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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인·장진순 80대 노부부의 살아온 이야기<3> – 속초에 터를 잡다
눈만 뜨면 일하러 가던 시절
등록날짜 [ 2019년02월04일 12시50분 ]
양태인·장진순 부부가 통영을 떠나 속초로 온 것은 1965년의 일이다. 양태인 옹은 통영에서 배 목수 일이 줄어 어려움을 겪다가 역시 배 목수인 외숙부의 요청으로 속초로 오게 됐다. 외숙부는 먼저 속초에 와서 일하다가 같이 일할 사람을 구하기 위해 통영으로 가서 양 옹을 설득했다. 양 옹은 돈을 벌어 다시 고향에 돌아갈 요량으로 속초행을 택했다. 당시 통영을 떠나 속초로 온 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속초 인근에서 명태가 많이 나서 어민과 배 목수 등 다수의 사람들이 속초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그런데 외숙부는 자신이 직접 설득해서 양 옹을 데려왔으면서도 정작 조카에게 노임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고 양 옹은 그런 외숙에게 불만이 컸다. 양태인 옹은 배를 한 척 만든 후 외숙과는 더 이상 같이 일하지 않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속초에서의 삶을 개척해나갔다. 외숙은 후에 통영으로 돌아갔지만, 양 옹은 남아 속초 어업의 번영과 쇠퇴를 지켜봤다.
장진순 할머니는 당시 고향 통영을 떠나 온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하지만 몇 년 후 다시 통영에서 배 목수 일이 많아져 통영에 돌아가도 됐지만 어린 자식들의 학교 교육에 지장이 있을까봐 속초를 떠나지 못했다. 양태인 할아버지는 고향 집을 팔고 부모를 모시고 통영을 떠나온 관계로 통영으로 가려해도 돌아갈 곳이 없었다. 또한 고성에는 양 옹의 매형과 누님도 터를 잡고 살고 있었기에 이 지역이 이미 그에겐 객지라고 할 수 없는 곳이 돼 있었다. 그의 매형이 고성에 자리를 잡은 이유도 배의 기관장으로서 ‘명태발이’를 위해서였다.
양 옹은 속초에서 일한 시간의 대부분을 속초 교동 칠성조선소에서 보냈다. 나이가 들면서 일거리가 차츰 줄어갔지만 칠성조선소가 조선소의 기능을 멈추기까지, 그러니까 양 옹은 팔순의 나이에도 담뱃값을 벌 정도로 꾸준히 일했다.
예전 조선소에는 출근시간이 따로 없었다. 새벽부터 일하는 때도 다반사였다. 나중에야 여덟 시 출근이 정착됐다.
“요새같이 시간이 정해진 게 어딨어. 눈만 뜨면 일하러 가는 거지.”
휴식이 보장되는 점심시간도 따로 없었고 점심식사를 하고 나면 바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퇴근시간도 명확하지 않았고 일이 있으면 밤늦게까지 작업했다. 어떤 주에는 쉬는 날도 없이 작업이 계속됐다. 그런데 일요일이나 밤늦게까지 일한다고 해서 노임을 더 받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노임은 일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지급됐다. 배를 수리한다면 무슨 수리냐에 따라 노임 책정이 달랐고 노임은 일당으로 지급됐다. 식비나 상여금 같은 각종 수당은 일절 없었고 오직 일당 하나만 있었다. 일을 하다가 다쳐서 일을 못하게 되면 일당을 못 받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치료비도 온전히 자신의 돈으로 해결해야 했다. 지금처럼 연금이나 산재보험은 생각할 수 없었다. 이는 칠성조선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조선소들도 마찬가지였다.
원산 출신의 칠성조선소 사장은 양 옹을 잘 대해 줬다. 일을 할 때에는 꼬치꼬치 따지기보다 조선소의 으뜸가는 목수인 양 옹에게 믿고 맡겼고 여유가 있을 때면 조선소 바로 앞에 있는 양 옹의 집에 자주 놀러왔다. 어떤 때에는 하루에 세 번씩 놀러 오기도 했다고 한다. 직장에서는 상사였지만 한 동네에 사는 주민이자 술친구로서 양 옹을 대했다. 사장의 부인은 장진순 할머니와도 친했고 가족 간에 친척처럼 허물없이 지냈다.
배 목수는 집 목수보다 일의 양에 비해서는 더 많은 노임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FRP 선박(Fiberglass Reinforced Plastic Ship – 유리섬유 강화플라스틱 선박)이 목선을 대체해 가면서 배 목수의 역할은 축소됐고 계속 일이 줄어들다가 나중에는 몇 주씩 쉬는 날도 많아졌다. 그래서 배 목수의 벌이는 집 목수보다 못한 상태가 돼 버렸다.
배 목수는 집 목수 일도 할 수 있기에 두 가지를 겸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양 옹은 거의 배 목수 한 길만 걸었다. 그런데 양 옹은 돈을 벌기 위해 공사 현장에 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본인의 배를 만들어 거진에서 명태발이에 뛰어 든 적이 있다. 배 목수인 양 옹이 직접 명태를 잡은 것이 아니라 선주로서 사업을 꾸려나간 것인데 양 옹의 기억으로는 당시 그 배로 괜찮은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양 옹의 명태발이는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다음에 계속>
구술 양태인·장진순, 정리 이광호 객원기자
양태인·장진순 부부.
이광호 (campin@hanmail.ne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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