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우 작가가 새 장편소설 <몽진(蒙塵)>을 내놨다. <몽진>은 임진왜란기 전주사고의 조선왕조실록을 보존하기 위해 애쓴 사람들을 다룬 역사소설이다. 작가는 많지 않은 사료를 꼼꼼히 검토하고 이를 뼈대로 하여 여기에 풍부한 살을 붙여 하나의 장편소설을 완성해냈다.
‘몽진(蒙塵)’은 머리에 먼지를 쓴다는 뜻으로, 군주가 난리를 맞아 피신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소설 <몽진>에서는 당시의 임금인 선조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대신 태조의 어진(초상)과 실록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에서 머리에 먼지를 뒤집어쓰는 사람들은 지방의 선비와 민초들이다. 어쩌면 작가는 이들이야말로 임금보다 더 중요한 사람들이란 의미에서 ‘몽진’이란 제목을 달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할 당시 조선왕조실록은 서울 춘추관을 비롯해 충주, 성주, 전주, 이렇게 네 군데에서 보관 중이었는데 전주사고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실록은 전란을 거치며 모두 소실됐다. 전주사고의 실록과 어진, 그리고 <고려사>는 안의(安義), 손홍록(孫弘祿), 오희길(吳希吉) 등의 노력으로 무사히 보존됐고 후대에 전해질 수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여기에는 전주사고의 실록을 지켜낸 이들에게도 그 공이 있다 할 것이다.
소설은 어진 관리를 담당하는 오 참봉이란 인물의 고민에서 시작한다. 그는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왜적을 두고 어진과 실록을 어떻게 지킬지 고심을 거듭한다. 이후 오 참봉을 비롯한 관리들은 관군이 왜적을 방어하기에도 역부족이라 민간인을 뽑아서 실록과 어진을 영은산(내장산)으로 옮기기로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이 일을 지역의 유생 ‘안’과 ‘손’이라는 인물에게 맡긴다.
‘안’과 ‘손’은 식솔을 동원하고 사재를 털어 전주에서 영은산 용굴암까지 이르는 긴 여정 동안 온갖 고생을 하며 실록을 옮긴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의 반대, 장마, 무더위, 산적의 습격, 정체 모를 이들의 방해, 내부의 의견 대립과 갈등, 병환, 일행의 실종 등 끊임없이 난관에 부딪힌다.
그런데 ‘안’과 ‘손’을 비롯해 임무를 맡은 이들은 온갖 고난 속에서도 헌신적이고 선량하며 현명한 자세로 어진과 실록의 이송과 보존을 위해 전력을 다한다. 등장인물들의 이런 태도는 작품 전반에 두드러져서 마치 이 작품이 그들을 향한 헌사처럼 보이게 한다. 혹자는 이를 작위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등장인물들이 기록유산 보존이라는 역사적 업적을 이룬 것을 감안하면 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점이다.
소설에서는 갈등과 사고가 첩첩산중처럼 이어져서 지루하거나 밋밋한 느낌을 받을 새가 없다. 이 작품에는 스릴러처럼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요소가 있고 험지를 헤쳐 나가는 이야기와 더불어 격투 장면도 많다. 등장인물들이 할리우드 영화의 주인공처럼 정의로운 이들이라 그만큼 대중성을 가진다.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된다면 흥미가 배가될 수 있는 작품이라 할 것이다.
이 소설을 쓴 이완우 작가는 2000년 단편소설 <이브의 초상>을 내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그간 역사소설 <진지왕의 진지한 스캔들>, 지역 색채를 담은 <머구리>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강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추계예술대학교에서 문예창작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속초고, 속초여고 등에서 교직 생활 후 현재는 대학에 출강하며 창작활동에 매진하고 있다.이광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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