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설악고등학교에서는 졸업식이 있었다. 요즘의 졸업식은 과거의 그것과 어떤 면이 비슷하고 또 어떻게 다를까? 설악고 졸업식을 통해 오늘날 졸업식 풍경을 들여다본다.<편집자주>
졸업식이 열리는 설악고 체육관 앞에는 차량의 행렬이 길게 이어지고 그 옆으로는 꽃다발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분주하다. 졸업식장 입구에는 “비싸서 한 개만 샀다”고 익살스러운 문구가 적힌 대형 화환이 내방객들을 맞고 있다.
졸업식을 앞둔 체육관 안의 모습은 더욱 번잡하다. 두툼한 겨울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행사장을 가득 메워 발을 디딜 틈이 잘 나지 않는다. 행사를 준비하는 교사와 교직원들은 약간 긴장한 듯 보이고 졸업생들과 학부모들은 들뜬 표정들이다. 졸업식장에는 정복 차림의 경찰들도 와서 만일의 사고를 대비하고 있다.
딸의 졸업을 축하하러 왔다는 한 부부의 말에서는 홀가분한 기운이 느껴진다. 막내를 이번에 타지의 대학에 보낸다는 부부는 “이제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네요”라고 말하며 뿌듯한 기분을 내비친다.
두 팔에는 꽃다발이 한 아름
졸업식이 시작되고 각종 상장과 장학금 수여식이 길게 이어진다. 도지사상, 도의회 의장상, 강원도 체육회장상, 국회의원상, 속초시장상 등 수상자들이 족히 수십 명은 된다. 학생들이 호명되고 수상을 할 때 이를 지켜보는 학생들 중 몇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쩌렁쩌렁하게 함성을 지르기도 한다.
졸업식장에는 튀어 보이는 외모의 학생들도 여럿 보인다. 귀 한쪽당 귀고리를 두 개씩 한 학생,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학생들, 예쁘게 화장한 얼굴들 등 이제 성년을 맞는 이들이 개성을 한껏 뽐내고 있다.
앞에서는 졸업식이 진행되고 있는데 졸업식장에 앉아 있는 한 학생에게 중년여성이 다가와 꽃다발을 건넨다. 꽃다발을 건네는 여성의 표정은 너무도 밝지만 이를 받는 학생의 얼굴은 어둡다. 학생은 꽃다발을 받자마자 바로 눈길을 돌려 단상을 향해 멍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도 여성은 흐뭇한 듯 옆에서 학생을 바라본다.
졸업 축하 공연에 나선 이들의 모습은 흥겨우면서도 그 눈빛은 진지하다. 강한 비트의 음악 속에서 인상적인 춤으로 좌중을 들썩이게 한다.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유명한 아이돌 스타 못지않다.
체육관에서의 졸업식이 끝난 후 학생들이 각자의 교실로 이동하는 시간. 잠시 누군가를 기다리는 한 졸업생의 두 팔에는 꽃다발이 한아름이다.
“전 못 해 봤던 걸 해 보고 싶어요. 우선 염색부터 하고 싶네요.”
또 다른 학생은 졸업 소감을 묻는 질문에 표정이 약간 묘하다.
“앞으로 뭘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어요.”
체육관에서 좀 늦게 나온 한 학생은 급하게 교실로 이동하다가 이렇게 말한다.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벌써 졸업인 게 믿기지 않아요.”
손에 들고 있는 꽃다발은 누가 준 거냐 묻자 “후배요”라고 짧게 답한다. “그 후배가 여자친구?”냐고 되묻자 껄껄껄 웃으며 극구 부인한다.
교실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발걸음
졸업식이 끝난 후 3학년 각 교실에서는 졸업장 전달이 한창이다. 3학년 8반에서는 담임인 김해진 교사가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고 졸업장을 전달한 후 한 마디씩 건네며 포옹을 한다. 김해진 교사의 한쪽 볼에는 붉은 루주 자국이 선명하다. 한 졸업생의 ‘작품’이다.
졸업장을 받으러 오는 학생들의 발걸음은 가볍다. 키가 큰 한 남학생은 자신의 이름을 듣고 껑충껑충 뛰어와 담임교사를 와락 껴안으며 졸업의 감격을 드러낸다.
교사가 각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얘기는 다 다르다.
“감기에 걸렸는데도 이렇게 나와 줘서 고마워.”
“너를 졸업시킬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
“졸업과 취업을 축하한다.”
졸업장 전달이 끝나고 교사는 학생들 모두에게 말한다.
“자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학급 전체 사진을 찍고 3학년 8반의……”
교사의 말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학생들의 커다란 탄식이 동시에 터져 나온다. 단체 사진을 찍는데 담임교사는 울컥한 듯 손으로 입을 가린다.
공식적인 일정은 마무리됐지만 학생과 학부모의 발걸음은 교실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학생들은 담임교사에게 자신과 함께 사진을 찍자고 얘기하고 교사는 이를 마다하지 않고 전부 응하느라 바쁘다.
이제 그 많던 사람들이 다들 돌아갔는데 교탁에는 졸업장 하나가 외롭게 덩그러니 놓여 있다. 교사는 이를 바라보며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졸업식을 마무리한 김해진 교사는 시원하면서도 섭섭하다며 다음과 같이 소감을 표한다.
“지난 1년간 우리 학급에 우여곡절들이 많았지만 이렇게 졸업을 맞이해서 기쁘네요. 학생들에게 인생의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이며 졸업 후에 아름다운 꽃이 되길 바란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공식적인 졸업식 일정이 다 끝났지만 학생들의 사진 촬영은 계속 이어졌다.
지난 8일 진행된 설악고등학교 졸업식.
졸업 축하 공연 중인 학생들.
졸업식장 앞에 놓인 화환. “비싸서 한 개만 샀다”고 익살스러운 문구가 적혀 있다.
교사가 졸업장을 전달하며 학생과 포옹하고 있다.
상을 받는 학생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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