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 108번길, 속초관광수산시장 입구 서독약국 건너편에서 구 속초수협 방향으로 걷다보면 묵직한 베이스와 경쾌한 기타 핑거링에 문득 고개를 돌리게 된다. 입구에 진열된 구두를 보니 영락없는 구두수선 가게이다. 그런데 벽면 한가득 문외한이 보기에도 제법 값이 나갈 것 같은 스피커와 진공관 앰프가 보인다. 그 맞은편에는 오래된 LP음반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영락없는 아날로그 음악카페의 모습이다.
이 가게의 정식명칭은 <구두수선카페>. 구두를 닦고 운동화 등 각종 신발을 고쳐주는 곳이다. 하지만 카페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하흥식(64) 대표에게 물었더니 별 뜻이 없단다. 자신의 일터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다른 사람과 듣고 싶어서 붙인 이름이란다. 커피는 팔지 않지만 잠깐이라도 음악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상호명을 그렇게 붙였다.
하 대표는 지난 1987년 속초에 정착했다. 하 대표와 같은 서울출신의 아내와 2살된 딸이 가진 재산의 전부였다. 구두수선은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한 20대부터 시작했다. 속초에서 보낸 30년을 보태면 40여년 동안 구두수선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살았다.
속초 생활의 처음 시작은 지금의 동제약국 옆 골목 노점이었다. 정식 허가가 난 곳이 아니니 서러움도 받았다. 몇 년 후 서독약국 옆으로 옮겼다. 단골도 생겼고 인근의 시청이나 우체국, 경찰서에서 구두를 가져와 닦았기에 돈 버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 당시 마요네즈를 담던 통을 금전함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아직까지 못 버리고 있다. 청춘의 힘들던 시절 희망을 담아 주었던 그 느낌을 여전히 간직하고 싶어서였는지 모른다.
장사가 잘되어 지금의 가게 자리에 1994년경 오게 되었다. 속초수협이 있었고 고성식당, 수원갈비 등 식당도 많아 유동인구가 많았다. 지금이야 일방통행에 깨끗한 포장도로였지만 당시에는 더 좁은데다 양방향 통행을 하던 곳이었다. 노점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기에 자동차를 구입하기로 했다. 타우너로 시작해 베스타, 토픽, 이스타나로 넓힐 정도로 수입이 좋았다.
“예전에는 구두를 많이 신기도 했지만 오래 신었어요. 그러다보니 수선할 일도 많았죠. 특히, 명절 때가 되면 어깨가 빠질 정도로 손님이 많았어요. 평소보다 두 배 정도를 받아도 손님들이 줄을 설 정도였죠. 명절 대목이라고 하죠? 저도 보너스 받는 기분으로 신나게 일했죠.”
구두수선은 된장찌개와 비슷
2008년경 자동차 생활을 마감하고 지금의 가게를 계약했다. 과거 속초에서 유명했던 중국집 ‘금화원’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속초에 정착한지 20년이 되던 해, 두 살짜리 아이는 성인이 되었고 자신만의 일터가 생겼다.
과거에 비해 지금은 구두를 신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고 양극화 현상이 있다고 한다. 아주 비싸거나 1~2년 정도 신고는 버려야 하는 값싼 신발이 많다. 그러다보니 벌이가 예전만 못하다. 구두수선비도 30년 전에 비하면 물가상승률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
“구두수선은 된장찌개하고 똑같아요. 재료는 거의 비슷하지만 누가 끓이냐에 따라 맛이 다르죠. 구두수선도 그래요. 기술이나 재료보다 정성이죠.”
인터뷰하는 동안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가져온 신발마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1년도 안되었는데 끈이 끊어진 구두, 버려야 할지 수선해야 할지 고민하다 상담받는 신발, 손님과의 약속 때문에 급하게 닦아야 하는 구두. 그 사연마다 자신의 처방을 들려주며 손질을 하기 시작한다.
그 잠깐의 시간동안 손님들은 귀호강을 하게 된다. 어느 시인은 이런 말을 남겼다. 음악은 문맹자의 가슴에도 시 한편 수놓을 수 있기에 아름답다고. 음악의 주인공을 몰라도 뜻밖의 공간에서 무방비 상태로 들려오는 소리의 향연은 누구에게나 감성을 자극한다. 구두수선방이 카페로 변하고, 손님이 예술을 만나는 마법의 시간이 된다.
“원래 흥이 많았어요.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러다보니 오디오에 입문하게 되었는데 구두수선방을 차리면서 오디오를 하나둘씩 마련하게 되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를 매칭하는데 이왕이면 여러 사람과 함께 듣고 싶었어요.”
따스하고 행복한 음악 감상의 순간
하 대표는 오디오 마니아이자 음악감상이 취미이다. 오디오 마니아의 세계는 워낙 넓고 다양하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하 대표는 자신이 가장 편안하고 좋은 현장감을 위해 최적의 매칭을 찾는다. 스피커와 앰프를 다양하게 물리면서 저음과 고음의 영역을 넓히는 재미가 남다르다고 한다. 마침, 손님 한분이 들어와 오디오 이야기를 한다. 노학동의 음악카페 <아날로그>의 음악감상회 이야기, 자신이 들어본 최고의 오디오를 가진 가게 이야기로 불이 붙는다. 급기야 하 대표가 가게 문을 닫고 재즈와 대만 가수의 음악을 들려주며 자신만의 매칭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구두수선방은 다시 음악감상실이 된다.
“오디오 이야기를 하다보면 아주 중요한 인생의 사실 하나를 알게 되요. 나만의 소리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소리도 중요하다. 그러니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거죠. 스피커의 스펙이나 브랜드명을 쫓기보다 자신만의 감성으로 소리를 찾는 과정도 중요해요. 그리고 나서는 혼자 감상하는데 그치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해야죠.”
인터뷰와 음악감상, 구두수선의 철학을 듣다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그는 오전 9시에 문을 열고 오후 7시에 문을 닫는다. 11시 30분부터 1시 30분까지는 아내가 운영하는 봉포의 식당에 간다. 8년 전 마련한 아내의 식당은 집밥같은 손맛으로 인기가 좋다고 자랑한다. 그는 잠깐 구두수선을 접고 식당을 한 적이 있다. 오른 손을 다쳐 구두수선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8일만에 다시 <구두수선카페>로 돌아왔다. 40여년 동안 자신만의 멋과 흥으로 희망을 만들어온 <구두수선카페>가 그의 고향임을 알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중앙로 108번 길을 걷게 된다면 이곳을 찾아도 좋다. 자신이 찾아낸 소리를 함께 듣는 시간을 좋아하는 주인장이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그가 들려주는 타악기 봉고도 만날 수 있다. 사막의 휴식 같은 공간을 그린 영화 <바그다드카페>처럼 따스하고 행복한 시간이 위로처럼 다가올 것이다.
김인섭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구두수선카페>. 주인장이 찾아낸 소리가 가게를 가득 채울 때 구두 수선만을 생각하고 찾아온 손님은 마법같은 시간을 선물 받게 된다.
구두수선은 된장찌개와 같다고 말하는 하흥식씨. 오랜 세월 한결같은 일을 한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는 특유의 철학이 쉴새없이 나온다.
앰프와 신발장, 벽면을 장식한 LP판. <구두수선카페>는 지나가던 관광객이 사진을 찍을 정도로 재미난 공간이다.
87년부터 사용한 돈통은 아직도 그의 희망을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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