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시 영랑동 작은도서관 옆 도로변에 평소 들어보지 못한 이름의 간판이 있다. ‘눅거리 철물점’. ‘눅’이라는 단어에서 습기가 바닥에 벤 눅눅함을 떠올렸다. 하지만 인터넷 국어사전을 검색하니 눅거리는 싼거리의 잘못된 말 혹은 북한어라고 나온다. 싼거리는 물건을 싸게 팔거나 사는 일을 말한다. 한마디로 싸게 물건을 파는 집이라는 뜻이다. 북한에서는 값이 ‘싸다·저렴하다’보다 ‘눅다’를 많이 쓰고 사전에도 그렇게 기록한다. 수복도시 속초의 흔적이다.
“눅거리 철물점은 원래 동네반점 옆에 있었어요. 매제 형님이 하던 가게를 제가 1984년에 인수했죠. 그 이후 지금 북부새마을금고 자리에서 운영하다 1996년 이곳으로 오게 되었어요.”
‘눅거리 철물점’ 대표 손대성(63세)씨의 가게 이주 과정 설명이다. 그는 영랑동 토박이다. 등대 밑 일명 새쪽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린 시절 등대마을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초가집, 등대 밑의 바위구릉을 넘으며 동해바다를 보는 일이 즐거웠다. 어른들은 대부분 어업으로 먹고 살았다. 영랑동 포차라고 불리는 길까지 모래사장이었기에 노를 저서 바다로 나가 그물발이를 하는 일이 전부였다. 1968년 엄청난 해일이 왔다. 파도가 휩쓸고 간 속초에는 1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때 부서진 목선을 제작하기 위해 전국의 목수가 속초로 왔을 정도였다. 등대 밑 초가집도 사라졌다. 영랑초등학교 옆에 수재민 임시 거처가 마련되었다. 청호동 새마을도 이때 조성된 마을이다. 해방 공간을 거쳐 전쟁과 수복 이후 새로운 도시재건의 희망을 갖고 살던 이들에게 자연재해는 날벼락이었는지 모른다.
맥가이버로 불렸던 사내, 철물점 인수
군대를 다녀오고 첫 직장은 유선방송 회사였다.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 황영순(62)씨를 만난다. 함경도에서 피난 나온 실향민 2세로 청호동 사람이었다. 첫 아이가 걸음마도 떼지 못했을 때 직장을 함께 그만두고 철물점을 인수했다.
“옛날에는 철물점이 재미있었어요. 지금처럼 집이 튼튼하지 않고 아파트도 없었잖아. 일년에 한번은 페인트칠하고 보수공사도 했거든. 새벽 4시경 출근하는데 점심을 2시 넘어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바빴어요. 지금은 겨울철 비수기의 절반도 안 돼요.”
손 대표는 손재주가 많아 동네 맥가이버라고 불렸다. 뭐든지 척척 고치는 해결사였기에 철물점 운영은 천직이었는지 모른다. 마침 기름보일러가 나오던 시절이어서 대리점도 같이 했다. 손재주 좋은 그가 AS 기사들 선생이 되어 가르쳐줬을 정도다. 하지만 아내는 죽을 맛이었다. 철물점에 가득한 수많은 부품의 용어와 쓰임새, 가격을 파악하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남편이 출장나가면 가슴이 벌렁거릴 정도였다.
“갓난 아이 업고 철물 사이를 헤매면서 정말 힘들었어요. 지금은 제가 재고정리부터 관리를 더 잘해요. (남편을 보며) 맞죠?”
황영순씨의 말이 맞다. 인터뷰 중간에 손님이 오면 상담과 함께 물건 인계를 해주었다. 손 대표가 겸연쩍게 말한다.
“전 지난해까지 자율방범대 활동을 25년 정도 했어요. 연합방범대장도 했죠. 영랑동 주민자치위원도 하고 북부새마을금고 부이사장도 하고 있어요. 나름 사회생활도 많이 하는데 아내는 오직 집과 가게만 오가면서 아이들 키웠어요. 아이들 아침밥 먹이고 출근한 후 오후 4시 되면 집으로 가서 다시 가정생활하면서 자기 시간을 갖지 못했죠. 참 착한 사람이에요.”
이쯤되면 그동안의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한데 황영순씨는 한술 더 뜬다.
“우린 가족 여행 잠깐 다녀오는 거 말고 제대로 다녀보지도 못했어요. 손님이 혹시 왔다가 그냥 가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아이들 잘 키웠고, 이제 손자들까지 키우면서 재미나게 사는 거죠.”
틈나는 대로 연습한 색소폰으로 공연까지
손 대표는 6년 전 속초문화회관 옆에 2층집을 지었다. 색소폰도 배웠다. 3개월 정도 학원에서 기초를 배우고 혼자 독학을 한다. 아내가 4시에 퇴근하면 가게에서 연습하고 집에도 연습실을 마련했다. 색연필이라는 팀에 소속되어 문화봉사를 하거나 마을축제 때 공연을 한다. 철물점 운영에 여유가 생겨서 가능했다. 생활에서 예술을 즐기고 만날 수 있다면 더 빨리 그의 재능이 나오지 않았을까? 아버지의 감춰진 예술성(?)은 딸들이 물려받았는지 모르겠다. 첫째는 그림을 그리고 둘째는 ‘홍시도예’라는 도자기 공방을 자신의 건물 1층에서 운영한다.
철물점을 둘러본다. 칸칸이 제몫의 생김새와 쓰임새를 가진 부품들이 담겨있다. 단종된 물건의 부품, 신제품의 새로운 규격에 맞는 제품도 함께한다. 세상에 필요 없는 물건은 없다. 재고 관리만 잘하면 된다. 여전히 오랜 물건을 간직하며 다시 쓰겠다는 사람들이 철물점을 찾기 때문이다. 도시재생의 시대, 철물점은 스스로 만들고 고치는 일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다.
김인섭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눅거리는 물건을 싸게 팔거나 사는 것을 뜻하는 북한말이다. 수복도시 속초의 흔적이다.
맥가이버라 불렸던 손대성 대표는 6년 전부터 색소폰을 하고 있다. 자율방범대 등 지역사회 공동체 활동을 많이 한 그는 최근 젊은 사람들의 참여부족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1984년 가게 시작부터 함께 한 카운터 금고. 두 번의 가게 이전에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재래식 수동 펌프의 중요 부품을 가게 입구에 걸어놓고 있다. 쓸모없는 것들에 대한 미련은 이상한 감동을 준다.
철물점의 물건배치가 보여주는 패턴은 감각적인 시각 디자인이 되어 미술작품의 오브제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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