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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문화로 거닐다<164> / 간판이야기④ 천일이용원
일상처럼 찾아오는 단골들과 함께 늙어가는 시간, 이용원
등록날짜 [ 2018년10월29일 13시27분 ]

속초 교동삼거리에서 옛 철둑길로 걷다보면 길가 텃밭 담벼락에 부착된 ‘천일이용원’ 간판을 만나게 된다. 파란 바탕에 노란색과 빨간색이 어우러진 글자 밑으로 희망분식이라는 글자의 흔적이 있다. 분식집 간판을 지우고 그 위에 천일이용원 글자를 새겨놓은 간판 재활용이다. 살짝 허술해 보이는 간판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이 근처에서 분식집을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길이 넓어지면서 가게를 허물게 되었어요. 그 친구가 광고업도 했기 때문에 자기 간판을 저한테 주었어요.”
‘천일이용원’ 송기철(65) 대표는 길가에 붙여놓은 그 간판과 가게를 배경으로 젊은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어 간다고 말한다. 재활용 간판과 가게 앞 텃밭, 그 너머 고집스레 ‘이발’이라는 단어만 적어놓은 미닫이문이 ‘천일이용원’을 포토존으로 만든 것이다. 심지어 가게 문을 열어보는 사람도 있다. 텃밭과 입구 사이에 걸어놓은 이발소 상징 ‘삼색등’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정말 이발소를 운영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문을 연다. 길 건너 동아서점을 찾는 방문객일까? 색바랜 간판에는 한 권 이상의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천일이용원의 문을 두드렸다.

14살에 어머니 권유로 이발 소 취직
송 대표는 14살에 이용기술을 배웠다. 초등학교 졸업 후 3개월을 쉬고 집 앞 ‘우리이발소’에 취직했다. 어머니의 권유였다. 북강원에서 피난 온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청학동 옛 중앙교회 인근으로 어머니와 자리를 잡았지만 미래는 불투명하고 현실은 힘들었다.
3년간 등교를 하듯 출근을 했다. 이발기술도 통과의례가 있다. 머리 감기부터 시작해서 면도, 이발로 이어지는 순서이다. 송 대표는 허드렛일만 하다 3년 정도 되어서야 머리감기를 할 수 있었다. 키가 작아서 손님의 머리를 감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3년 후 다른 이발소로 옮기게 된다. 최저임금 기준이 없던 시절이지만 월급 40원은 너무 적다고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이발기술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면도는 풍선을 가지고 연습했다. 날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섬세함이 필요했다. 하지만 자신의 손끝 강도가 손님에게 불편을 주는지 판단하기 힘들었다. 몇몇 친한 친구가 면도와 이발의 연습용 대상으로 동원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친구는 어려운 시절 빛을 발한다.
“천직? 그런 생각해본 적 없어요. 배타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던 시절에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어요. 잠시 한눈 판적도 있죠. 군대를 다녀오고 5년 정도 노가다도 하고 배도 탔어요.”
속초에 남은 이용원 30여 곳…점점 사라져
송 대표가 지금의 천일이용원을 인수한 시기는 그의 나이 28살, 1980년이었다. 그 당시 천일이용원은 만천동 천주교 앞에 있었다. 원래 주인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중동으로 갔다. 오일쇼크 후 일었던 중동붐의 막차를 타기 위해 떠난 것이다. 비록 월세였지만 자기 가게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몇 날을 설레였다. 단골도 제법 많았지만 90년도에 가게를 이전했다. 도로가 넓어지면서 가게를 허물어야 했기 때문이다.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결국 본인이 살던 집을 개조했다. 가게 앞 텃밭도 다른 사람의 가정집이었는데 지금은 허물고 텃밭을 가꾼다. 모르는 이들은 송 대표의 땅인 줄 안다.
“이 앞 땅도 제 땅이었으면 팔아버리고 이 일도 그만 두었어요. 50년 동안 가위를 잡았는데 이제는 쉬고 놀고 싶을 때가 많아요.”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요일을 빼고 문을 열었다. 언제 손님이 올지 대중이 없기 때문에 습관처럼 문을 연다. 친구와 놀기 좋아했던 시절에는 게으름 피운 적도 많다. 이용원을 찾는 사람도 점점 사라져 간다. 이용기술을 배우겠다는 젊은 사람도 거의 없다. 속초에 남은 30여곳 정도의 이용원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숫자가 줄어들 것이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싶다. 지난 시간에 대한 미련도 후회도 없다. 배 안타면 할 일이 없던 시절 선택한 이용기술이 오늘의 내 가족을 만들었다. 자식들은 나이 칠십까지는 이용원을 운영하기 바란다. 평생 가위를 놓지 않았던 아버지의 남은 시간이 걱정돼서라고 한다. 당장은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지만 이후의 시간을 생각하면 머리가 하얘진다. 아직은 그만두고 싶지 않다.
인터뷰 중 세분의 손님이 오셨다. 자리에 앉자마자 가위질을 시작한다. 말없이 가위질을 시작하는 분은 몇 번 오신 단골이다. 굳이 어떻게 깎아달라고 말할 필요가 없는 사이다. 그런데 이용사의 머리는 누가 깎아줄까?
“길 건너 고려이용원 사장님이 때가 되면 연락와요. 손님이 있는지 없는지. 없다고 하면 오셔서 제 머리를 깎아주기도 하고, 제가 그분 머리도 깎아주기도 해요. 그 사장님이 팔십 넘으셨는데 저도 잠깐 그 분 밑에서 일했을 정도로 오랫동안 하셨어요. 그분 찾아가면 더 많은 얘기 나올 거예요.”
한 세대가 지나면 사라질지도 모르는 직업이 많다. 이발사도 어쩌면 그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방송에서는 노구의 이발사가 현란한 가위질로 젊은층을 사로잡는다는 기사가 종종 나오지만 그 기술을 배우겠다는 이들이 적기 때문이다. 일상처럼 찾아오는 단골들과 함께 늙어갈 것이다. 그래서 이발소에 머무는 시간은 더욱 깊어진다.                                                             김인섭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천일이용원’ 송기철 대표. 50년간 가위질을 했으니 이제는 쉬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쉽게 가위질을 놓지는 않을 것 같다.

‘천일이용원’ 간판 아래 희망분식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송 대표의 친구가 하던 분식집 간판을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어려울 때 친구는 빛을 발한다. 벽면의 글자도 친구가 써준 것이다.
현재 천일이용원. 가정집을 개조한 것이다. 앞의 텃밭도 다른 사람의 가정집이 있었는데 길이 넓혀지면서 허물어졌다. 텃밭 뒤의 삼색등이 이채로워 누군가의 포토존이 되는 경우가 많다.
송 대표는 3년이 지나서야 손님의 머리를 감길 수 있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취직하게 되어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설악신문 (soraknews@soraknew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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