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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문화로 거닐다<169> / 청호동 아바이마을 배철 작가
“예술이 마을과 주민을 발견할 수 있는 매개가 되지 않을까요”
등록날짜 [ 2019년03월04일 15시33분 ]

속초 청호동 5구 시장과 해변길 사이의 골목을 가본 적이 있는지. 그곳에는 실향의 슬픈 역사가 벽에 새겨져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지난해 청호동 마을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한 벽화길이다. 이제 시작이어서 본격적인 홍보는 안하고 있다. 마을 어르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초창기 정착의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그림이 곳곳에 걸려있다.
“풀리지 않는 매듭같아”, “내 마음의 보따리는 아직도 고향에 있어”, “남쪽으로 피난 왔을 때 이곳에 움막촌을 짓기 시작했어.”
생생한 어르신들의 육성과 함께 처연한 슬픔을 간직한 그림이 갈라진 벽틈 사이로 자리잡고 있다. 아바이길이라고 이름 붙인 골목과 골목 사이의 길을 거닐다 보면 아바이마을에 정착한 실향민의 삶이 온몸으로 전달됨을 느낄 수 있다.

아바이길 이정표 만들고 벽화 제작
아바이길을 조성하고 작품을 기획한 작가는 배철이다. 양양 태생의 배 작가는 강릉에서 주로 활동을 했다. 속초와의 인연은 고 이동수 작가와 함께 마을미술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부터다. 청호동 신수로변에 위치한 ‘아트플랫폼 갯배’의 보따리 조형물에 참여하면서 아바이마을을 눈 여겨 보았다고 한다. 실향의 삶이라는 뚜렷한 스토리와 청초호, 동해바다를 이어가는 자연환경은 예술과 마을의 접점을 찾을 수 있는 매력을 보았다.
마을주민의 환대도 반가웠다. 아사모(아바이마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정성수 회장과 심삼옥 사무국장은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는 아바이마을의 정신을 어떤 식으로든 구현하기를 바랐다. 배 작가는 아바이마을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 2년 전 이야기다. 그때 잠깐 옛 청호동 5구시장길에 벽화를 그렸다. 아바이길이라는 이정표를 만들고, 아바이마을의 역사와 평화의 꽃말을 가진 국화를 소재로 작업했다. 하지만 실수도 있었다. 아바이마을에 대한 공부가 부족했다. 아쉬움은 지난해 이어진 아바이길 작품으로 해소할 수 있었다. 마을 어르신들을 만나고 그 분들의 육성을 모티브로 벽화를 만들었다. 실향민 1세대의 응어리진 한을 골목 벽화로 만나게 한 것이다.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상황, 보따리에 고향의 물건과 추억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셨던 상황 같은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실향민 1세대 어르신들이 청호동 아바이마을에 자리를 잡으시고 살아가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 추억, 사랑, 고통 등 수많은 감정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감정을 연출하고 싶었어요.”
배철 작가는 지속가능성을 생각해 아크릴판에 샌딩을 한 후 벽화를 그렸다. 작품 보수도 쉽고 벽화보다 조금 더 오래가는 장점이 있다. 기존의 벽도 깨끗하게 칠하기는 했지만 갈라진 틈이나 오래된 철조망 같은 오브제는 그대로 작품의 일부분이 되도록 살렸다. 하지만 문제가 보인다. 극작가 이반의 작품 대사를 인용하면서 ‘이반 작곡’이라고 적었다. 스토리텔링도 중요하지만 원전에 대한 공부와 검증이 필요하다고 질문했다. 바로 수긍했다. 아직 지역 공부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대답이 왔다. 그래도 권문국, 김송순 등 실향민 1세대의 초상과 약력을 벽에 새기며 마을주민에게 집중한 기획이 돋보인다. 2단계 사업으로는 실향민 2~3세대의 희망을 새길 계획이라고 한다.

“마을 위인전·벤치도서관 만들고 싶어”
배철 작가는 동시에 몇 가지 사업을 펼치고 있다. 마을주민과 함께 지역을 관광으로 만나게 하는 ‘위드’를 하고 있다. 젊은 감각의 디자인 작품으로 마을 상품을 만드는 일도 준비하고 있다. 마을의 이야기가 담긴 엽서와 젓갈 캐릭터 등 아바이마을 기반의 다양한 디자인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지난해는 속초의 청년들과 함께 ‘속초콜라보’라는 팀을 만들었다. 워크숍을 통해 ‘마을위인전 제작과 책이 있는 벤치’ 아이디어를 만들었고, 전국대회에서 수상도 했다. “어르신들과 대화를 하면서 그분들의 삶 하나 하나가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그분들 모두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위인의 성격을 하나씩 가지고 계셨죠. 저희가 마을 어르신의 삶을 위인전 형식으로 만들고, 그 책을 담을 수 있는 벤치를 제작하여 마을 도서관으로 확장시키자는 아이템이었어요.”
재미있고 의미있는 아이템이다. 마을과 예술, 주민이 어우러져 아바이마을 고유의 마을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아이템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관련 사업공모를 준비하고 있다. 젊은 작가 한명이 마을의 문화를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을주민과의 부단한 대화를 통해 작가 고유의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관련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면 아바이마을은 조금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배철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려 본다.              김인섭 전문기자
배철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벽화이다. 그가 작품에서 추구하는 정신이 실향민 이야기 보따리와 만나면서 독특한 작품이 탄생했다.
배철 작가는 3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 및 기획전을 한 전업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연기를 거친 물성으로 표현하는 듯하다. “연기가 난다는 것은 완벽한 형상의 해체나 소멸을 뜻”(개인전 3회 작가의 말 중) 하기에 불안과 두려움이 동반된다.
아바이길의 작품은 모두 실향민 어르신을 인터뷰한 후 탄생했다. 앞으로 2~3세대의 희망 담긴 벽화가 완성된다면 청호동의 새로운 볼거리로 탄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설악신문 (soraknews@soraknew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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