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김상호 옹의 외숙이 운영하던 공장의 직원들은 아침에 눈 뜨고 입에서 숟가락만 떼면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일만 빼면 직원들은 일에 매달렸다. 하루의 노동시간이 긴 날은 13시간이 넘었던 것 같다고 한다.
공장에서 여직원들은 천을 짜는 일을 했고 남직원들은 기계 정비를 맡았다. 김 옹은 원단을 부산진역을 통해 서울로 보내는 일을 했고 여기에 더해 공장에서 생기는 다양한 업무들을 처리했다.
천을 만드는 여직원들의 급여는 고정급이 아니라 일한 만큼 받는 식이었다. 하루 일이 끝나면 천의 길이를 재어 그만큼의 하루치 임금이 계상됐다. 천을 짜는 장비가 수동이어서 숙련공과 초보의 업무량은 차이가 컸다.
공장 내부는 천을 짜는 소리가 굉장히 시끄러웠다. 옆에 있는 사람이 말을 해도 거의 알아듣기 힘들 정도였다.
외숙의 공장과 집은 한 공간에 있어서 출퇴근하는 몇몇 사람을 제외한 직원들은 외숙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열다섯 명의 여직원들이 방 두 개에 나뉘어서 잤고 남직원들도 방 하나에서 다 같이 생활했다.
공장에는 식사만 담당하는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식사는 국을 포함해 반찬이 세 가지밖에 안 됐지만 배불리는 먹을 수 있었다. 김치, 나물, 시래깃국을 주로 먹었다. 김 옹은 거기서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있었다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청호동에서 겪던 배고픔을 해결한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으로 보인다.
공장은 평일에는 바빴지만 1주일에 한 번은 쉬는 날이었다. 직원들은 국제시장, 용두산공원 등에 같이 다니며 휴일을 보냈다.
김상호 옹은 일을 위해 외출했다가 공장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한 여직원에게 주기 위해 이것저것을 구입하고는 했다. 그 여직원은 성격이 수더분하고 말이 없었지만 일을 제법 잘했다. 김 옹은 공장에 있던 여러 사람들 중에 유독 그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와 닿았다고 한다.
그 여직원은 경북 영주의 풍기가 고향으로 어렸을 적 양친을 모두 여의고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오빠 집에서 자랐으나 오빠마저 일찍 죽었고 이후 큰언니 밑에서 자랐다. 그런데 큰언니가 딸만 네 명을 낳자 그 남편이 집을 나가서 다른 여자와 새 살림을 차리는 바람에 큰언니는 가난에 시달렸다. 그러한 까닭에 큰언니 집에서 살던 그 여직원은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공장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고향 친구 몇 명과 도시에 나가서 일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부산으로 가게 됐고 거기서 김 옹의 외숙이 운영하던 공장에 취직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여직원은 김 옹이 입대하기 몇 달 전에 외숙의 공장을 관두고 풍기로 돌아갔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명절을 맞아 속초로 가던 김 옹은 풍기역에 내려 그 여직원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 그는 꾸준히 풍기로 편지를 보냈다.
몇 달 후 김 옹에게 입대 영장이 나왔을 때 김 옹은 특별한 계획을 마련하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그대로 입대를 하면 그 여직원이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가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친구와 함께 풍기로 가서 그 사람을 속초로 데려오고자 했다. <다음에 계속>
구술 김상호 · 정리 이광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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