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화창한 날씨라 서울에서 귀한 손님이 와서 동명동 수복탑 갯배를 타고 금강대교를 지나 설악대교를 거쳐 엑스포장 상징탑에 올라 과거의 속초읍 당시의 지형을 설명하게 되었다.
“속초가 속초일수 있는 것은 청초와 영랑 두 개의 맑은 눈동자가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고 이성선 선배 시인의 시 ‘속초’의 일부이다. 3월의 속초항, 하늘은 맑고 갯배 선착장에는 행락인파와 갈매기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봄맞이에 들떴다.
언제까지나 저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크루즈항만 개발정책으로 갯배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나 않을까 안타까움이 감도는 생각도 든다. 유년기 중·고등학교 시절 6년을 등하교 길에 올라 배움의 길과 손발이 되어준 갯배가 서서히 주마등처럼 흐려져 가는 아쉬움 속에 안타깝다.
속초시 청호동 870번지. 청초호 끝은 ‘아바이마을’이다. 왕복 400원의 갯배 체험은 짧은 거리지만 숨겨진 의미는 크다. 당시 부월리2구(청호동)와 속진(중앙동)이 맞닿아 있던 것을 외항과 내항(청초호)이 통수되고 폭 92m의 수로가 생겼다. 속초읍에서 갯배 1척을 만들어 이용했는데, 당시의 갯배의 크기는 트럭한대와 우마차 1~2대를 같이 실을만한 크기였다. 그러나 6·25동란으로 폐선되었다가 수복이 되면서 거룻배(종선)를 사용하게 됐다. 당시 조막손 영감(김영학)이 갯배를 운영했는데 자기 소유의 거룻배를 이용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피난촌 청호동 주민들의 불편은 많았다. 55년초 속초읍에서 지금 모양의 갯배 1척을 만들어 5구(구장 김무림)에 관리를 맡겼다. 61년 한 척을 더 만들어 정식 도선업 허가를 받은 재향군인회 속초지회(지회장 마장건)가 운영했다. 갯배가 있어도 청호동 사람들의 생활은 제약됐다. 수해가 나거나 해일이 일어 청초호 물이 불면 갯배의 운항이 중단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중앙시장을 오가며 생선 장사를 하는 아낙의 발이 묶이고 아이들의 등하교도 멀리 조양동을 돌아가야 했다. 지난 1988년 갯배는 청호동개발위원회에 운영권이 넘어갔고 지난 1998년엔 낡은 목선을 버리고 4,000만원을 들여 현재의 35인승 FRP선으로 바뀌었다.
갯배와 갯배나루는 TV드라마 ‘가을동화’와 TV오락프로그램 ‘1박2일’로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갯배나루는 건어물가게와 횟집, 생선구이집, 오징어순대집 등이 들어서며 관광 번화가로 도약했다. 관광객들에게 관심을 받는 것은 좋지만 이것이 아바이마을에 아프게 스며있는 한국 근현대사의 단면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이젠 구수로 교량(금강대교)과 신수로 교량(설악대교)이 연결돼 갯배를 이용하지 않고도 시내와 교통할 수 있다. 청호동과 갯배 그리고 갯배나루는 잃어버린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길목이므로 우리는 여전히 그곳을 ‘실향1번지’라 부른다.
천혜의 아름다운 도시 속초가 관광도시로 성공하려면 무분별한 개발보다 속초 본연의 자연과 역사를 살리는 문화관광정책이 필요하다. 갯배가 사라지면 아바이 마을도 사라지고 6.25의 참화로 세대를 이어 애끓던 피난민들의 그리움도 물거품이 될 것이다. 삶의 궤적(軌跡)이 묻어있는 역사의 현장은 그 자리에 존재해야 빛이 난다.
장세호
민주평통화통일자문회의 속초시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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