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상도문의 마을길로 들어서서 조금 더 들어가자 한 오래된 가옥에 ‘예빛 천연염색’이라고 쓴 캘리그래피 작품이 붙어 있다. 건물은 오래됐어도 깔끔하게 붙은 그 글자들이 하나의 공간을 멋스럽게 보이게 한다.
예빛공방 허경심 대표를 따라 실내로 들어서자 염색 작품과 소품들이 가득하다. 허경심 대표는 재작년에 상도문의 오래된 집을 작업실로 마련한 이후 인테리어를 따로 하지 않았지만 천연염색으로 탄생한 옷과 가방, 스카프 등이 공방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
‘천연염색’ 하면 뭔가 물 빠진 듯한 칙칙함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의 손길은 이런 편견을 쉽게 깨트려 준다. 예빛공방 실내에 걸린 많은 결과물들은 마치 첨단 기계로 정교하게 작업한 듯 보인다. 각각의 색깔은 탐이 날 정도로 너무도 곱다.
전국으로 다니며 천연염색 배워
허 대표는 젊은 시절 의상실을 운영하며 의상 제작 강의를 했으나 10여 년 전부터 천연염색에 관심을 갖고 이를 지역사회에 보급하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허 대표가 천연염색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의 시누이를 통해서이다. 당시 시누이는 손수 염색한 옷을 허 대표에게 주곤 했는데 그는 처음 천연염색을 접했을 때에는 큰 감흥이 없었다고 한다. 이후 시누이를 통해 더 많이 접하게 되면서 차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해 이제는 염색이 자신의 본업이 돼버렸다.
한번 천연염색에 관심을 두자 허 대표는 남들이 놀랄 정도로 배움의 열정을 발휘했다. 그는 천연염색을 배우기 위해 전국을 누볐다. 대구, 부산, 서울, 그리고 심지어 보성까지, 전문성을 가진 곳이라면 거리에 상관없이 배움을 위해 달려갔다.
그는 배운 것들을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주며 전파하고자 했다. 어렵게 배운 노하우는 남들이 알 수 없도록 꽁꽁 숨겨 두는 이들도 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남들에게 자신이 배운 것을 나누는 과정이 오히려 그가 실력을 가다듬을 수 있게 해줬다. 가르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누군가를 계속 가르치는 것이 그에겐 연습과 숙달의 과정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그의 실력은 어느 틈에 공식적인 강의를 맡을 정도가 됐다.
“배웠다고 해서 다 아는 것은 아니에요. 숙달되지 않으면 제대로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제 비법을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려고 했지요.”
‘상도문 학당’서 천연염색 수업
현재 허 대표는 고성, 강릉, 평창 등 강원도 곳곳을 누비며 천연염색 강의를 하고 있다. 성인을 대상으로도 강의를 하지만 어린이를 위한 수업도 많은 편이다. 강릉교육지원청을 통해 학교 병설 유치원 강의를 5년째 진행 중이다. 요즘 천연염색을 찾는 이들이 많이 줄어 염색공방도 줄어들고 있는 추세인데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염색 수업은 그에게 큰 즐거움을 준다.
현재 상도문에 마련한 예빛공방은 작업공간이자, 물품창고이며, 또한 교육장이자 염색 재료 식물을 키우는 장소이기도 하다. 허 대표는 이 공간이 매우 마음에 든다고 한다.
허 대표는 상도문에서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 마을에 대한 애정이 깊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애정이 상도문 주민을 위한 수업으로도 연결됐다. 최근 그는 상도문 문화마을 ‘상도문 학당’에서 천연염색 수업을 맡아 주민들에게 교육을 시작했다. 이 수업은 이제 한 번 진행했을 뿐이지만 반응이 뜨거워 다음 시간부터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예정이라고 한다.
“항상 저는 제가 배운 것을 나누면서 살고 싶었어요. 지금 이렇게 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네요. 사람들에게도 무언가를 배워 놓으면 베풀고 나눌 기회는 언젠가 반드시 온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한 공예가가 작은 시골마을에 특색을 더하고 있다. 이광호 객원기자
상도문 예빛공방 허경심 대표.
허경심 대표는 상도문 문화마을 ‘상도문 학당’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천연염색 수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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