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말이 있다. 춘추시대 노(魯)나라에 미생(尾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신의가 두터워 한번 한 약속은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지키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었다. 그런 미생이 어느 날 사랑하는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기다렸으나 여자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져 개울물이 점점 불어나 물에 잠겨 빠져나가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미생은 끝내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마침내 교각을 끌어안고 죽고 말았다. 사기(史記) 소진열전 등에 나오는 말로 미생의 행동은 우직하게 약속을 지킨 본보기로 보는가 하면, 또 다른 후자의 의미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신의, 즉 작은 명분에 집착하는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것을 논할 때 종종 인용되곤 한다.
그동안 선거철 정당이나 후보자가 제시하는 공약(公約)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돌이켜 보면, 아마도 미생지신의 후자의 의미와 아울러 지켜지지 않는 공약(空約)으로 알고 있는 것이 보편화 되지는 않았는지 생각된다. 선거 때마다 매니페스토 정책선거를 지향하는 캐치프레이즈들이 등장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나라의 정당정치와 제도는 시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고, 이는 선거에 대한 무관심과 불신을 확대하고 재생산해서 정치적·사회적 비용이 과다하게 발생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아쉬운 점은 이제 보름도 채 남지 않은 4·13 총선에서 일반 유권자들이 정당이나 후보자의 정책이나 공약을 알기란 매우 어려워 보인다. 더구나 선거구 획정이 늦어져 지난 3월 3일에서야 공직선거법이 공포되다보니 각 정당의 경선일정이 지연되면서 정당이나 후보자의 공약을 자세히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이런 현실에서 그나마 유권자들이 공약의 장·단점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책·공약알리미 사이트(http://party.nec.go.kr) 공약보기 메뉴에서 정당의 정책과 후보자 선거공보 등을 살펴보는 방법이 있고, 그밖에 언론매체로부터 보도되는 내용으로 정당·후보자들이 어떤 정책을 세우고 있는지 판단할 수밖에 없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 시민운동 성격으로 도입된 매니페스토 정책선거가 이제 10년이 되었다. 그동안 시민단체와 선거관리위원회는 범국민적인 매니페스토 운동을 소개하고 후보자의 선택 기준인 정책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매니페스토 기본요건 및 작성모델을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제시하고 언론에서도 흥미, 동정위주가 아닌 정책 경쟁중심의 보도를 하는 등 매니페스토 정책선거를 유도하였으나 아직 정책선거가 정착되기에는 많은 부분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4·13 총선이 후보자간에 서로 비방하고 모략선전이 없는 정책·공약 중심의 정책선거가 정착되도록 정당이나 후보자가 유권자들에게 구체적인 목표, 추진 우선순위, 이행방법, 이행기간, 재원조달방안을 명시하여 제시하는 공약에 대해 유권자는 꼼꼼히 비교하여 가장 실현 가능한 공약을 제시한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선진 선거문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당선자는 임기동안 자신이 제시한 공약의 실천을 위하여 노력하고, 유권자는 다시 당선자의 공약이 제대로 실천되고 있는지 지켜보고 평가하는 매니페스토 정책선거가 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이선우
고성군선관위 지도홍보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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