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호동 아바이 김상호 옹의 살아온 이야기<8> – 수학을 좋아하던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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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월사금, 미군 전투식량에 대한 기억들

등록날짜 [ 2018년10월29일 11시09분 ]

김상호 옹은 국민학교를 다니던 동안 교사들이 월사금 납부를 재촉하던 일들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김 옹의 집은 가난했기에 월사금을 제때에 내기 힘들었다. 학교에 일찍 가면 자신을 본 교사가 월사금을 가지러 집에 갔다 오라고 말을 했기에 그는 일부러 학교에 조금씩 늦게 가고는 했다. 교사가 등교한 자신에게 월사금을 가져오라고 집으로 돌려보내면 집에 가지 않고 길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학교로 돌아갔다. 어차피 집에서는 월사금을 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에 어린 마음에도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돈을 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돈이 없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교사는 그를 심하게 꾸중하기보다 꿀밤 한 대 때리면서 자리에 어서 앉으라고 했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친구들과 바닷가에서 많이 놀았다. 자치기도 하고 땅따먹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당시 교회나 성당에도 부지런히 다녔다.
“착한 사람이 되려고 다닌 것이 아니라 먹을 것을 주기에 나갔죠.”
교회에서는 미군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으로 보이는 비스킷 같은 과자나 가루우유를 먹을 수 있었다. 학교 친구 엄마가 교회의 관계자여서 자신이 가면 밥을 주기도 했다. 동명동 성당에서 먹을 것을 많이 준다는 소문을 들으면 그곳으로도 열심히 나갔다.
그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지금의 속초해수욕장에서는 미군들이 수륙양용차를 타고 와서 훈련을 하고는 했다. 미군들은 훈련을 하고 떠나면서 먹다가 남은 ‘레이션박스’(미군 전투식량)를 모래사장에 묻어두고 갔다. 김 옹은 친구들과 이것을 파내 미처 뜯지 않은 것이 있으면 나눠 먹었다. 상자 안에는 비스킷, 콩 통조림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가루로 된 커피도 있었던 것 같다고 한다.
김 옹과 친구들은 미군들이 훈련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들에게 가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한 적이 있다. 미군들 중에는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잘 나눠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소리를 지르고 총을 만지며 위협하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 미군들이 자신들을 향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까땜, 까땜”이라고 연신 외치던 모습을 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미군 중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이내 도망을 쳤는데 그랬다가 멀리서 다시 상황을 살피고는 슬금슬금 미군주둔지로 다시 다가갔다.
한번은 이런 적도 있다. 미군이 아이들끼리 싸워보라는 손짓을 하고는 코피가 나는 시늉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먹을 것을 가리켰다. 김 옹과 친구들이 이해하기로는 친구들끼리 싸워서 코피가 나도록 때리고 이기는 사람이 먹을 것을 받는다는 소리 같았다. 그러나 싸우지 않고 한참을 멀뚱멀뚱 미군을 바라보자 그 미군이 먹을 것을 그냥 줬다.
중학생 시절 김 옹은 수학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영어는 잘하지 못했지만 수학은 전교에서 가장 잘 한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그는 60년 전 배웠던 수학 공식을 아직도 줄줄 외울 정도로 잘 기억하고 있다. 김 옹은 자신이 수학을 잘한 영향으로 자식들도 수학을 잘했다고 약간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중학교 때 그는 도시락을 싸 간 기억이 거의 없다. 한 반에서 도시락을 못 싸오는 친구들이 싸오는 친구들보다 많았다. 대략 절반 이상이 도시락을 못 가져 왔다. 도시락이 없는 친구들은 점심시간 동안 양지바른 곳에 있다가 친구들이 밥을 다 먹었을 즈음에 교실로 돌아갔다. 중학교 시절에도 역시 월사금을 내는 것이 힘들었다. 월사금은 다달이 내지 못하고 항상 한 달 이상 밀렸다. 그런데 이런 일은 김 옹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음에 계속>
구술 김상호 · 정리 이광호 객원기자

중학생 시절 친구들과 함께 나룻배를 타고 찍은 사진. 뒤로 속초등대가 보인다.

이광호 (campin@hanmail.ne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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