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지고 밤이 찾아왔는데도 속초권투체육관에는 구슬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지난 18일 인제에서 열린 강원도복싱협회장배 생활체육복싱대회에서 우승한 노르무라토비 자파르 (Normuratov Zafar) 씨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자파르 씨는 한국에 온 지 5년이 다 된 이주노동자로 1년 남짓 복싱을 배우고 대회에 나가 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비록 아마추어대회이지만 직장인임을 감안하면 이것만으로도 가벼이 볼 수는 없다. 그는 4강전에서 1라운드 TKO로 승리했고 결승에서는 뛰어난 실력으로 판정승을 하며 20대 일반부 75kg 이하 체급에서 우승의 영광을 누리게 됐다.
자파르 씨는 권투인으로서 범상치 않은 눈매를 가지고 있지만 우승의 기쁨이 가시지 않았는지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우즈베키스탄이 고국인 그는 가끔씩 어려운 단어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대화를 나누는 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한국말이 유창했다.
자파르 씨가 운동을 시작한 것은 작년 9월의 일이다. 그는 보디빌딩과 우즈베키스탄 전통씨름 같은 운동을 한 적이 있지만 복싱은 한국에 와서 처음 배웠다. 그는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살이 많이 쪄서 고민하던 중에 자신이 다니던 회사 사장의 소개로 속초권투체육관을 알게 됐다. 그가 다니던 회사에는 속초복싱협회 김남도 회장이 대표로 있는데 김 회장이 진장수 관장(강원도복싱협회 부회장)이 운영하는 체육관에서 권투를 배워 볼 것을 권했다.
자파르 씨는 권투를 배운 이후 직장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1주일에 4~5일, 그리고 한 번에 1시간 반에서 2시간 반 정도 체육관에서 권투에 몰두했다. 어떤 때에는 일요일에도 체육관을 찾았고 이를 가상히 여긴 진 관장이 휴일에 닫힌 체육관 문을 열고 그의 운동을 지도했다.
자파르 씨가 재직하는 회사의 김남도 대표도 자파르 씨의 운동을 배려해줬다. 그가 격무와 복싱 훈련에 지친 모습을 보이면 휴식 시간을 부여해 힘을 낼 수 있도록 했고 이는 그가 우승을 하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자파르 씨는 올 4월에 고국에 있는 형을 잃는 아픔을 겪은 바 있다. 그때 그에게 힘을 준 것이 복싱이다. 그는 당시 경제적 사정 때문에 멀리 있는 고국에 가지 못했지만 권투에 몰두하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진 관장은 이때 그가 힘을 내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진 관장은 “운동을 통해서 슬픔을 풀라”고 얘기했고 “운동으로 이주노동자들에게 모범을 보이라”고도 했다. 그는 형을 잃은 가슴 아픈 사연에도 불구하고 대회에서 우승했고 고국에 있는 가족들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그는 현재 프로 선수로 데뷔할 생각도 갖고 있다고 한다.
“어디까지 가나 한번 해보고 싶어요.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고 싶습니다.”
우승의 여운이 가득한 복서의 말에서 긍정적인 기운이 넘쳐흘렀다. 2012년 런던올림픽 복싱 라이트급 은메달리스트 한순철 선수를 6년 동안 지도한 바 있는 진 관장은 “자파르는 뛰어난 복싱 선수로 성장할 자질을 갖췄다”고 했다. 진 관장은 내년에 자파르 씨의 프로복싱 데뷔전을 추진할 생각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열심히 돈을 모아 우즈베키스탄의 가족을 돕고 싶어요. 그리고 언젠가 한국에서 사업을 하며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이 우의를 다지는 일을 하길 원합니다.”
우승 소감을 마무리하며 환한 표정으로 미래의 소망을 얘기하는 그의 눈빛은 한국에서의 성공을 다짐하는 듯 초롱초롱 빛이 났다. 이광호 객원기자
지난 18일 인제에서 열린 강원도복싱협회장배 생활체육복싱대회 20대 일반부 75kg 이하 체급 우승자 자파르 씨.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