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빴다. 늘 우리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긴 하지만 올해 가을은 계절의 흐름을 온전히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해 바빴다. 그 사이 설악산의 단풍은 산 아래까지 물들었어도 단풍 구경은 엄두도 못 내고 이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올해 가을을 바쁘게 만든 이런 저런 일들 중에는 필자가 몸담고 있는 (사)한국적성찾기 국민실천본부 강원지회에서 진행했던 ‘춘천 문화 탐방’도 한 부분 차지했다. 지회에서는 해마다 속초를 중심으로 강원도 내 주요 도시들의 문화 탐방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춘천시가 그 대상이었는데 회원들의 초등학생, 중학생 자녀들을 데리고 춘천시 소재 ‘책과 인쇄 박물관’, ‘소양강 스카이워크’, ‘김유정 문학촌’, ‘소양강댐 물 박물관’ 등을 탐방하고 돌아왔다.
춘천에 소재하고 있는 중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한 이들에게는 춘천이 익숙한 도시 일 수 있겠으나, 내게 춘천은 그저 강원도의 도청 소재지이고 국립 대학교를 비롯한 많은 대학교들이 있는 교육도시이며, 호수와 댐들로 둘러싸인 ‘호반의 도시’라는 이미지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이번 문화 탐방이 아이들뿐만 아니라 내게도 춘천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고, 예전보다 조금 더 친숙한 도시로 느껴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특별히 이번 ‘춘천 문화탐방’ 일정 중에서 아이들의 시선과는 별개로 내게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했던 곳은 ‘김유정 문학촌’이었다. 우리나라 근대 문학의 소설가 김유정을 기리는 박물관인데 유품들을 단순 전시하는 수준의 박물관이 아니었다. 그의 소설 ‘봄봄’, ‘동백꽃’ 등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묘사한 동상들이 포토존으로 등장하고 문학관에서는 소설 속 이야기들을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해 방영하고 있었다. 단순히 생가를 복원하고 유품을 전시하는 수준의 박물관이 아니었다. 어린 학생들이든 중장년층이든 관람객들의 눈높이에 맞춰 문화해설사가 김유정의 일대기와 그의 문학세계를 설명해 주고 있었고, 다양한 체험거리들과 문화행사들이 연중 열리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기차 역사 이름이 ‘김유정역’일 만큼 춘천에서 차지하는 김유정 문학의 비중은 커보였다. 아니 어쩌면 소설가 김유정의 콘텐츠를 활용하는 춘천시의 영민함을 느꼈다고 하는 편이 옳은 것 같다.
문득 김유정 문학촌은 화천의 산천어축제와 함평의 나비축제와 그 궤를 같이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작가의 유품이 없는 박물관, 작품 내용으로도 충분히 콘텐츠를 만들고 축제화 하는 기획 실행 능력이 전국적인 명성을 날리게 된 두 축제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은 속초에서 매년 가을마다 개최되는 설악문화제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올해 속초의 대표 축제인 설악문화제도 이제 막을 내렸다. 아무리 작은 행사라도 계획하고 준비하는 손길들은 바쁘고 힘들기 마련이다. 하물며 설악문화제 같은 대형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이들은 두말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산악제로 시작된 설악제는 설악문화제로 확대되었고 이제는 사단법인 속초축제위원회가 주관하는 명실상부한 속초의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많은 이들의 참여와 수고가 점철된 결과물일 것이고 해마다 점점 더 나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축제를 치를 때마다 아쉬움도 함께 남는다. 과유불급일까? 설악문화제는 활용할 수 있는 천혜의 콘텐츠가 많아서인지 설악산을 활용한 산악행사와 동해를 기반으로 한 어촌문화, 그리고 실향민 문화가 어우러져 비빔밥 같은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특색을 살리지 못하고 어수선한 따로국밥인 듯 한 느낌이다. 도로를 차지하고 있는 비슷비슷한 내용의 부스들이, 어디에서 본 듯한 행사들이, 유명밴드를 초대하였으나 50~60명 정도의 관객들만이 호응을 하고 있는 무대들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우선, 설악문화제는 누구를 위해 존재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다시 점검해 봤으면 좋겠다.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위한 축제인가? 아니면 관광객 대상의 축제인가? 지금까지 오랜 기간 설악문화제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해 왔던 전문가들과 각계각층의 축제 관계자들의 수고와 분발을 기대한다.
전형배
데일리F&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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