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순 할머니는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일에 종사했다. 시장에서 생선을 판 적도 있고 건설 현장에서 일한 때도 있으며 뱃밥을 만들기도 했다. 할머니가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고 이웃 사람이 “돈 준다면 똥도 퍼 나르겠네”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돈을 준다면 당연히 그래야지”라고 대꾸한 바 있다.
장진순 할머니는 뱃밥을 만드는 일을 제법 오래 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의 남편처럼 직접적으로는 아닐지라도 배를 만드는 일에 관여한 것이다.
“새끼를 꽈서 배 밑에 밥 치는 마키하다를 만들었지.”
잘 모르는 사람이 이 말을 들으면 배에서 밥 하는 일을 했나 하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마키하다(まきはだ - 槙肌)는 뱃밥을 뜻하는 일본어이다. 뱃밥은 배의 틈으로 물이 새어 들지 못하도록 틈을 메우는 재료로 천이나 대나무의 얇은 껍질을 쓰기도 하는데 할머니는 새끼줄을 꼬아 뱃밥을 만들었다. 뱃밥으로 틈을 메우는 것을 배 목수들은 “밥을 친다”고 표현한다. 목선은 FRP 선박(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 선박)과는 달리 물이 스며들 수 있기에 뱃밥을 치는 것은 목선 제작에 있어 필수이다.
할머니는 40대 시절에는 설악동에 숙박시설들이 지어질 때 건설 현장에서 한동안 일했다. 할머니가 주로 한 일은 인조석 물갈이(속칭 ‘도끼다시’)의 보조였고 문틀을 설치하는 일도 했다. 인조석 물갈이는 대리석을 갈아 시멘트를 섞어 굳혀 표면을 연마하는 것으로 지금은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금지된 작업이다. 할머니의 말로는 당시 인조석 물갈이는 노임을 많이 받을 수 있었는데 이를 보조하는 장진순 할머니도 남들보다 더 많은 일당을 받았다. 남들은 하루 일당 2,000원을 받을 때 할머니는 1,000원 더 받았다고 한다.
자가용 차량이 거의 없을 때라 공사를 하기 위해 설악동으로 출근하는 아침에는 버스가 만원이었다. 일을 시작하는 시간은 오전 7시 반이었고 할머니는 저녁에 일을 마치면 가족들을 챙기기 위해 허덕대며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설악동 하천에는 지금과는 달리 물이 많이 흘러내려 왔다. 할머니의 기억에 따르면 예전에는 설악산에 눈이 더 많이 내렸고 이 눈들이 녹아 설악동의 물줄기를 더 풍부하게 했다. 설악동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하루 일과를 마치면 이 하천에서 몸을 씻고 집으로 향했다. 당시 관광객들 중에는 설악동 물가에서 밥을 해 먹는 경우가 많았다.
장진순 할머니는 돈이 없으면 한 달 동안 시장에 가지 않을 정도로 근검절약했지만 딸 둘, 아들 셋, 이렇게 다섯 명의 자식을 키우는 것은 벅찬 일이었다. 아침 등굣길마다 손을 벌리는 자식들에게 필요한 돈을 주는 게 큰 부담이었다고 한다.
“당신은 애들이 어떻게 크는지 잘 몰랐어.”
할머니는 얘기 도중 북받치는 감정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말인즉슨 할아버지는 성격이 순하고 성실한 배 목수였지만 바깥일에만 신경 쓰고 집안일은 할머니에게 전적으로 맡겨뒀다. 수십 년이 지났건만 할머니의 말에는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감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고 얼굴에는 미안해하는 표정이 가득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양태인 옹이 유별나게 가정에 무심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으니 지금 상황과 비교한다면 장진순 할머니는 지나온 삶에 다소 억울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요즘 양태인 옹이 가끔씩 설거지를 할 때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솜씨가 마음에 안 들어 양 옹의 설거지를 말리고 있다.
“80이 넘도록 헛살았어.”
평생을 바쁘게 일하면서 살아온 장진순 할머니는 요즘 여성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한다. 요즘에는 여성들이 여가를 즐기고 무언가를 배우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할머니는 이런 모습들이 부러운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지금 누가 나한테 일을 시켜준다면 뭐라도 할 수 있어. 죽을 때까지 일을 할 수 있으면 해야지. 병원비가 얼마나 들어가는데…….”
평생을 일하면서 살아온 할머니는 아직도 일할 생각을 하고 있다. 세상은 바뀐 듯하면서도 할머니의 삶을 둘러싼 여건은 크게 바뀌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계속>
구술 양태인·장진순
정리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장진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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