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남 시인(사진)이 수필집 <겨울 비선대에서>를 출간했다. ‘종이 탑’이라는 시로 올해 강원문학작품상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시인이 이번에는 산문으로 독자를 만난다.
시인은 수필집에서 48편의 글을 통해 자연, 여행, 문학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에는 권정남 시인의 작품을 비롯해 파블로 네루다의 ‘시가 내게로 왔다’ 등 여러 운문 작품도 실려 있어 시와 산문을 읽는 재미를 동시에 전해준다.
수필이라 하면 지극히 주관적인 얘기들을 쓰는 경우도 많지만 시인은 수필에서 우리가 객관적으로 생각해볼 문제들에 대해서도 잘 짚고 있다. 고혼(孤魂)을 위한 불교 의식인 수륙재를 보며 동족상잔의 비극을 돌아보고 평화의 중요성을 되새긴다. 가곡 ‘그리운 금강산’에 얽힌 경험을 얘기하면서 남북의 화해를 기원한다. 캄보디아 타프란 사원의 ‘통곡의 방’에 가본 추억을 말할 때에는 세월호 사건의 아픔을 떠올린다. 그리고 헌책방이 사라져 가는 세태의 변화를 지적하고 역사적 정체성을 담아내지 못하는 청호동의 변신에 대해 아쉬움을 표한다.
시인은 물질적 가치만이 중시되는 요즘의 현실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아이들 놀이 문화가 비싼 장난감으로 대체되는 상황이나 물질적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한다. 그리고 누군가 “글을 쓰면 돈이 되나요?” 하고 묻자 시인은 “돈이 안 되기 때문에 더 재미있고 매력이 있어요”라고 응수한다.
물론 시인이 사회적인 문제를 거대 담론적 차원에서 심각한 자세로 고발하는 것은 아니다. 권정남 시인은 수필집 전반에 걸쳐 자신의 지향 가치를 은은한 어조로 들려준다.
또한 시인은 목우재 언덕의 벚꽃, 비선대, 영랑호, 울산바위 등 지역의 여러 자연 환경을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는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속초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값진 선물이라 본다.
마음이 울컥해지는 이야기도 있다. 수필 ‘청호동이 수상하다’에서는 살신성인의 의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에서는 TV에 등장한 장애인 피아노 연주자를 보다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친구를 떠올린다.
가족에 관한 이야기도 빠트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도 사적인 감정만을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한번 실천해봄직한 경험들을 풀어낸다. 시인은 시아버지와 주고받은 편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독자들에게도 편지 쓰기를 권하고 있다.
어떤 이는 수필을 한 개인이 잡담이나 늘어놓는 수준의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실제로 그런 수필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수필들을 싸잡아서 멀리할 필요는 없다. 누가 썼느냐에 따라 수필이 시나 소설보다 울림이 큰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권정남 시인의 이번 수필집은 잔잔하게 읽는 이의 마음을 파고든다.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수필집 ‘겨울 비선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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