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평소 자주 쓰는 말들 중에 ‘연륜’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정의로는 ‘여러 해 동안의 노력이나 경험으로 이룩된 숙련의 정도 또는 그러한 노력이나 경험이 진행된 세월’이라는 뜻이다. 보통 우리 실생활에서는 ‘연륜이 깊다’, ‘연륜이 느껴진다’, ‘연륜이 배어나온다’ 등의 표현으로 쓰인다. 연륜을 순우리말로 옮겨보면 말 그대로 ‘나이테’다.
일반적으로 온대기후에서 자라는 나무에는 나이테가 있는데, 나이테가 생기는 이유는 나무가 성장하며 굵어지는 과정에서 계절마다 생장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봄, 여름에는 나무의 성장이 빨라 세포의 부피도 커지고 세포벽이 얇아 색깔이 연해진다. 반대로 가을, 겨울에는 생장속도가 늦어져 세포가 작고 세포벽도 두꺼워 조직이 촘촘하고 색깔도 진해진다. 이렇게 보통 1년을 주기로 나무의 연한 조직과 짙은 조직이 반복해서 만들어지는데 이러한 동심원 형태의 고리를 나이테라고 일컫는다.
나이테는 1년에 한 개씩 생기기에 당연하게도 나무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다. 또한 나이테를 보면 나무가 자라온 환경을 알 수 있다. 나이테의 폭이 넓다면 그 때는 물이 많고 나무가 자라기 좋은 환경이라 나무가 급격히 성장을 했음을 알 수 있고, 나이테의 폭이 좁다면 강수량이 적어 비교적 나무가 자라기 좋지 못한 환경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에서는 나이테가 비교적 선명하게 나타나지만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에는 나이테가 없다.
그러고 보면 사람도 나무의 나이테와 마찬가지인 듯하다. 인생을 한 해 두 해 살아가다보면 행복하고 즐거운 경험도 쌓이고, 또 힘들고 슬픈 일도 겪는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나이테를 그려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큰 어려움 없이 순탄하게만 살아왔던 이들은 어쩌면 열대우림의 나무들처럼 나이테가 없거나 희미할 수도 있고, 유독 심하게 고난의 세월을 겪어온 이들은 나이테의 간격이 좁고 이리저리 일그러진 나이테를 그리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지나가고, 한 달, 두 달 이러구러 살아 가다보니 어느덧 올해의 마지막 달에 이르렀다. 올 한해도 돌아보면, 진부하기는 하지만 다사다난했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한해였다. 연초부터 차량사고를 시작으로 좋지 않았던 일들이 유독 많았고, 한편으로는 즐거움이 가득했던 한 여름의 여행 등 기쁘고 행복했던 시간들도 많았다. 하지만 한해를 마감하는 이즈음에 돌이켜보면 왜 좀 더 열심히, 좀 더 치열하게 살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게 된다. 그래도 이런저런 어려움들을 다 견뎌내고 비교적 큰 탈 없이 강건히 지내왔음이 감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 해를 지내면서 좋았고 행복했던 일들은 나이테의 넓고 옅은 부분, 나쁘고 힘들었던 일들은 나이테의 가늘고 짙은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무가 성장하면서 나이테가 하나하나 더 많아지듯이 시간이 더해지면서 좋거나 나빴던 이 모든 일들이 조화롭게 섞이며 우리의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리라. 그런 나이테들이 쌓여가면서 우리는 ‘연륜이 깊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리라.
순탄하기만한 열대우림의 나무들이 가질 수 없는 나이테를 사계절의 변화를 다 겪어야 하는 나무들은 가질 수 있다. 그 쓰임이야 다르겠지만 온대림의 나무들은 그래도 나이테를 통해 그 나무만의 역사를 만들고 있고, 그 고난과 환희의 순간들로 인해 아름다운 무늬목이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다시 돌이켜본다. 올 한해 내가 그린 나이테는 어떤 모양이었을까?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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