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정월대보름 행사가 취소되었다. 지난해는 가뭄, 올해는 구제역 때문이다. 3년 연속 민족의 명절 중 하나인 정월대보름 행사가 최소된 것이다. 하지만 속초는 정월대보름 행사가 취소된 적이 없다. 정월대보름의 고유의미를 놓고 본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예부터 설날과 정월대보름, 단오, 한식, 추석을 5대 명절로 기념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음력 1월 15일, 정월대보름날에는 한해의 첫 보름달이 뜨는 날로 커다랗게 뜬 달에 풍년과 안녕을 비는 풍습이 있었다. 대보름의 달빛은 어둠과 질병, 재액을 밀어내는 밝음의 상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정월대보름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인 달집태우기는 다른 해석이 있다. 음의 기운인 달을 양의 기운인 불로 그을려 한해의 액운을 막는다는 것이다. 현대에 들어 달집태우기는 화재위험 때문에 일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지자체의 이벤트가 되어 크기 경쟁을 하고 있다. 이밖에 풍요를 기원하는 오곡밥, 건강을 바라는 부럼깨기 등 음식을 통한 기원도 함께 했다.
하지만 정월대보름 행사 중 우리가 가장 많이 놓치고 있는 의미는 풍물굿에서 말하는 협화이다. 협화는 협동과 조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달집을 함께 만드는 과정도 협동과 조화의 과정이고, 풍물굿도 그렇다. 정월대보름 액막이와 공동체 협화의 의미는 속초에서 속초사자놀음을 통해 매년 구현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월대보름행사는 취소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북청 실향민들 사자놀음 길놀이 계승
속초사자놀음보존회는 매년 정월대보름 전날 오후 3시부터 저녁까지 ‘속초사자놀음길놀이’를 한다. 보존회원 40여명이 청호초등학교 입구에 집결하여 지역 경제를 맡고 있는 청호새마을금고를 비롯해 경로당과 김송순 아마이젓갈, 미리내 면옥 등 사전에 신청한 집을 돌면서 액운을 막아주는 것이다. 이러한 길놀이는 전국 어디에나 있지만 속초는 실향민의 고장답게 사자놀음을 앞세운 길놀이를 한다는 점에서 다른 곳과 다르다. 길놀이는 사자를 앞세우며 속초사자놀음의 칼춤과 애원성, 사자춤이 번갈아 선보인다. 특히, 사자가 각각의 집에 들어가 귀신을 물리치고 박을 깨뜨리는 과정은 벽사진경의 의미를 담고 있다. 길놀이의 마지막은 마을의 넓은 공터에서 벌이는 공연이다. 최근에는 신수로변에 위치한 ‘아트플랫폼 갯배’ 앞 공터에서 이뤄지고 있다. 조그마한 잔치판도 펼쳐진다. 마을 청년회에서 소머리국 등 음식을 준비하고 어르신들의 한해 건강을 기원하는 것이다.
정월대보름 전날 하는 사자놀음길놀이는 언제부터 이어지고 있는 걸까? 속초에서는 북청 출신 실향민들이 금호동 여인숙에서 탈을 만들고 인근에서 길놀이를 하면서부터이다. 고향 북청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동네에서 놀았던 사자놀음을 하며 놀았다. 사자탈과 몸통 등도 함께 만들었다. 당시에는 구하기 쉬운 그물로 사자몸통을 만들었다고 한다. 본격적인 길놀이는 북청도청 건립자금을 위한 걸립굿에서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협화가 속초사자놀음을 통해 구현된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마을주민 공동체 중심의 마을만들기가 이뤄진 셈이다.
도무형문화재 지정 심사…독립영화 제작
지난 18일 열린 올해 길놀이는 조금 더 큰 의미가 있다. 속초의 사자놀음을 인정받기 위한 ‘속초사자놀음’ 강원도무형문화재 최종심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국가무형문화재로 북청사자놀음이 존재하지만 속초의 실향민 후대가 속초에서 최초로 연희하였던 그 시절을 원형삼아 이어오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판단이다. 현재 속초사자놀음은 1958년 사진을 참고로 사자탈을 제작하고, 사자털 등 의상을 복원하였다. 또한, 퉁소를 맡았던 고 김하륜 옹이 간직한 1980년대 사자놀음 녹음을 악보로 채보하여 음악을 전승했다. 속초 고유의 사자놀음으로 전승하고 있는 것이다.
속초사자놀음의 이러한 의미를 영화로 만드는 작업도 이날 함께 이뤄졌다. 속초출신의 손미애씨가 이끄는 독립영화팀이 속초사자놀음의 변화와 현재적 의미를 담은 독립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약 15분 정도 분량의 영화를 제작하여 국내는 물론 국제단편영화제에 출품한다는 계획이다. 속초사자놀음보존회의 길놀이도 내년에는 보다 큰 규모로 진행할 계획이다. 이날 행사 후 뒤풀이에서는 정월대보름의 의미를 살리면서도 고속버스터미널과 시외버스터미널 사이에 있는 청호동의 장소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메가 이벤트 이야기도 나왔다고 한다.
북청 출신 어르신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놀았던 ‘북청사자놀음’이 90년대를 넘어 실향민 2~3세대와 속초의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 하면서 ‘속초사자놀음’이 되었다. 문화는 이렇게 시민의 삶과 일상에서 구현되고 전승된다. 속초사자놀음이야말로 전통과 현대가 우리의 일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스며들어야 하는지 보여주는 문화일 수도 있다.
김인섭 전문기자
속초사자놀음길놀이는 매년 정월대보름 전날 청호동 아바이마을 일원에서 개최하고 있다. 생활문화가 문화원형이 되어 지역의 대표문화콘텐츠로 나아가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올해는 속초사자놀음의 무형문화재 심사와 독립영화촬영이 함께 이뤄져 더욱 뜻깊은 행사가 되었다.
속초사자놀음은 마을공동체의 ‘협화’(협동과 조화)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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