 사라진 것이다. 해초들은 산소를 지속적으로 발생시키는데 해안이 파괴되면 해조류의 이런 작용이 사라진다. 이로 인해 산소 부족으로 바다 생물의 생존이 어려워지며 지구에 공급되는 산소의 양도 줄어들게 된다.
어린 시절 즐겨 먹던 서실이 사라진 것도 김 회장에겐 못내 아쉬운 일이다. 서실은 깨끗한 물에서 사는 해조류이다. 영금정 바닷가에서 굳이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손을 뻗어서 딸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다시 속초로 돌아온 1980년대에 이미 영금정 부근에서 서실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개발을 할 때 조금만 더 생각해봤다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겁니다. 영랑동은 파도가 흔적을 남기고 가는 곳이었어요. 파도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공사가 진행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랬다면 백사장과 생태계를 보전할 수 있었겠지요.”
속초의 환경이 바뀐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큰 김규영 회장은 개발의 불가피성은 인정하면서도 환경과 인간, 그리고 도시의 바람직한 발전을 고려한 개발 방식을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며 설명을 이어간다. 항구도시에서 방파제나 접안 시설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시설들은 환경에 큰 영향을 끼친다. 물속에 수직으로 설치된 시설은 물고기가 살아가기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 짧은 시간에 인공으로 만든 매끈한 절벽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적으로 형성된 환경과는 달리 물고기들이 숨을 곳이 없다. 그런데 이런 시설들을 만들 때 수직으로 매끈하게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주름을 줘서 만들면 물고기들이 살아갈 수 있기에 생태계를 그나마 조금은 덜 파괴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속초에는 변하거나 없어져 버린 것도 많지만 여전히 그대로인 것도 있다. 김규영 회장은 어린 시절 속초등대 관리소장으로부터 과외 지도를 받았는데 김 회장은 당시 등대에 살다시피 했다. 그 시절 등대 옆에서 바라본 일몰은 장관이었다. 비록 이제는 고층 건물이 시야를 흩트리기도 하지만 지금도 해가 질 때 설악산에 노을이 진 경치는 예전처럼 너무도 아름답다. 김 회장은 그때 그 광경을 보면서 자신의 감수성이 발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음에 계속>
구술 김규영·정리 이광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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