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분절, 문화로 잇다_아트플랫폼 갯배.’
2016 마을미술 프로젝트 공모에 당선된 속초문화연대의 프로젝트명은 지역성에 대한 고찰과 프로젝트의 지향점이 분명하다. 두개의 분절은 신수로 건설로 분리된 아바이마을의 현재이다. 분단의 피해자인 아바이마을의 실향민. 그 마을이 신수로 때문에 다시 나뉜 현실을 표현했다. ‘문화로 잇다’는 메시지는 보다 선명하다. 마을미술 프로젝트로 갈라진 마을 주민을 위로하겠다는 의미이다. 그 과정이자 결과물이 ‘아트플랫폼 갯배’이다.
속초시 ‘마을미술 컨설팅’ 후 재도전
속초 마을미술 프로젝트 도전의 역사는 2011년이다. 이동수 화가 중심으로 결성된 ‘속초스페이스’가 첫 시도를 했지만 중간에 포기했다. 이듬해 2012년에 도전했지만 아쉽게 탈락했다. 3D 작업 등 경험부족이 컸다. 다시 마을미술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 속초시가 주최한 마을미술 컨설팅 사업때문이었다.
“프로젝트 도전이 일자리보다 속초에 필요한 사업이라는 사명감이 앞섰어요. 경험과 준비 모두 부족했죠. 그 이후 저도 개인작업 하느라 엄두를 못 냈는데 컨설팅에 참여하고보니 다시 용기가 생기더군요. 마침 평소 자주 만나던 봉포 플라트폼 이기범 대표(속초민예총 미술협회 회장)도 적극 관심을 보여 의기투합했습니다.” 이동수 작가의 도전 이유이다.
두 작가의 밑그림은 다음달 개최된 속초민예총 주관의 ‘마을미술 워크숍’에서 구체화된다. 강사로 참가하며 속초형 마을미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속초시와 민예총 모두 지난해 3회 동안 <설악신문>에 연재된 ‘마을벽화’ 기사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이기범 대표는 우선, 2011년 마을미술 대상지로 검토된 갯배나루 일대를 보았다. 이미 상업지로 변모되어 적당하지 않았다. 다음은 대포였다. 옛 포구의 정취가 사라진 관광어항 대포에 문화 랜드마크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사업비의 한계 때문에 불가능해 보였다. 대상지에 대한 고민은 잠시 접어두고, 속초에 맞는 마을미술의 형태에 대해 생각을 다듬기 시작했다. 그때 떠오른 재료가 컨테이너였다. “5대양 6대주를 누비던 해양컨테이너가 속초의 바닷가에 머물게 되고, 커뮤니티 공간이 된다면 어떤 의미가 발생하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바닷가로 뛰어갔던 것 같아요.”
지역작가와 주민 잇는 ‘소통의 미술관’
그럼, 신수로 남쪽 아바이마을은 언제 대상지로 선정된 걸까? 이기범 대표에 의하면 공모계획 발표 후 첫 번째 회의였다. “지난 2월인가요? 마을미술 프로젝트 공모사업이 뜬 후 교육문화체육과에서 지역 작가들에게 공모사업 설명 및 참여 의지에 대해 묻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그날 시청 담당자가 지금의 마을미술 대상지를 추천하더군요. 그 자리에 아바이마을 주민활동가인 심삼옥 아사모 사무국장이 오셨는데, 전년도 마을미술 컨설팅도 참가할만큼 열정적인 분이었어요. 주민 열정이 저 정도면 되겠다 싶었죠.”
그날 회의 참가자들은 바로 아바이마을로 현장탐방을 갔다. 건너편 갯배나루의 부산스러움에 비하면 몇몇 낚시꾼만 있는 해변가는 적막했다. 하지만 설악대교 밑 해안가에 인접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울산바위와 동해바다 조망이 가능했다. 건너편에 구 수협건물과 청초호, 갯배가 위치한 지리적 이점도 있었다. 심삼옥 사무국장의 연락을 받고 현장에 온 아사모(아바이 마을을 사랑하는 사람들, 회장 정성수) 회원도 든든했다. 아사모는 이미 마을 곳곳에 벽화를 그리는 등 문화를 통한 마을재생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마을미술의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을 선택과 주민 설득이 끝나는 순간이다.
실향민 마을이라는 특성, 재생이 필요할 정도의 낙후된 환경에서 마을미술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기범 대표는 사업계획서를 준비하며 주민의 생각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주민들의 의견은 대체로 비슷했다. 실향민 콘텐츠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지향적인 방향을 설정해 달라는 것. 의외였지만 이해가 갔다. 정체성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컨테이너로 만든 커뮤니티 공간의 역할을 ‘미술관’으로 정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 아바이마을의 미술관이라면 지역 미술의 발전을 위해서도 좋은 공간이라는 점도 고려했다. 운영은 마을주민을 도슨트(안내인)로 키워 문화역량을 키우도록 했다. 미술관 1층은 다양한 미술 체험과 워크숍, 주민 커뮤니티 공간이 된다. 2층은 지역작가 상설전시와 특별전시가 어우러지는 문화공간이 된다. 마을미술이 주민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것은 덤이다. ‘아트 플랫폼 갯배’의 역할은 이렇게 정리되었다. 지역작가와 주민을 잇고, 지역작가와 아바이마을을 세계에 알리는 소통의 미술관.
지역작가 상설전시회 등 과제 산적
지난 5일 속초시 마을미술 프로젝트 관계자 회의가 속초시청 별관 5층 카페에서 열렸다. 마을미술 프로젝트 향후 3년의 비전을 설정하고, 지역작가와 마을주민이 모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이날 합의된 내용은 크게 세 가지이다. 우선, ‘아트플랫폼, 갯배’의 첫번째 프로젝트는 지역작가 상설전시회를 준비한다. 마을미술의 성과물을 지역 미술계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고 다양한 미술 전시회를 하기 위해서이다. 둘째, 마을 주민이 함께 성장하고 주체로 참가할 수 있는 프로젝트의 개발이다. 일단 속초민예총이 갯배문화제 때 진행하는 ‘마을문패’ 프로젝트부터 확대 재생산하기로 했다. ‘노인과 아이들이 함께 하는 노작 공작소’, 마을의 정체성을 미술로 표현하는 ‘마을 이야기 공모전’ 등의 아이디어도 나왔다. 셋째, 마을미술 프로젝트 3년간 아바이마을 전체를 열린 미술관이자 속초의 문화상징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구성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역 작가와의 꾸준한 소통과 워크숍, 외부 작가의 레지던시 추진 등의 활동과 함께 국제 비엔날레 개최라는 원대한 꿈도 나왔다. 이밖에 마을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문화를 통한 도심재생과 마을활동가 양성은 물론 속초시의 도시디자인 환경개선까지 추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인상적이었다. 자연환경이 좋은 속초시가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해결 과제도 많다. 현재 사업 대상지에는 종교기관과 마을 주민이 그린 벽화가 많다. 환경 개선의 측면에서는 좋지만 마을미술 측면에서는 부족하다. 이를 위한 주민설명회 개최가 시급하다. 미술관 활성화를 위한 지역작가의 참여폭 확대도 필요하다. 마을과 미술의 동반성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과감한 사업비의 증액도 필요하다. 아바이마을은 속초시 관광의 허브이자 마을만들기 결과의 바로미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 속초 예술계는 경계를 허무는 소통과 통합의 실험을 하고 있다. 공연예술계는 ‘1시군 1문화행사’와 ‘강원연극제’ 준비를 하며 단체와 지역예술계가 동반성장할 수 있는 화합을 실험했다. 미술계는 마을주민과 지역작가의 만남을 통해 마을재생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단체 이기주의를 넘는 새로운 예술의 흐름이 생성되는 것이다. 당연하다. 고루한 진영주의는 통섭의 창의성을 뛰어넘지 못한다. 속초 예술이 희망적인 이유이다.
김인섭 속초문화원 사무국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2016 마을미술 프로젝트 공모당선의 과정은 행정과 주민, 예술가의 사업도모를 위한 바람직한 교과서이다. 예술가가 먼저 움직이고, 주민이 참여하며, 행정은 실현가능성을 도와주는 상향식 프로젝트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지난 4월 5일 개최한 마을미술 ‘샬렛’을 위한 기획회의. 시청 별관 5층 카페에서 진행된 이날 회의는 고루한 회의장보다 자연스러운 소통의 공간이 편안한 대화를 이끌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마을미술 프로젝트의 메인 컨셉은 ‘아트플랫폼 갯배’이다. 해변가에 놓일 마을미술관은 아바이마을을 예술마을로 변모시키는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