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노학동에 위치한 한 가정집의 바로 앞에 집만큼 큰 천막이 서 있다. 그 천막은 집과 연결되어 붙어 있다. 그쪽으로 다가가는데 천막 안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이불처럼 크고 두툼한 천을 넘기자 개들이 더욱 요란하게 짖는다. 천막 안쪽에 개들이 수십 마리가 보이고 살림도구들이 어수선하게 늘어서 있다. 마치 정리되지 않은 창고 같다. 사람이 여기서 살 것이라고는 생각하기가 힘든 수준이다. 바닥에는 개의 분변이 곳곳에 떨어져 있고 숨 쉬기 힘들 정도로 악취가 심하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작은 강아지 네 마리가 꼬리를 흔들고 있다. 천막에서 이어지는 집 안쪽에는 더 많은 개들이 있는 듯 요란한 소리들이 들려오고 엄청난 파리 떼가 우글거린다. 집 안으로부터 더욱 심한 악취들이 새어나와서 도저히 그 안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인근 주민 민원에 거처 옮겨가며 키워
한국애견협회 김성환 이사와 속초시 동물보호 명예감시원 세 명이 지난 3일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를 방문한 현장의 모습이다. 애니멀 호더란 동물을 잘 돌보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수를 늘리는 데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올해 9월 21일부터 시행된 동물보호법 개정 법령에는 사육 공간과 위생에 관한 규정이 있어 ‘애니멀 호딩(Animal Hording)’을 동물학대로 보고 애니멀 호더를 처벌할 수 있게 됐다.
이 개들의 주인은 60대 중반 여성 A 씨로 동거인인 B 씨와 함께 약 15년 전부터 애니멀 호딩을 해왔다. 조양동의 한 빌라에서 많은 개를 기르던 이들은 인근 주민과의 갈등으로 10년 전쯤 개들을 다 처분한 바 있으나 이후에 다시 한 마리씩 개를 모으기 시작해 다시 수십 마리의 개를 키우게 됐다.
이들은 이후 빌라에서 개를 키우지 못해 노학동에 집을 얻어 생활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집 주인과 마찰을 빚었고 화진포에 거처를 마련했으나 역시 쫓겨났다. 그 후 수도와 전기가 없는 화진포 한 야산의 컨테이너에서 개들과 함께 거주하다 다시 노학동의 현재 집을 얻어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 노학동의 현재 집 주인은 이들에게 한시 바삐 집을 비워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A 씨는 현재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따로 집을 얻을 돈이 없어 난감해 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의 거주지에서 200미터 떨어진 곳으로 거처를 옮길 예정이라고 한다. 이들이 얘기하는 곳에는 컨테이너와 쇠창살로 지어진 우리가 있으나 60마리의 개들을 모두 수용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속초시유기동물보호소에 수용키로
김성환 이사와 속초시 동물보호 명예감시원들은 현장 방문에서 차분한 어조로 A 씨와 B 씨를 설득했다.
“개들을 키우시는 게 현재로서는 행복하지 않으시잖아요? 오히려 개를 키우는 게 힘드시죠? 미용, 위생, 예방 접종이 되지 않으니 개들도 힘든 상황이네요. 그리고 소음과 악취로 이웃들도 고통을 받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개를 포기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김 이사와 명예감시원들의 차분한 설득에 이날 별다른 마찰은 발생하지 않았고 A 씨와 B 씨 또한 개들을 포기할 뜻을 밝혔다.
“처음에는 집도 있고 돈도 좀 있었어요. 그런데 개를 여러 마리 키우다 보니 재산도 다 없어지고 이런 상황이 됐네요. 돈 없애고 욕을 먹고 이게 뭐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제 저도 나이가 들어 개들을 돌보기가 쉽지 않네요.”
A 씨의 말이다. 다행히 애니멀 호딩의 당사자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지난 5일 속초시농업기술센터 담당자와 한국애견협회 김성환 이사, 속초시 동물보호 명예감시원들은 대책 회의를 진행하고 속초시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A 씨가 키우던 개들을 수용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현재 유기동물 보호소의 축사가 다 차 있는 상황이라 유기동물 보호소의 여유 공간에 임시 축사를 마련하고 개들을 수용하게 된다. 김 이사에 따르면 한국애견협회 속초지회에서는 A 씨가 계속 키우길 원하는 두 마리에 대해서는 중성화 수술비용을 대고 향후에는 유기동물 보호소에 임시 수용된 개들의 분양을 추진한다. 노학동주민센터에서는 A 씨와 B 씨의 주거와 건강에 대해 상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광호 객원기자
천막 속에는 수십 마리의 개들이 짖어대고 가재도구들이 어수선하게 놓여 있다.
한국애견협회 김성환 이사(오른쪽 두 번째)와 속초시 동물보호 명예감시원들(파란색 조끼 착용)이 60마리의 개를 키우는 주민을 설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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