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인기 방송프로그램 ‘알쓸신잡’에 출연했던 경희대 물리학과 김상욱 교수의 강연이 속초 중앙로 문우당서림에서 열렸다. 이날 강연에는 문우당에서 준비한 100여 석의 자리가 가득 찬 이후에도 100여 명이 더 들어와 관객들이 책장과 책장 사이에 선 채로 강의를 들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열 살 전후의 어린이부터 노년층까지, 이날 강연에는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참석해 김 교수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이날 강연은 오후 7시에 시작했는데, 오후 3시부터 강연을 기다린 이가 있었고 관광차 속초를 찾았다가 일부러 김 교수의 강연을 들으러 온 사람들도 다수 있었다.
과학사 맥을 짚은 대중 강연
이날 강연에서 김 교수는 갈릴레오, 뉴턴 등 과학사의 여러 인물과 실험을 소개하며 과학과 수학의 의미를 짚었다. 대중 강연이긴 했어도 문외한들에겐 그리 쉽지만은 않은 강의였다. 김 교수는 강의에서 그리스 철학, 불교 등 과학 외적인 소재로도 얘기를 하며 과학적 사실에 대한 강연을 펼쳤고 이따금씩 동영상을 보여주며 관객들이 과학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게 노력했다.
김 교수는 강연 도중 한 번씩 과학과 관련된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약간은 생소하고 어려운 내용이라 터져 나오는 웃음 속에서 쓴웃음을 짓는 이도 더러 보였다. 이날 강연장에는 흥미로운 표정을 짓는 이들이 다수였다. 특히 수학의 필요성을 얘기하는 부분에서는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갈릴레오는 자신이 발견한 하나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한 권의 책을 썼는데 뉴턴은 공식 하나로 이를 정리해냈다. 김 교수는 이 사실에 경이로움을 표했다.
“우주를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면 복잡합니다. 그러나 수학식으로 나타내면 간단하지요. 수학은 우주를 이해하는 언어입니다.”
김 교수는 강연에서 원자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는 듣는 이에 따라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세상의 만물은 레고 블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불편한 진실
계속되는 김 교수의 설명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예전에는 생명체를 구성하는 물질과 무생물을 구성하는 물질은 다르다고 봤다. 하지만 과학 연구는 이런 생각이 틀렸음을 입증하고 있다. 생명체와 무생물은 원자로 구성돼 있다는 점에서 같고 따라서 과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생물이 무생물보다 특별하다고 볼 수도 없다. 모든 물질은 원자들의 조합으로 구성돼 있으며 그 물질을 해체하고 원자들을 다르게 조합하면 다른 물질이 된다. 돌에서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고 병균에서 약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현대 생물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우월적 지위는 박탈된다. 생명체의 DNA에는 유전정보가 담겨 있으며 이는 DNA 복제와 단백질 합성으로 새로운 세포에 전달되는데 이 방식이 인간이나 여타의 동물이나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인간도 진화의 단계를 거쳐 온 여러 동물 중의 하나이며 인간이란 존재는 근본적으로 원자로 이뤄진 물질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원자의 조합으로 태어나서 원자로 다시 쪼개지고 다른 물질의 구성요소가 된다.
세상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신을 상정할 필요도 없고 나아가 이 세상에는 의미와 의도도 없다.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것들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는 환상에 불과하다. 돈, 평등, 자유, 사랑, 민주주의, 인권, 주식회사 등등 인간이 만들어낸 가치들은 인간들이 상상을 통해 합의한 것일 뿐이다. 현대 과학 연구에 입각한다면 세상의 무의미를 설파하는 것이 허무주의자의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상상의 합의는 바꿀 수 있다”
김 교수의 강의가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이 지점에서이다. 김 교수는 자연법칙과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상상의 합의’를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자연법칙은 바꿀 수 없으므로 인간은 이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지구의 공전과 자전, 생명체의 진화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 자연법칙이므로 이를 부정하거나 뒤집으려고 시도하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일이다. 반면,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을 진리인 양 순응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여성은 대학에 가서는 안 된다’는 말, 그리고 ‘주 5일 근무를 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주장은 단지 ‘상상의 합의’에 지나지 않으며 불변의 진리가 아니기에 바꿀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 사회는 그러한 주장들을 극복해냈다.
김 교수가 강연에서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책에 있는 다음과 같은 구절은 이러한 견해의 연장선에 있다.
“과학이란 논리라기보다 실험이며, 확신하기보다 의심하는 것이며 권위적이기보다 민주적인 것이다. 과학에 대한 관심이 우리 사회를 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만드는 기초가 되길 기원한다.”
한편, 문우당서림의 저자 초청 강연은 월 1, 2회 열리고 있으며 오는 26일 오후 3시에는 전 한국일보 기자 서화숙 작가의 강연이 예정돼 있다. 서 작가는 이승만 비판 동영상으로 유명하며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수백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26일 강연에서는 그의 신간 <나머지 시간은 놀 것>이라는 책으로 정원 가꾸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경희대 물리학과 김상욱 교수.
지난 12일 속초 중앙로 문우당서림에서 열린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의 강연. 이날 강연은 200여 명이 몰려 관객들이 책장과 책장 사이에 서서 강의를 들을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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