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면서 다시 문학소년의 꿈을 찾게 해준 아버지가 고맙고 너무도 보고 싶습니다.”
양양출신인 한상호 전 현대엘리베이터 대표이사가 시인으로 변신해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시 문학 활성화에 열정을 쏟고 있다.
양양읍 남문리가 고향인 한 시인은 지난해 2월 현대엘리베이터 상임고문(상근 부회장)직을 끝으로 전문경영에서 손을 뗀 후 4월에 양양으로 귀향했다.
국내에서는 드물게 CEO출신의 시인인 그가 시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작고한 아버지에 대한 애끓은 그리움 때문이다. 양양초교(46회)·양양중(17회)과 춘천 제일고(사대부고)를 거쳐 연세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한 한 시인은 공군장교로 퇴임한 후 한진중공업과 LG상사·산전, 오티스엘리베이터에서 근무하다, 전문경영인으로 발탁돼 2011년 7월부터 2016년 2월까지 현대엘리베이터 대표이사를 지냈다.
쉴 새 없이 바쁜 대기업 생활 중 16년 동안 대만·홍콩·중국 등 타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부모를 자주 찾아보지 못한 그는 아버지(2015년 작고)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표현하며 시인이라는 제2의 인생을 고향인 양양에서 시작했다.
누구보다 시를 사랑했던 그는 어릴 적 강소천, 윤석중, 방정환의 동화와 시집을 읽으며 문학소년의 꿈을 키워왔다. 고교시절까지 문학도였던 한 시인은 부인과 결혼하고 바쁜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를 잊고 살았다.
그렇게 기업경영에만 집중하던 그는 지난 2006년 모친이 작고하고 혼자된 90세의 병든 아버지를 돌보면서 과거 잊고 지냈던 시에 대한 감성이 되살아나기 시작해 다시 시를 쓰게 됐다. 한 평생을 무덤덤하게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던 아버지의 “발톱 좀 깎아줄 수 있느냐”는 한마디에 한 시인은 아들에게 부탁하는 아버지가 고맙기도 했지만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아버지의 늙음에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한다.
자신의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었던 아버지가 지난 2015년 작고하고 난 후 그는 2016년 2월 <월간 문학세계>에 ‘아버지 발톱을 깎으며’라는 시로 등단한데 이어, 이듬해인 2017년 계간지 <시와 시학>의 신춘문예에 ‘단풍물들 나이에야 알았다’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아버지를 통해 생로병사의 자연섭리를 깨닫게 되고, 그 과정에서 순수한 사람의 마음을 읽게 된 것이 그를 다시 시인으로 이끌게 된 원동력이다. 서울시 공모전에도 당선된 그의 시 ‘까치집’은 지하철 2호선 스크린 도어에 게재돼 있다.
최근에는 아시아 시인상까지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올해로 3회째인 아시아 시인상은 중국 구어시연맹과 뉴욕 국제작가 및 예술가협회가 주관하는 상으로 아시아인들의 시 문학 활성화와 글로벌화를 위해 제정됐다.
한상호 시인은 동양적인 정서가 가득 담긴 다양한 시 작품 활동을 하며 16년 동안 중국어권에서 생활한 경험을 시어에 담아내면서 서울시인협회의 추천을 받아 아시아 시인상을 수상하게 됐다.
“제가 특출해서라기보다는 순수한 제 마음이 쉽고 간결한 시어로 표현되면서 많은 공감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감사하고 황송할 따름입니다.”
‘인생 2모작’이라는 말처럼 그는 요즘처럼 행복할 때가 있냐 싶을 정도로 마냥 즐겁게 산다. 귀향에 선뜻 동의해준 부인의 배려와 자신이 그토록 쓰고 싶어 했던 시를 마음껏 쓰면서 고향, 양양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고마움’이다.
한 시인은 자신을 낳아주고 키워준 고향에서 시를 쓰면서 이웃과 자연과 하는 대화가 얼마나 소중한 지를 다시금 깨달으며 시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볕이 좋은 날, 멋진 중절모에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남대천 둑방길을 거닐 때면, 지금은 희미해진 어릴 적 친구들과 뛰어놀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올라 가슴이 설렌다는 그는 <아버지 발톱을 깎으며> <단풍물들 나이에야 알았다> 등 2권의 시집에 이어 새해에는 세 번째 시집을 내기 위해 많은 시상들과 소통하며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주현 기자 joo69523@hanmail.net
전문경영인에서 시인으로 변신한 한상호 시인.
한상호 시인이 낸 두 권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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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희망과 배움 싹 틔워
농산물 판매·장학금 지급 등
한상호 시인은 지난 2011년 현대엘리베이터 대표이사를 맡은 이듬해부터 고향인 양양군을 위해 많은 봉사활동을 펼쳐 고마움을 샀다. 그는 2012년 손양면과 1사1촌 자매결연을 맺고 농산물 팔아주기를 시작으로 사랑의 연탄나누기, 가전제품 지원, 장수사진 무료촬영, 농촌봉사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고향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했다. 특히, 지난 2012년부터 고향의 모범 중고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지역 농·특산물 판매에 많은 도움을 줬다.
그는 “매년 가을이면 산에는 송이가 나고 남대천에는 연어가 오르듯 고향에 대한 애잔함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다”며 “내 고향 양양군이 보다 풍요롭게 잘 사는 고장이 되도록 현직에 있을 때 미력하나마 힘을 보탰고, 이제는 살면서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문경영인으로서 현대엘리베이터 대표이사를 맡은 후 기존보다 매출과 영업이익을 두 배로 증대했고, 고용도 더 늘리면서 제39회 국가생산성대회에서 최고의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김주현 기자 joo69523@hanmail.net
아버지 발톱을 깎으며
- 한상호 -
피난길 동상 입어
푸석해진 발톱을
봄 논두렁 다지듯
다듬어 드린다
아버지는
또각또각 잘린
웃자란 정 남기고
고향길 떠날 채비하신다
구십사 년을 부린 시린 혈관을 끌고
나는 희뿌연 그믐달들을 쓸어
마음 한켠에 고이 담았다
손잡아 주시던 어린시절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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