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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작업실<10> – 서예가 이덕우(상)
서예를 향한 고행의 길
등록날짜 [ 2018년10월08일 13시52분 ]

해정서예연구원이 있는 건물 계단으로 들어서자 1층에서부터 고요한 기운이 흘렀다. 서실이 있는 3층까지 오르는 동안 너무 조용해서 그 건물 전체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서실로 들어서자 이미 여러 명의 사람들이 서예에 몰두하고 있었다. 중년부터 노년까지, 무거워 보이는 침묵 속에서 차분한 표정으로 붓을 들고 누군가의 방문에 아랑곳없이 흰 종이에 시선을 집중했다.
서실의 한쪽 벽에는 ‘하심함소(下心含笑)’라고 적힌 작품이 걸려 있었다. 하심함소(下心含笑)는 ‘마음을 낮추고 얼굴에는 미소를 띠라’는 말이다. 불교 경전인 지장경에 나오는 부처의 가르침인데 종교를 초월해서 되새겨 볼 만한 경구이다.
잔잔한 표정으로 방문자를 반기는 이덕우 서예가의 모습은 도록의 사진을 보고 느꼈던 인상과는 사뭇 달랐다. 그 사진에는 노년으로 접어들고 있는, 조금은 엄격한 서예가의 이미지인데 실제로는 나이보다 훨씬 더 젊고 건강해 보였다. 사람을 대하는 것도 관대했고 자유로운 기질을 소유한 이처럼 느껴졌다. 서예를 하는 분이니 반듯하고 꼿꼿한 정자체의 글씨 같은 사람일 것 같다고 생각한 막연한 편견이 대화를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아 깨져 버렸다.

소박한 바람으로 시작한 서예
이덕우 원장이 서예를 처음 시작한 것은 30대 중반의 일이다. 처음 시작은 제사에 쓰는 지방을 잘 써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그렇게 취미로 시작한 일이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져 어느덧 자신의 본업이 됐다.
그가 서예를 배우는 과정에는 남다른 면이 있다. 이덕우 원장은 20대 후반의 나이에 불의의 사고를 당했는데 이로 인해 병원 신세를 2년이나 졌고 그 이후에 마흔이 넘기까지 목발이나 지팡이 없이 걷기가 힘든 상황을 겪었다. 그는 이러한 신체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서예에 집중했고 그 과정에서 일가를 이루어 이제는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원장에게 서예를 배운 후 처음 10년 동안은 성과가 나지 않는 시기였다. 그 기간에 그는 강원서예대전에 해마다 꾸준히 출품했는데 입선만 한 번 했다. 주위에서는 글씨가 좋은데 왜 떨어지나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래도록 도전했는데도 수상 실적이 미미하면 낙담하기 쉽지만 그는 서예를 더 잘 하려고 끊임없이 고민했다. 잠시나마 위기가 있기도 했다. 서예는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서예를 관두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자신의 서예를 다듬을 방안을 찾기 위해 거듭 고심했다.

새로운 스승과의 만남
그러던 어느 날 서예잡지를 보다가 서예가 다민(茶民) 김홍석(金洪碩)에 관한 기사를 보게 됐고 서울로 그를 찾아갔다. 김홍석은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의 계보를 잇는 서예가이며 김응현의 제자인 초정 권창윤을 스승으로 두고 있다. 이 계보의 중심인물인 여초는 친형인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과 함께 20세기 후반 한국 서예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덕우 원장은 김홍석 서예가에게 그를 찾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주위에서 다들 자신에게 좋은 실력을 갖췄다고 하는데 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언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장차 미래의 스승인 다민 김홍석의 대답은 명쾌했다.
“글씨를 잘 쓰면 떨어트리지 않습니다.”
 당시 그는 그 말을 듣고 무척 부끄러웠다고 한다. 그날 이후 이덕우 원장은 서예 공부를 위해 서울로 다니게 됐다.
 이 원장은 서울에서 서예에 대한 안목을 넓게 틔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배움을 기반으로 지역에서 서예 발전을 위해 노력하자는 각오를 다졌다. 그는 새로운 스승과의 만남을 통해 드디어 전문적인 서예가의 길로 들어섰다.
다민 김홍석에게서는 붓을 사용하는 방법부터 다시 배울 수 있었다. 서예에서는 중봉(中鋒)이란 것이 있다. 이는 보통 글씨를 쓸 때 붓대를 지면에 수직으로 세우는 것을 뜻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서예가 김홍석의 생각은 달랐다. 지면에 수직으로 붓대를 세우면 정자체인 해서체 외에는 쓰기가 어렵다. 다양한 서체를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중봉에 대한 다른 관점이 요구된다. 모와 붓대가 일직선이 되는 것을 중봉으로 본다면 좀 더 자유로운 붓 사용이 가능하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런 중봉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덕우 원장은 중봉에 대한 스승의 관점을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지만 다른 이들이 이런 관점을 모르고 얘기하는 경우를 접할 때가 적지 않다. 그럴 때면 그는 괴로운 심정까지 든다고 한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중봉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따지는 것이 어째서 중요한지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서예는 현대 미술과는 달리 정해진 격식을 중히 여긴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논란이 발생하는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고행의 고개를 넘다
이덕우 원장은 16년의 시간 동안 서울을 오가며 서예를 공부했다. 적어도 한 주에 한 번은 서울로 갔고 대한민국 미술대전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두세 번씩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몸이 불편한 이들을 위한 시설과 배려가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 장거리를 오가며 배움의 열정을 불태웠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노력이 놀라워 보인다. 시외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이용해 스승이 있는 서울 합정동까지 가는 길은 그에겐 작은 고행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배움의 길은 쉽지 않았다. 이 원장은 당시 서울에서 열 개를 지적받고 속초로 돌아오면 세 개 정도만 기억이 났다고 한다. 서울을 오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 학습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스승의 가르침이 기억나지 않으면 고통스런 반추의 과정이 계속됐다. 그럴 때면 너무 괴로워 붓을 놓고 싶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과정을 이겨냈다.

<다음에 계속>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이덕우
·대한민국 동양미술대전 우수상, 초대작가
·대한민국 서예술대전 초대작가
·강원서예대전 우수상, 초대작가
·대한민국 서예대상전(전국학원연합) 대상, 초대작가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 입선 4회
·강원서예대전·강원미술대전 운영위원 및 심사
·강원미술대전 서예부문 운영위원장
·속초문화원·속초교육문화관 출강
·해정서예연구원 원장
해정서예연구원 이덕우 원장.
서실의 한쪽 벽에 있는 ‘하심함소(下心含笑 - 마음을 낮추고 얼굴에는 미소를 띠다)’라는 작품이 마치 회화와 같은 조형미를 뽐내고 있다.
서예를 지도하고 있는 이덕우 원장.
시절인연(時節因緣) - 모든 인연에는 오고가는 시기가 있다.
 

설악신문 (soraknews@soraknew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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