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으로 수복된 속초지역은 1940년대부터 1950년 전쟁 이전까지 지역 향토사 기록이 많지 않다. 1940년 이후 조선의 신문들도 모두 폐간된 전시통제체제로 지역 관련 신문기사도 찾아보기 힘들고, 해방 후 인공시절의 일들도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다. 지역의 옛 어른들을 통해 당시의 속초 역사를 다시 거슬러 올라가 보고자 한다. 속초 노학동 도리원 마을 출신으로 고성군 토성면 청간에 거주하는 최춘옥(84세)할머니의 기억을 통해 잃어버린 향토사의 한면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일제강점기 말기 속초에 전국에서도 손꼽는 대규모 쇠고기통조림공장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지역주민은 많지 않다. 속초문화원의 향토사 자료를 보면 1940년대 일제 패망 전에는 일제의 한반도 병참기지정책으로 속초에 군수품으로 납품된 쇠고기와 고등어, 꽁치 등 통조림공장과 정어리를 가공하는 공장이 여럿 있었다. 그중에서도 일본인이 운영한 다케나카 쇠고기통조림공장은 해방 후인 1946년 북조선 치하에서 국유화되었다는 기록이 짧게 언급되어 있다.
축산업이 발달한 곳도 아닌 바닷가 지역인 속초에 전국에서 손꼽는 대규모 쇠고기공장이 들어섰을까? 최춘옥 할머니는 쇠고기공장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가 9살, 10살 때 쯤이었어. 지금 속초시내 한국통신 남쪽 호수변에서 신라예식장 근처까지 어머어마하게 큰 통조림(간수메) 공장이 있었어. 일본사람이 운영하는 다케나카 쇠고기통조림공장이라고 했지. 정문은 한국통신 앞쪽에 있었는데, 공장이 얼마나 컸는지 공장 안에 철로(레일)를 다 깔아 놓았어.
청초호변에 전국에서 공출해 기차로 싣고 온 소를 가둬놨는데, 사람 키 한배 반 정도 되는 높이로 소나무 울타리를 만들고 철조망을 쳤어. 소를 도축하기 전에 굶겨서 똥을 모두 빼내는 걸 말린다고 했지. 소 숫자가 어마어마했어. 어른들 말이 그 수가 만 마리 정도 되었을 거라고 했어.
지금의 낙천회관과 현대치과 북쪽은 하얀 백석으로 이뤄진 산이 있었고 군데군데 촌집이 있었어. 낙천회관 근처에는 큰 우물이 있었고, 근처에 개울이 있어 공장에서 파이프로 끌어다가 식수로 썼어. 당시 이 근처 논들 사이로 기찻길이 있었고, 교동천주교 앞쪽에는 변전소가 있었지.
이 공장에 몇 명이나 근무했는지 모르지만, 당시 보통학교를 졸업한 처녀들이 공장에 취직해서 일을 했어. 언니들이 공장에서 가져나온 통조림을 야매로 팔았는데, 당시에 큰 쇠고기통조림 하나가 쌀 한 되 값이었어. 통조림 캔을 따면 위에 우무가 하얗게 앉았는데, 살코기를 포크로 찍어 먹으면 정말 맛있었어.
이 공장에서는 고등어가 많이 날 때는 고등어로 통조림도 만들기도 했어. 공장에서 만든 통조림을 배로 실어 날랐는데, 당시 연락선이 속초항에 들어오지 못하고 대포항 앞 바다에 세워놓고 실어 날랐어.
해방 후 인공시절에는 공장 안에 소련사람들이 와서 집을 짓고 살기도 했어. 그 어머 어마한 공장이 한국전쟁 중에 미군의 함포사격으로 모두 부서지고 말았어. 한국전쟁 당시 해안가인 속초지역도 함포사격이 많았는데, 특히 이 공장시설이 주요 포격 대상이었어. 폭격 이후에 가봤더니 더 폐허가 되고 빨간 벽돌로 지은 굴뚝 잔재가 남았는데, 굴뚝이 보통 우리 사는 집 한 채 규모 정도로 컸어.”
일제강점기 말 속초 청초호변에 들어선 다케나카통조림공장(竹中罐詰製造所)의 존재 사실은 일본어 문헌에서 확인된다. 2015년경 제주대학교 재일제주인센터 고광명(高広明) 연구원이 다케나카신타로(竹中新太郎)의 기업가 활동에 대해 쓴 연구보고서에는 ‘다케나카 속초공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
“1943年(昭和18)に束草工場を建設し、牛肉缶詰(一日に牛50頭を加工)を軍需物資に納品した。”
1943년(소화19년) 다케나카통조림 속초공장이 건설되어 하루에 소 50마리를 가공해 쇠고기통조림을 군수물자로 납품했다는 것이다. 하루에 소 50마리를 가공하는 통조림공장이라면 그 규모가 결코 작지 않다.
<다음호에 계속>
엄경선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속초 노학동 도리원마을 출신 최춘옥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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