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위에서는 80대 노부부를 보는 일이 쉽지 않다. 80대 이상에서는 부부 두 사람 중 한 명이 이미 유명을 달리 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남편이 살아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번 연재의 주인공 양태인·장진순 부부는 각각 1935년생, 1937년생으로 두 사람 다 만으로 80대이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참혹한 한국전쟁을 겪었으며 남편은 배를 만드는 목수로, 아내는 생선 장사 등으로 오랫동안 일해 왔다. 두 사람은 다 경남 통영 출신으로 이들이 속초에 정착한 것은 1960년대 중반이며 그 세월은 50년이 넘었다. 이들의 50여 년 시간 속에는 속초의 성장과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통영도 전쟁 소용돌이에 휘말려
양태인 옹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집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선박 건조용 목재를 재단하는 일을 했고 그의 어머니는 부산 등을 다니며 생선 장사를 했다. 집에서 농사를 짓기도 했으나 조그만 밭에서 고구마나 옥수수를 키워 먹는 정도였다. 양태인 옹은 일제 강점기에 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학교 교사들은 모두 일본인이었고 그들은 한국어 사용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교사는 각각의 학생들에게 1주일에 7장의 쪽지를 나눠주고 한국말을 하면 1 장씩 뺏었고 한 주 동안 4장 이상 압수된 학생은 매로 다스렸다. 양 옹도 어린 시절 이 일로 일본인 교사들에게 엉덩이를 많이 맞았다고 한다. 양 옹은 해방 이후 1년 정도 학교를 더 다녔고 가정 형편이 좋지 못해 그의 학업은 초등학교 3학년으로 마무리됐다.
많은 이들이 한국전쟁 기에 남해안은 전쟁의 피해를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통영은 잠시이긴 해도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인민군들은 양태인 옹과 장진순 할머니가 살던 지역을 이틀 정도 점령했다. 양 옹은 인민군들이 이 지역을 점령한 후 산에서 구덩이를 파던 것을 목격한 바 있다. 그런데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인민군들이 주민들에게 밥을 달라고 한 적은 있어도 행패를 부리거나 한 일은 없다고 한다. 물론 이는 인민군의 점령 기간이 너무 짧고, 또한 두 사람 다 어릴 때라 인민군을 맞대면할 상황이 없어서 개인적으로 그러한 일을 겪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인민군들이 다 죽으려고 왔지.”
장진순 할머니의 말이다. 양 옹과 장진순 할머니의 이야기에 따르면 인민군들은 진주 이틀 만에 전멸했다. 통영은 원문고개만 막으면 못 빠져 나가는 곳이라 살아 돌아간 인민군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전문가의 의견으로는 당시 인민군 일부는 배를 타고 바다를 통해 도망 친 경우도 있다. 장진순 할머니는 자신의 밭에서만 해도 10여 명의 인민군들이 쓰러져 죽어 있는 것을 목격했다. 할머니의 말에 의하면 당시 인민군들 중 상당수가 10대 중후반 정도로 어렸고, 할머니는 그 어린 나이에 남의 밭에서 죽어 있는 인민군의 모습이 너무 불쌍해서 울었다고 한다.
보도연맹원들의 죽음
양 옹은 이 시기 그의 여동생을 잃었다. 잠시 피난을 갔다가 여동생이 집으로 가자고 졸라서 돌아가는 길에 국군과 인민군의 전투에 휘말렸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양 옹은 당시 동생이 집으로 가자고 조르지만 않았어도 죽지 않았을 거라고 말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인민군들이 이들의 고향을 점령한 것은 잠시였지만 이 지역민들에게 그 후유증은 컸다. 장진순 할머니는 인민군들이 쫓겨 간 후 국군이 인민군에게 밥을 해주거나 물을 떠다준 사람까지 색출해서 총살했다고 한다. 양 옹에 따르면 국군은 잡아간 사람들을 통영 동래산에서 열 명, 스무 명씩 손을 뒤로 묶어 놓고 총살했다. 장진순 할머니는 당시 친구의 오라버니들이 여러 명 희생됐다고 기억한다.
이들에게는 보도연맹에 대한 기억도 남아 있다. 양 옹의 증언에 따르면 국군에 의해 집단으로 죽은 보도연맹원들은 스무 살 정도의 사람들이 많았으며 더러 30대도 있었다. 이들은 바닷가에서 총살된 후 바다로 던져져 통영 앞바다의 바닷물이 벌겋게 변했고 시체들이 둥둥 떠다녔다. 그런데 보도연맹원들이 죽은 시점에 대해서는 양 옹과 장진순 할머니의 진술이 엇갈린다. 양 옹은 보도연맹원들이 죽은 것이 인민군이 마을로 오기 직전이었다고 기억하고 있고 장진순 할머니는 인민군들이 전멸한 이후라고 떠올리고 있다.
양 옹의 말에는 이들의 죽음에 대해 어이없어 하는 마음이 가득 배어 있다.
“멋모르고 보도연맹 가입하라고 해서 도장 찍었다가 그래 죽었네.”
구술 양태인·장진순 : 정리 이광호 객원기자
양태인·장진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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