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여섯 시를 넘긴 시간, 속초 동명항 선착장에는 배들이 가득하고 여러 대의 배에서 나는 엔진 소리가 요란하다. 상공으로는 많은 수의 갈매기가 날아다닌다. 갈매기들은 허공에 떠 있다가 수면을 향해 몸체를 내리꽂듯 빠른 속도로 낙하해 물고기를 사냥한다. 이런 소음과 풍경들이 한겨울 새벽 바다를 활기차게 보이게 만든다.
1년 중 낮이 가장 짧은 날인 동짓날 이른 아침, 해가 뜨기에는 한 시간 정도가 남았지만 동명항 선착장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어민들이 배에서 해산물을 육지 위로 옮기고 있다. 고기들은 모두 활어들이다. 배의 난간대에 서서 고기를 육지로 올리는 어민의 모습이 곧 떨어질 것처럼 아슬아슬 해보이지만, 어부의 발걸음이 너무 능숙하다. 이내 선착장에 많은 대야들이 2열 종대로 길게 정렬한다.
7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 가장 구석에서부터 경매가 시작된다. 경매라고 하면 사람들이 떠들썩할 것 같지만 상인들은 긴 말을 하지 않고 생선의 상태를 유심히 살피고 쪽지에 가격을 적어서 경매사에게 건넨다. 경매사도 필요한 말만 할 뿐이다.
“0번, 0원, 0호.”
대야번호, 가격, 낙찰자를 얘기하고 바로 다음 경매를 진행한다. 다소 소란스럽고 경매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힘든 청과물 경매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하나의 배에서 잡은 고기들에 대한 경매가 끝나면 사람들은 늘어선 대야들을 따라 이동한다. 경매에 참가한 한 무리의 사람들은 2열 종대를 천천히, 그리고 대체로 요란하지 않게 조금씩 이동해 간다. 경매를 기다리는 어민들은 자기 차례가 될 때까지 대야의 해산물에 바닷물을 연신 부어댄다. 자신이 내어 놓은 해산물이 조금이라도 더 싱싱하게 보이게 하려는 소박한 노력이다.
경매장에는 고기 냄새보다 여러 대의 배에서 풍겨 나오는 기름 냄새가 더 강하다. 수협 직원으로 보이는 한 사람은 상인들과 어민들에게 자양강장제를 열심히 돌리고 있다. 그리고 어느새 동명방파제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일출을 보기 위해 나와 있다. 관광객들 중 일부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경매의 현장에 다가와서 지켜본다.
판매가 끝난 어민들은 다시 바다를 향해 떠나고 그 사이 다른 배들이 그 자리를 메운다. 배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배경으로 경매는 한 40분 정도 활기를 띤다. 빨간 모자를 쓴 속초수협 직원들은 활어유통센터 상인들의 가게로 경매된 해산물들을 옮겨준다. 대야에서 다른 플라스틱 상자로 고기들을 옮겨 담은 후 이 상자를 들거나 고리로 끌고 가서 상인들의 수조에 직접 고기들을 넣어준다. 고기를 옮기는 일은 원래 선주들이 해야 하지만 가끔씩 수협 직원들이 선주들을 위해 봉사 차원에서 이렇게 한다.
시간이 좀 지나자 드문드문 배들이 들어오고 선주들은 잡아온 고기를 급한 손길로 대야에 나눠 담느라고 분주하다.
“오늘은 고기가 많이 없네요.”
경매 후 다시 바다로 떠날 채비를 하는 한 선주가 약간 힘이 빠진 듯 이렇게 얘기한다. 그 옆으로 동남아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뱃사람이 순박한 표정을 지어 보인 후 항구에 걸었던 밧줄을 풀고 배 위에 오른다. 배의 기동은 매우 빠르다. 순식간에 배를 돌려 저 멀리 바다 한가운데에 나가 있다.
바쁜 시간이 지나고 수협 직원들이 대야, 상자, 번호판을 정리하는데 한 척이 들어오고 잠시 후 경매사가 호루라기를 불어 상인들을 불러 모아 경매를 진행한다. 그제부터 점심시간이 오기 전까지는 이런 식의 경매가 반복된다.
국내산, 자연산 활어만 취급하는 동명항
작은 배들이 몇 척 다녀 간 후 제법 큰 배가 동명항 입구에 섰고 다시 호루라기 소리가 울린다. 이번 배는 모양새가 지금까지 다녀간 배들과는 다르다. 선체의 길이가 20미터 정도 돼 보이고 배 위에는 커다란 크레인 두 개가 있다. 정치망에서 고기를 걷어오는 ‘어장배’다. 동명항에 들어오는 ‘어장배’는 총 두 대이다. 다른 작은 배들은 잡아온 고기를 육지로 올려서 경매를 진행하는데 이번에는 고기를 담은 상자들을 그냥 배 위 난간 가까이에 뒀다. 상인들은 배의 난간대에 올라 고기를 살핀다. 배가 크고 모양이 특이해서인지 상인 말고 이를 구경하는 이들도 다수 보인다.
여덟 시가 넘어가자 갈매기들의 수도 줄었고 수협 직원들은 경매장 주변에 모여서 담소를 나눈다. 일출 구경을 위해 방파제에 나왔던 사람들도 거의 돌아가고 없다.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던 한 수협 직원은 동명항 자랑을 늘어놓는다.
“동명항에는 완전히 자연산만 있죠. 양식 해산물은 일절 취급하지 않아요. 수입산도 없어요. 전국에 이런 데가 없을 겁니다.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 좋겠는데 사람들이 잘 모르네요.”
동명항에 경매를 할 수 있는 어촌계는 장사, 동명, 청호, 금호, 교동 이렇게 다섯 어촌계로 이들 어촌계의 배는 총 150척 정도이다. 동명항에서 하루에 경매에 참가하는 배는 60척쯤 된다. 매월 둘째, 넷째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이 정도의 배들이 동명항의 새벽과 아침을 활기차게 달군다.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경매가 끝난 한 어민이 낙찰 결과표를 입에 물고 배에 올라 다시 바다를 향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동명항 겨울 경매는 해가 뜨기 전인 오전 6시 50분에 시작한다.
경매에 내어놓은 해산물에 연신 물을 붓는 어민.
수협 직원들이 어민들을 대신해 낙찰된 고기를 상인들의 수조로 나르고 있다.
정치망의 고기를 가져오는 ‘어장배’의 난간대에 올라 경매 대상 해산물을 살피는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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