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호족의 거관(居館)으로서의 속초성지
《동국여지승람》간성군 단유(壇儒)편을 보면, ‘설악(雪嶽)은 신라사전(新羅祀典)에 우성군(迂城郡=간성군의 옛 이름이나 수성군(守城郡)으로 오자로 여겨짐)에 속한 명산으로 소사(小祀)에 실려 있다’고 한다.
‘소사(小祀)’란 신라가 각 지역을 정복한 후 그 지역의 부족들이 이미 제사를 지내왔던 산천신(山川神)들을 신라의 신으로 흡수한 제사(祭祀)이다.
이 소사는 전국에 24곳이 있는데, 이 지역에는 각기 고대부족들이 있어서 이들을 신라가 통합하면서 그들 조상신(祖上神)과 산천신(山川神)을 정치적 재편성을 위해 즉 그 지역의 반(反)신라적 감정을 완화시키려는 목적에서 이들 지역의 산천을 사전(祀典)에 편입시켜 제사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설악산을 중심으로 한 양양과 간성지역 일대에도 강원도의 실직국(悉直國, 지금의 삼척시)처럼 신라에게 위협을 줄만한 고대부족 또는 국가형태로의 발전 이전단계인 군장국가(君長國家), 성읍국가(城邑國家) 정도의 세력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 국가는 철기시대 초기의 국가로 속초 청호동지역에서도 철기시대 유적지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7세기 전·후 이지역의 지방호족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서는
① “지금의 영동지역의 고성군, 간성군, 양양군, 강릉시, 삼척시 등이 모두 고호(古號)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읍호(邑號)는 그 지역에 일정하게 세력권이 형성되어 공동체적 삶이 영위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러한 세력권은 적어도 삼국의 태동기 이전시기로부터 파악되고 있다.”(「신라의 북방진출과 이사부의 우산국 복속」, 이규대)
② 양양군 양양읍 포월리 산 59번지 고분에서 출토된 고구려계 금동관고리 7점을 유추해 볼 때 이 지역이 4~6세기 고구려 영토이었을 당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가 있었음을 가늠해 본다.
③ 제작시기를 알 수 있는 연호를 가진 명문기와「天慶三年癸巳四月日」가 속초성과 양양 진전사(陳田寺)에서도 출토되었다는 점과 속초성, 진전사, 설악산 권금성의 출토 기와류의 등면에 새겨진 문양도 동일한 것은 지역 내 한 생산품을 사용한 결과로 여겨지며, 출토 유적의 성격이 사찰인 것을 고려해 보면 진전사, 권금성, 속초성이 하나의 세력에 의해 경영되고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④《고려사절요》충렬왕 9년(1283) 4월 기사에 실린 ‘원나라를 오고갔던 동계 간성(杆城) 사람 송번(宋蕃)과, 《세종실록지리지》의 간성군(杆城郡)의 토성(土姓, 그 지역을 본으로 하는 성씨)이 ‘송(宋)’과 ‘이(李)’, 양양군(襄陽郡)의 토성(土姓)이 ‘김(金)’, ‘이(李)’ 등 양양군과 간성군 사이에 위치한 속초지역까지 영향을 끼친 권세있는 지방호족으로 추측할 수 있다.
1985년 속초시 교동 산199번지 교동택지개발구역의 한 고분군에서 출토된 청자상감 우점문완(靑瓷象嵌雨點文盌)과 청동 숫가락은 고려시대(14세기말로 추정) 후기의 유물 (현재 국립춘천박물관에 소장)로 고려시대 이 지역에 상당한 지위가 있던 세력이 존재 했었음을 암시해 준다.
몽골의 침입 이후 또는 조선시대 세종의 산성(山城)정비(1429년) 정택 이후에 속초성이 성(城)으로서의 생명을 다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후, 속초리 성지의 남쪽언덕에는 묘(墓)가 하나 생겼는데, 묘의 주인은 강릉 최씨 충무공(忠武公, 일명 필달파 必達派) 후손인 비인공파(庇仁公派)의 최후태(崔厚泰- 강릉 최씨 25대손)이라는 분으로 족보를 헤아려 볼 때 대략 1688년경에 태어나서 1750년경에 돌아가신 분이다. 강릉 최씨는 강릉 김씨, 강릉 박씨 등과 더불어 영동지역의 세족(勢族)인데, 강릉 최씨의 시조 최필달(崔必達)은 고려 초기 왕건(王建)을 도와 삼한통합(三韓統合)에 공을 세워 삼중대광 삼한벽상 개국찬화공신(三重大匡三韓壁上開國贊化功臣)이 되었으며, 그 후손들이 강릉·양양·고성 지방에 세거하면서 중앙정부의 요직 또는 지방의 좌수·별감·호장의 역할을 하였다. 국가가 관리하던 성(城)이 있었던 곳이라면 당연히 국가의 소유였을 텐데, 한 지방 유력가문의 소유로 넘어갔다는 것이 의아하지만….
고려의 건국초기인 성종2년(983년) 이전에는 전국적인 규모로 중앙에서 파견된 상주(常住) 지방관은 없었다. 지방은 각지에 저마다 성을 쌓고 스스로 성주(城主) 혹은 장군(將軍)이라 칭하는 호족들의 손에 맡겨져 있던 실정이었다.
추정해 보건데 이 곳이 전투성(城)의 용도였다면 국가의 소유로 관리·운영되었을 것인데, 고려 초부터 중앙에 편입된 호족의 군사(軍士), 성(城)들이 성(城)의 용도가 폐해진 이후 또는 고려 중기이후 권문세족의 세력 하에 사족의 소유가 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확실한 것은 묘가 생긴 시점인 1750년경을 이후로 성의 용도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속초성에서는 유달리 ‘관(官)’자 명의 기와가 많이 출토되었는데, 홍성 월산리유적(2001년 중앙문화재연구원 발굴)과 영동 계산리 유적(2002년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발굴)에서 ‘○官’,‘官○’명의 명문기와가 출토되었고, 두 곳 모두 지방호족의 거관일 가능성이 높다하였다. <계속>
정상철
속초문화원 부설
속초시향토사연구소 연구위원
<북쪽해안에서 바라본 속초리성지(출처 : 속초감리교회80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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