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영원한 명제는 ‘새로운 것에의 도전’이다. 진정한 작품이란 새로 이룩한 미적 구성체이어야 한다. 하여 언제나 새로운 이상과 영혼과 기술을 시도하며, 그리하여 언제나 실험적이고 도전적일 수밖에 없다.
<카운터포인트> 연극에서의 작가적 신선미는 전통연극 미학 체계에 대해 도전적 경향을 보인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전통 미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감성적 동화론에 바탕을 두며, 관객은 무대 위에 만들어진 환상(illusion)에 감정이입(empathy)의 과정을 통해 몰입하게 되고 이때 관객의 존재는 ‘무아’(無我) 상태가 된다. 이에 비해 <카운터포인트>는 근본적으로 서사적(epic) 구조를 갖는다. 작가는 극 진행에서 자주 해설(narration) 수준의 코러스를 동원한다.
사실 이런 형태의 코러스는 고대 희랍 연극에서는 무용과 함께한 합창으로 나타나며,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시대에는 배우의 대사로 대치된다. 이들은 물론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공연학적 관점에서 시, 공(time and space) 비약을 위한 무대적 수단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브레히트(Bretolt Brecht)에서는 서사적 방법으로 변형된다. 서사적이라 함은 ‘감성적 동화’의 미학과는 반대되는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는 관객이 무대로 몰입하는 것을 막고, 대신 자신을 유지하며 스스로의 이성에 의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시, 공을 구축하고 극의 의미를 판단하게 한다. <카운터포인트>는 코러스를 통해 연극의 공간과 시간을 구축하고 비약하며 때로는 극중 인물의 내면세계를 설명하기도 한다. 이는 극장주의(theatricalism) 테크닉과도 연결될 수 있다.
<카운터포인트>에서의 또 하나의 특징은 극적 공간과 등장인물의 성격을 불완전한 중립의 상태(neutral state)로 남겨둔다는 점이다. 작가는 장면에 대한 지문을 전혀 밝히지 않고 있으며, 또한 등장인물(character)에 대해서도 구체적 설명을 피하고 있다. 연출의 영역으로, 그리고 관객의 상상적 영역으로 남겨두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사실 이러한 모습은 변형된(transformed) 공간이나 인물을 요구하는 전통연극 미학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요소와의 융합(mingle)을 통해서 형성되는 합성적(combine) 체계를 암시한다. 둘 이상의 매체를 수용, 암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전통연극 미학의 관점에서 연극은 단일 매체 예술이다. 무대 구성에 있어 주체는 배우의 연기다. 그리고 무대장치, 음향, 조명 등 다른 요소들은 연기를 보조하는 부차적 매체에 속한다. 이에 비해 둘 이상의 매체를 사용하는 다매체(multi media)의 경우가 있는데 그러한 형태의 연극을 총체극(total theatre)이라 한다. 바그너(Richard Wagner)의 총체 연극, 윌슨(Robert Willson)의 이미지 연극, 몽크(Meredith Monk)의 3각 연극(triangle theatre) 등이 그 예들이다.
연출(변유정씨)은 대체로 작가의 작의에 동의하고 무대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먼저 코러스의 스타일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겠는데 코러스를(때로 극적 인물을) 서사적 내지는 제3자적인 서술적 진행자로 사용한다. 역사적 스토리를 모두가 함께 합창하듯 외치기도 하고 극중 인물의 상대가 돼 대사를 외치기도 하며 때론 시, 공에 대한 해설을 큰 소리로 외치기도 한다.
또한 변유정씨는 전통적 변형 공간(transformed space)이나 극적으로 몰입 변형된 인물 대신 중립적(neutral) 형태를 자주 연출하는데, 그리하여 다른 요소들과의 연합이나 합성을 통한 형태를 시도한다. 바그너에서와 같이 불완전한 요소들을 융합하는 총체극(total theatre)적 시도로 보인다. 의상은 대부분 흰색이거나 간단한 상징이 있을 뿐 불완전한 모습이며 장치 역시 어떤 완전한 공간 대신 비특정의 공간(unlocalization)으로 설정하고 여기에 대사나 연기, 음향 등 다른 요소를 합성해 관객 상상의 영역으로 남겨둔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연기 스타일이다. 변유정씨는 전통극에서의 ‘단일 매체 예술론’ 즉 연기자(performer)를 유일한 표현주체로 보지 않는 듯하다. 그리고 재현적 연기(representational action) 대신 걷기, 말하기, 소리 내기, 외치기 등과 같은 일상적 행동(movement)들이 각종 오브제들과 혼합하며 이뤄내는 종류를 연기(action) 스타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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