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태인 옹은 배 목수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에 자부심이 상당하다. 배 목수는 나무를 휘게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일반적인 집 목수와 비견되는 가장 큰 차이이다. 집은 반듯하게 짓는 것이지만 배는 유선형이라 나무를 곡선으로 가공하지 않으면 목선을 제작하기 어렵다. 목재를 곡선으로 가공해서 쓰는 배 목수의 입장에서는 직선으로 이어붙이는 건축은 한층 수월한 일이다. 이런 까닭에 배 목수들은 집 짓는 일을 겸업할 수 있지만 집 목수가 배를 만드는 것은 힘든 일이다.
곧게 뻗은 목재를 틀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 명 이상이 동시에 필요하다. 불로 목재를 가열하는 사람, 목재에 물을 붓는 사람, 나무를 휘게 하는 기구조작자, 이렇게 크게 세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데 목재를 가열하는 동안 물을 붓는 것은 목재가 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가공한 나무를 이어붙이는 것에도 높은 난이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각각의 목재를 붙일 때 목재와 목재 사이에 뱃밥을 넣어야 하며 이때 물이 새지 않게 만드는 것은 숙련된 배 목수만이 할 수 있다.
궁궐, 사찰 같은 규모가 큰 건축물을 짓는 데 능한 장인인 대목장들은 설계도가 없이도 하나의 건물을 완성해 낸다. 이는 배 목수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양태인 옹은 배를 만들 때 별도의 설계도를 그린 적이 없다. 물론 설계도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의 머릿속에 있으며 겉으로 드러난 것이 아닐 뿐이다. 배 목수 일은 설계도나 설명서 없이 현장에서 암묵지로서 전승돼 왔다.
그런데 요즘 사용되는 철선이나 FRP 선박에서는 목재 가공 같은 배 목수의 기술이 사용될 일이 없다. 그래서 배 목수는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양 옹의 말에 따르면 배 목수의 일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3년 정도를 잡아야 하니 수요가 없는 일을 장시간에 걸쳐 배우려고 드는 사람이 없다. 더군다나 양 옹의 경우 기력이 쇠해서 누군가에게 일을 가르치는 것이 이제는 힘들다고 한다.
예전에는 크레인, 지게차 같은 중장비들이 없었기에 배 목수의 일은 매우 고된 노동이었다. 무거운 나무를 어깨에 메고 옮기는 일이 일상이다 보니 목 옆에 굳은살이 박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골병이 드는 일도 다반사였다. 양태인 옹은 지금도 목 주위가 아픈 것이 그때의 고생 때문이라 여긴다.
할아버지의 건강
양 옹은 배 목수 일을 하다가 크게 다친 일이 몇 번 된다. 장진순 할머니가 끊임없이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한 것은 여기에도 그 이유가 있다. 양 옹이 일을 하다가 다쳐서 장기간 요양하게 되면 가족의 생계는 할머니의 몫이었다.
양 옹은 배에서 작업을 하다가 떨어져서 갈비뼈와 허리를 크게 다친 적이 있다. 장진순 할머니는 집에서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는 할아버지를 위해 몸에 좋다는 것들을 수소문해서 구해왔는데 이 중에는 소의 태아도 있고 지네도 있다.
지난 시절 할머니의 지극정성 덕인지 양 옹은 80대 중반임에도 매우 건강한 편이다. 청력이 좋지 않지만 현재 병원 진료를 받는 일이 거의 없으며 별도로 먹는 약도 없다. 그 나이에 보통 많이 복용하는 당뇨약이나 혈압약도 입에 대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다. 양 옹은 이전에 폐 수술을 받았지만 현재는 완치된 상태이고 놀라운 일이지만 지금도 담배를 태우고 있다. 이틀에 한 갑 정도이니 적은 양은 아니다.
그렇다면 양태인 옹은 건강을 타고 났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의 양친은 모두 70대에 유명을 달리해 그가 선천적으로 건강한 것인지 확신하기는 힘들다. 양태인 옹의 일상에서 눈에 띄는 것은 고령임에도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로 하는 운동은 자전거 타기이며 자전거로 청초호를 도는 일은 그의 하루에 있어 빠트리지 않는 일상이다. 그리고 양 옹은 외식을 일절 하지 않고 간식도 먹지 않는다. 이런 습관에 장진순 할머니의 정성이 더해져 그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다.
에필로그
노인 일자리 신청이 있던 날 양태인 옹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주민센터로 향했다. 양태인 옹이 오전에 신청이 빨리 마무리돼서 시간이 나면 인터뷰가 가능하다고 한 터라 양 옹의 집을 지나는 길에 주변을 살폈다. 양 옹은 주민센터를 이미 다녀온 후에 공터에 앉아 동네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양태인 옹은 거리를 돌며 속초의 과거, 자택을 손수 수리한 경험 등에 대해 짧게 얘기를 들려 줬다.
이후 집으로 들어서자 거실에 있던 장진순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왜 이제야 오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장진순 할머니는 오전에 볼일이 있었는데 할아버지에게 연락이 닿지 않아 결국 가지 못한 것에 화가 나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들이 사준 스마트폰을 사용할 줄 몰라 외출 시 휴대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할머니의 화는 두 사람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중에도 몇 번 더 표출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양태인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다소 불편한 이야기를 아무런 대꾸 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어쩌면 할아버지의 청력이 좋지 않아 할머니의 말을 잘 못 알아들어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두 사람의 사진을 찍으려 하자 장진순 할머니는 사진 촬영을 다소 불편해 했다. 화가 아직 덜 풀린 것이었다. 이때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살짝 미소를 띠며 빗을 건넸고 할머니는 불편함을 조금 거두고 빗을 받아 들어 거울을 보며 머리를 정리했다.
촬영에 들어가자 할아버지는 한 팔로 할머니를 슬며시 껴안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할머니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번지다가 웃음이 터져 나왔고 이후 할머니의 표정은 확실히 바뀌어 있었다.
<끝>
구술 양태인·장진순, 정리 이광호 객원기자
양태인·장진순 부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