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옹의 아내는 40대 중반일 때 뇌졸중을 앓게 됐다. 아내의 병환은 2년 정도 이어졌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라 치료비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예전에 그와 아내가 모아 둔 돈을 친척에게 빌려 준 일이 있었다. 산골 출신인 그의 아내가 서툰 실력으로 생선 할복을 하면서 번 돈과 그가 뱃일을 하면서 저축한 돈이었다. 친척이 사업을 한다고 해서 그의 아내가 어렵게 모은 그 돈을 김 옹의 친척이 요긴하게 쓸 수 있게 해줬다. 하지만 돈을 빌려 준 지 한참 동안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터였다. 김 옹은 아내가 병을 얻자 돈을 돌려받아 서울의 큰 병원을 찾아서 아내를 치료하고자 했다.
김 옹은 돈을 빌려 간 친척에게 가서 “돈 받으러 사람이 왔다 생각하지 말고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 달라”고 말하며 간절하게 하소연했고 친척도 돈을 갚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김 옹은 결국 그 돈을 돌려받지 못했고 큰 병원에서의 진료는 미룰 수밖에 없었다. 대신 김 옹은 치료비를 벌기 위해 아내를 집에 두고 오징어를 잡으러 멀리 소흑산도까지 가게 됐다. 그는 아내에게 허락을 받고 멀리 간 것이지만 그가 집을 비운 사이 큰일이 생기고 말았다.
소흑산도 인근에서 새벽 조업을 마치고 뭍으로 들어왔을 때 선장이 김 옹을 불렀다.
“형님, 형수님이…… 돌아가셨어요.”
선장은 김 옹에게 배에 있는 비상금을 내어주며 서둘러 속초로 갈 수 있게 해줬다. 소흑산도에서 속초까지는 너무도 먼 길이었다. 한반도 이남으로만 보자면 서남쪽 끝에서 동북쪽 끝으로 올라오는 것이니 여정은 대단히 복잡했다. 소흑산도에서 대흑산도로, 다시 목포로 이동해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목욕을 하지 못하고 옷도 갈아입지 못했으며 비린내 나는 장화를 신은 채로 소흑산도를 떠나왔기에 여객선과 기차에서 아무도 그의 옆에 앉으려고 하지 않았다. 자리가 한 군데 나면 서로 앉으려고 하는 복잡한 완행열차에서 그의 옆자리만 공석이었다. 서울역에서 상봉터미널을 가려는데 택시마저 태워주지 않으려고 해 애를 먹었다. 시외버스를 타고 속초에 와서 속초의료원에 도착하기까지 너무도 먼 길이었다.
스무 살에 자신만을 믿고 속초에 온 아내가 호강 한 번 못해보고 고생만 하다가 죽었다는 생각에 그는 너무도 괴로웠다. 오징어잡이를 멀리 한 번 갔다 와서 아내를 데리고 큰 병원에 가려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도 그를 더욱 아프게 했다. 동료들이 조업을 마치고 아내 옷을 사가지고 갈 때 자신은 그래 본 적 없었고 아내와 외식을 제대로 해본 적도 없었다. 부모와 동생들과 함께 살아서 자신의 아내에게만 그렇게 하기에는 다른 가족들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여윳돈이 있다 해도 다른 가족들까지 챙기기엔 부족해 아내에게도 무언가 해주기가 힘들었다. 수십 년간 짜장면 한 그릇 사주지 못한 아내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졌다.
그는 어려운 형편에도 아내를 화장하지 않고 묘를 만들었다. 아내의 장례를 치른 그날 밤 세 명의 자식들을 불러 앉혀 놓고 당부의 말을 했다. 나중에 자신이 죽어서 아내에게 갈 때 부끄럽지 않게 해달라는 말이었다. 그러기 위해 자식들이 바르게 커주길 바란다고 일렀다.
훗날 김 옹의 자녀 세 명은 모두 대학에 진학했다. 김 옹은 자신의 나이대에 자식 모두를 대학에 보낸 사람은 청호동에 자신 말고는 아마 없을 거라며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다음에 계속>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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