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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문화로 거닐다<161> / 간판이야기① 서울칼국수
천천히 오래도록, 진심으로 우려낸 육수처럼
등록날짜 [ 2018년10월08일 14시27분 ]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의 풍경에서 오랫동안 굳건히 간판을 내걸고 있는 가게를 발견하면 괜스레 반갑다.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어도 여전히 그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도감이 든다. 빛바랜 간판, 낡고 헤어진 문틈으로 겹겹이 쌓인 시간의 흔적은 거리의 매력이 된다. 단순히 오래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작은 가게는 속초의 마을살이가 담고 있는 가치를 오롯이 품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간판만 거리의 주인은 아니다. 새로운 희망을 담금질하며 이제 막 내걸린 간판에도 주인장의 이야기가 있다. 낡고 쓸쓸한 간판, 새롭게 활기찬 간판. 작은 가게의 간판에서 속초사람의 속초살이를 만나본다.
<편집자 주>

정박한 배와 떠도는 갈매기, 만선의 기쁨을 함께 한 뒷골목. 가장 속초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구 속초수협 근처에 ‘서울칼국수’가 있다. 융숭깊은 멸치국물로 어제의 과음을 달래주고, 오늘의 한 끼를 위로해줄 수 있는 칼국수가 주메뉴이다.
최윤선(81) 여사가 칼국수 가게 문을 연 해는 1978년이었다. 원래 충청도에서 농사를 짓다 가족과 함께 1970년대 초에 속초로 왔다. 딸아이가 4살때였다. 시숙(남편 남동생)이 먼저 속초에 자리 잡고 형제를 불렀다. 속초는 설악산 관광이 시작되고 수산업이 활황이어서 새로운 기회의 땅이었다. 처음에는 수복탑 근처에 집을 마련한 후 오징어 덕장을 했다. 50축 정도의 오징어를 할복하고 말리는 일은 농사와 달랐다. 비가 오면 연탄불 피워 말리는데 참 낯설고 힘들었다. 그러다 시숙이 구입한 건물 2층의 식당이 비어 식당을 할 기회가 생겼다. 남편 지인에게 칼국수 국물 우리는 법을 배워 칼국수 집을 차렸다. 식당 이름은 그 전 주인이 쓰던 ‘충무식당’을 그대로 썼다. 경찰서와 시청이 있어 점심 장사가 좋았다. 하지만 건물이 팔리면서 현재의 장소로 옮겼다. 1981년 1월이었다. 가족이 머물 방 한 칸이 딸린 가게여서 마음에 들었다. 식당 이름도 바꿨다. 남편이 경기도 출신이어서 ‘서울분식’으로 이름을 바꿨고, 나중에 지금의 ‘서울칼국수’가 되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왜 그리 바쁘게 움직였나 몰라요. 아침에는 전날 술 많이 마신 어부들이 해장을 하고 점심 때는 직장인들이 찾았어요. 저녁에는 칼국수에 반주 한잔 하는 손님들도 많았죠. 90년대까지 이 일대에 식당도 많아서 항상 흥청거렸어요.”
아침이 오면 멸치와 다시마, 무, 양파를 넣고 국물을 우린다. 남편은 밀가루를 치대어 손반죽을 한다. 억센 손아귀로 만든 밀가루를 숙성시키고 나면 손님을 맞는다. 뜨끈한 멸치국물에 해장술 마시다 그대로 일 나가는 어부도 많다. 외상이었지만 장부를 만든 적이 없기에 제대로 받은 적도 없다. 점심에는 배달이 많다. 전화국과 근로자복지회관의 노조, 시청까지 배달을 나간다. 배달통에는 최대 8그릇의 칼국수를 담을 수 있다. 대부분 3층 이하 건물이다. 왜 그리 계단은 많았을까. 그릇을 찾아와야 하기에 두 번씩 다녀오는 길이 갈수록 힘들었다. 손마디 주름이 늘어날 때마다 허리의 통증이 왔다. 허리 마디가 끊어질 듯 아파도 홀로 식당에서 손님 상대할 남편 생각에 맘이 바빠지곤 했다. 부부는 그렇게 1년 365일, 24시간을 함께 했다.

가족의 시간이 담긴 공간
“1980년 초에 월간 <산>이라는 잡지에서 우리 집을 두어번 다녀갔어요. 속초 택시기사에게 맛있는 집 가자고 하니까 우리집 소개하더래. 그 잡지 한 켠에 서울칼국수가 있으니 너무 좋더라고요.”
칼국수는 육수가 생명이다. 손반죽으로 치대는 면발도 중요하지만 육수가 맛의 팔할을 차지한다. 서울칼국수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코에 감기는 그 멸치향이 그대로 칼국수에 담겨있다. 화려하기보다 정직한 맛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오랜 단골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다. 최근에는 SNS에 칼국수 사진을 올리는 관광객이 많아졌다. 면발을 품고 있는 육수 위에 반숙에 가까운 계란물이 담긴 모습이 식감을 자극하는 것 같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던 식당도 체력의 한계 때문에 운영시간을 오전 11시부터 저녁 5시까지로 조정했다. 일요일도 어김없이 쉰다. 그래도 찾아오는 세월은 결국 일을 그만두게 만들었다. 열흘 전이다. 남편이 몸져누운 뒤에는 딸과 함께 운영했지만 그마저도 완전히 그만두었다. 식당은 어릴 적부터 음식 만들기를 눈여겨본 아들 내외가 운영하기로 했다.
“맨날 나가던 식당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으니 머리가 너무 복잡해요. 실수는 안했는지 육수는 제대로 우려냈는지. 몸이라도 괜찮으면 식당에 나가보겠는데….”
식당을 그만두면 여행도 가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지만 몸이 쉽지 않다. 전 생애를 바친 식당을 그만 두어도 마음은 쉽게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인터뷰 다음날 큰딸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십여년 전 강화도 가족 여행 이후 처음이다. 조금만 더 젊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서울칼국수를 며칠씩 그만두고 떠나지 못했을 것 같다. 아침마다 우려낸 육수와 남편의 손반죽이 차곡차곡 가족의 시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과 정성 그대로 아들 내외가 칼국수 한그릇을 손님에게 올린다. 부둣가 칼국수집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김인섭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딸 박경심 씨의 작품. 원래 입간판 하나만 있었는데 길가에 내놓지 못하게 해서 간판없이 운영했다. 엄마와 함께 식당을 운영하던 딸은 사진을 찍고 도자기 굽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식당 일이 끝나면 노학동 공방에서 도자기를 구웠고, 틈나는 대로 부둣가 일대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 전시회도 열었다. 엄마는 이제 딸이 마음껏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어 기쁘다고 전한다.
엄마의 손맛을 아들이 잇기로 했다. 어릴 적부터 보았던 엄마의 하루를 고스란히 이어받기로 한 것이다. 서울칼국수는 그렇게 또 다른 시간을 준비한다.
가족의 저녁을 준비하고 손님들의 한끼를 책임지던 부뚜막. 1981년 방 한칸 딸린 식당을 구입할 때 남편이 직접 만들었다. 2002년 태풍 루사 때 식당에 물이 차고 지붕이 날아가도 이 부뚜막은 살아남았다.
1978년 첫 식당을 할 때부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밥솥. 비록 그 기능은 다했지만,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다.
서울칼국수의 대표메뉴.
 

설악신문 (soraknews@soraknew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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