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에게 희망은 없다.”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민족의 역사성을 일깨우는 이 격언은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과 단재 신채호 선생이 제2차 세계대전의 격동기를 겪으면서 민족의 자주성과 자존감을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기며 실천해온 명구로 3.1절과 광복절이면 우리의 가슴에 깊이 전해진다.
다시 3.1절이 찾아오고, 올해는 1919년 3.1만세운동 100주년이라는 상징성이 더해져 그 의미가 어느 해보다 더 깊고, 삼천리 방방곡곡 울려 퍼졌던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귓전을 생생하게 때리는 듯하다.
1919년 유관순 열사의 3.1만세운동이 일제에 짓눌려 있던 우리민족의 자존감을 되살리던 그 때, 개성 호수돈여성보통학교에서는 양양의 3.1만세운동에 불을 지폈던 조화벽 지사가 학생들의 만세운동을 주동하고 있었다.
양양출신으로 일찍이 신학문에 눈을 떠, 개성으로 유학을 갔던 조화벽 지사는 그렇게 3.1만세운동을 주도했고, 우리가 자라며 일제에 항거한 영웅으로 익히 잘 알고 있는 유관순 열사는 천안에서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희생적인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같은 시간 다른 곳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이 두 여성운동가는 3.1만세운동이 드높았던 1919년 이듬해인 1920년 서로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올케와 시누이 사이로 시대의 인연을 맺게 된다.
양양의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두 여성의 애틋한 인연과 아픈 시대 역사를 다시 짚어보는 <조화벽과 유관순>-‘양양 3.1운동의 주역 조화벽을 통해 본 유관순 그 후 이야기’가 출간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한서교육문화재단이 지원하고 수필가 송혜영 작가가 쓴 이 책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가계가 무너지다시피 한 유관순 열사의 일가를 지켜내고 제 한 몸 태워 주위를 밝힌 애국지사 조화벽과 평생 선봉에서 횃불을 들었던 유관순 열사의 오빠, 유우석과의 파란만장한 삶을 근현대사와 함께 돌아보는 의미 깊은 이야기로 구성했다.
책은 조화벽 지사의 며느리이자 전 3.1여성동지회장을 지낸 김정애 여사의 생생한 고증과 송혜영 작가가 직접 조화벽 지사의 삶의 궤적을 찾아 현장을 탐방하며 오늘의 기억으로 되살려내 사실감이 뛰어나다.
양양에서 태어나 개성 호수돈여성보통학교로 유학을 간 조화벽 지사는 학교에서 17명의 학생들과 3.1만세운동을 주동한 후 독립선언서를 버선에 넣어 대포항으로 귀향해 1919년 4월 4일부터 9일까지 치열하게 전개한 양양3.1만세운동의 불씨가 됐던 인물이다. 그는 만세운동으로 문을 닫았던 모교가 다시 개교하자, 졸업장을 받고는 이듬해인 1920년 공주 영명학교 교사로 첫 발령을 받아 간다.
그곳에서 어렵게 살던 유관순 열사의 두 남동생을 거두면서 4살 연하인 그의 오빠, 유우석과 백년가약을 맺고 부부의 연을 이어간다. 그렇게 양양의 조화벽 지사와 공주의 유관순 열사는 올케와 시누이 사이로 인연을 맺었다. 당시 3.1만세운동의 주동자로 몰려 공주형무소에 투옥됐던 유관순 열사는 그곳에서도 매일같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으며, 서울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기에 이른다.
시누이 유관순 열사를 보내고 남편과의 사이에 삼형제를 둔 조화벽 지사는 1932년 고향인 양양의 문맹퇴치를 위해 양양교회에 정명학원을 설립하고 일제가 강제로 폐교시켰던 1944년까지 600여명의 제자들을 교육하며 인재양성에 많은 역할을 해오다, 1975년 9월 5일 서거했다.
작가는 조화벽 지사가 개성 호수돈여성보통학교에서 3.1만세운동을 주도한 후부터 결혼을 통해 유관순 열사와 가족의 연을 맺고 다시 신교육에 뛰어든 뒤 평생을 유관순 일가의 며느리로서 어렵지만 자존감만은 놓지 않은 꼿꼿한 일대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80세를 일기로 서거한 조화벽 지사는 병석에서 잠시 자리를 털고는 며느리 김정애(전 3.1여성동지회장) 씨를 불러 “너는 내 며느리이면서 아들이고 딸”이라며 손을 꼭 잡았다고 한다. 남편과 아들 삼형제를 먼저 보낸 소산 조화벽 지사는 1975년 9월 5일 서울 성북구 신흥사에서 정릉으로 넘어가는 누옥에서 조용하게 눈을 감았다.
김주현 기자 joo69523@hanmail.net
유관순 열사의 올케인 조화벽 지사와 남편 유우석.
유관순 열사의 서대문형무소 수형표.
양양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펴낸 <조화벽과 유관순>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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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삶 산, 조화벽 지사 널리 알려졌으면”
추상호 한서교육문화 대표
조화벽 지사 선양사업 구슬땀
송혜영 작가는 “조화벽은 역사적으로 누구 못지않은 선구적 여성이었으며 큰 사람이었다. 개성만세운동을 주도하고 3.1운동의 불씨를 가져와 양양만세운동을 활활 일으키는데 기여했다. 3.1운동으로 고아가 된 유관순의 어린동생들을 거두고 폐족이 되다시피 한 유관순 일가를 지켜냈다. 그 후에는 3.1운동의 자주독립정신 계승을 위해 향촌 교육에 헌신했으며, 일생 동안 나눔의 삶을 실천한 인물이다”고 평가했다.
<조화벽과 유관순> 발간을 직접 지원하고 기획한 추상호(사진) 한서문화교육재단 대표는 “양양3.1운동의 주역이면서 일제 강점기 향토 교육에 헌신한 애국지사 조화벽을 조명해 보았는데, 유관순가의 며느리이기도한 자랑스러운 선배 교육자 조화벽을 이제야 되살려냈다는 게 고향 후배 교육자로서 부끄럽기만 하다.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라며 이타적 삶을 산,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인물로 조화벽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고 했다.
며느리인 김정해 전 3.1여성동지회 회장은 “어머님 조화벽 지사가 걸어온 길을 되새겨보며 그분의 품은 뜻과 마음이 얼마나 크고 넓었는지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정신보다 물질에 대한 갈급증으로 목 타는 세상에서 참사람이자 참어른으로서 조화벽이라는 존재가 새삼 그립다”고 회상했다.
교육자로서 오랜 시간 양양3.1만세운동을 조명하며 조화벽 지사 발굴 및 선양사업에 열정을 쏟고 있는 추상호 한서교육문화대표는 앞으로 이 책을 학교 교육자료용으로 널리 보급하고, 조화벽 지사 선양사업에도 속도를 낼 예정이다.
김주현 기자 joo695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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