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의 역사는 생산과 소비를 위한 자본주의 도시가 그 한계를 맞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시쇠퇴 현상은 근대 이후 도시화의 문제와 부작용에 대한 성찰과 대응방안을 찾게 만들었다. 유럽은 불황과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과감한 도시재생 정책을 실천하게 된다. 그 첫 번째는 도시의 정체성이다. 도시의 정체성에는 그 도시 고유의 문화와 삶, 산업, 경제가 있다. 마중물은 예술과 생활문화 프로젝트였다. 197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매력적인 장소만들기’는 커뮤니티 아트와 함께 탄생했다. 1980년대 유럽의 도시재생에 예술 프로젝트가 동시에 추진된 이유도 마찬가지다. 예술과 생활문화는 도시의 산업, 문화, 예술 등의 분야가 활성화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정체성이 도시 경쟁력 강화의 강력한 수단이고 도시의 창의성은 문화예술을 통해 극대화 된다.
한국의 도시재생은 유럽의 성공사례에서 시작한다. 도시쇠퇴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인 셈이다. 그러다보니 개발업자들이 폐산업시설이나 유휴공간을 활용하는 사업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2014년 이후 시작한 도시재생 사업의 성공사례만큼이나 실패사례 혹은 우려가 나오는 것은 문화적 도시재생에 대한 철학의 부족과 비전의 결핍 때문이다. 이에 대한 가장 명쾌한 정의는 이원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의 다음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금 길지만 인용해 본다.
“도시재생에서 폐사업시설이나 유휴공간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것은 생태적인 자원순환, 역사문화적인 정체성을 중요하게 고려했기 때문이다. 도시재생 과정에서 문화기획, 예술가 등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물질적인 공급이나 생산보다 창조적인 상상력과 미래지향적인 가치 그리고 공유적 행위를 지향한 결과다. 그리고 교육은 새롭고 가치지향적인 시민 주체의 형성과 다음 세대에 대한 고민 속에서 도시재생의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제 현대 도시에서 도시재생은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개념으로 문제해결이 필요한 지역에서 물리적, 환경적, 사회경제적 환경 여건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통합된 비전과 행동양식’으로 정의된다. 단순한 도시개발, 도시정비, 도시경쟁력이라는 접근이 아니라 도시를 둘러싼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바로 도시재생이다.”
구 속초수협, 청초호변 도시재생 구심점
속초의 도시재생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까.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도시재생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대부분 속초의 도시재생 장소로 구 속초수협과 갯배 일원,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청호동을 비롯한 청초호변을 말한다. 속초 수산업의 상징공간을 활용한 도시역사공간의 재구성이 가능하다. 속초관광수산시장 등 특정공간으로 몰리는 관광객을 속초 전역으로 확대할 수 있으며 골목길 경제도 가능하다. 또 다른 곳으로는 영랑동, 동명동, 속초시외버스터미널과 영랑호도 말한다. 일제시대부터 1970년대까지 속초 경제의 중심이었다. 영랑호는 생태자원이자 조선시대 선비들의 유람장소이며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격전지였다. 동명동 성당과 감리교회에는 근현대 속초시민의 삶이 묻어난다. 속초리성지와 영금정의 역사성, 속초등대의 풍광, 영랑동 1구 시장 인근 근대건물과 골목 등 매력적인 요소가 많은 곳이다.
하지만 구 속초수협은 로데오거리부터 이어지는 주차난이 문제이며 속초관광수산시장과 갯배 선착장이 가장 뜨거운 관광지가 되었다. 속초항 옛부두길에 건설하고 있는 힐스테이트 등 투기자본도 들어온다. 영랑동 일대도 투기 자본이 땅을 매입하여 주거용 건축을 하겠다는 이야기가 많다. 투기자본의 등장은 자연환경과 풍부한 수산물로 도시기능을 가져온 속초를 다른 지역과 비슷한 문제를 겪게끔 만들겠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속초의 도시재생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이유이다.
도시재생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군산과 부산이다. 군산은 근대산업유산을 벨트화하여 지역문화재생사업을 실시했다. 일본이 남긴 근대건물을 거점으로 전시 및 공연, 예술 및 창작공간 등 문화적 인프라를 조성하여 원도심을 활성화했다. 방치된 건물의 문화적 활용 결과 근대도시 군산이라는 새로운 정체성과 가치가 발견되었다.
부산은 산복도로 르네상스라는 이름의 도시재생 사업을 수년간 펼치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난민의 유입으로 자연스레 형성된 산복도로는 도시빈민 거주지였다. 이 사업은 부산 서구와 동구, 중구 일대의 산복도로에 담긴 다양한 역사문화적 가치와 정체성을 발굴하여 주민 삶의 질을 높이고 문화적 혜택을 높일 수 있도록 추진되고 있다. 일본인 무덤에 집을 지은 비석마을, 태극도인들의 공동체 공간에서 세계적인 골목예술을 선보이고 있는 감천문화마을, 지역의 문제를 협동조합 등 다양한 가치로 녹여내고 있는 초량 이바구길 등 산복도로 르네상스는 도시재생의 새로운 해법을 보여주고 있다.
구 속초수협 중심의 문화적 도시재생은 고층건물 위주의 부동산 투기를 잡고 속초 고유의 가치를 지역경제 선순환 구조의 핵심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구 속초수협의 문화적 활용에 대한 이야기는 ‘수산업 박물관’, 공연장, 전시장 등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의 활용이다. 구 속초수협 본관과 냉동창고를 제외한 공간은 전면철거 해도 좋다. 본관과 냉동창고는 건물신축보다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전부 혹은 일부 보존해야 한다. 근대문화유산으로 될 수도 있고, 일부 보존했을 때 미디어 노출 및 스토리텔링의 경제적 효과가 더욱 높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단일 건축물 보존, 주변과 연계 재생
구 속초수협의 문화적 활용에 대한 시사점은 홍콩 성완풍 재생사업과 웨스턴마켓이다. 이 사업의 특징은 지역재생 사업의 구심점으로 역사건축물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웨스턴마켓은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건축물로 중국인의 상업활동 공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다른 건물처럼 쇠락하고 시장의 기능이 줄어들자 1980년 1개 동을 철거하고 1989년 나머지 1개 동도 시의회가 철거를 결정했다. 하지만 홍콩 당국은 1990년 웨스턴마켓을 법정기념물로 지정하고 1991년 1차 수선하여 재개업을 하도록 했다. 10년이 지난 2002년부터 성완 재활성화사업을 위한 시민 워크숍을 개최하고, 지역발전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했다. 입찰을 통해 웨스턴마켓 수선 및 관리 업체를 선정하고 도시재생국은 성완퐁 사업 착수를 발표한다. 웨스턴마켓은 총 4층으로 건축 외관은 살리고 내부 공간은 현대 용도에 맞게 리노베이션을 했다. 1층은 골동품가게, 버스 모델샵, 미니어처 등 옛 추억을 환기하고 포토존으로 쓸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2층은 직물거리로 재개발사업에서 밀려난 직물상점들을 이전해 왔다. 3층은 지역적 특색이 강한 중국 전통음식점이 입점했고, 4층은 예술품 거리로 구성했다. 이 사업의 특징은 웨스턴마켓을 중심으로 그 주변 지역을 연계해 재생했다는 점이다. 다목적 공공 공간인 성완퐁 광장을 조성하고 웨스턴마켓과 광장 주변의 보행환경을 개선했다. 추진주체도 도시재생국이 총괄감독을 하고 문화재 자문위원회, 의회, 기타 행정조직과 주민조직이 사업의 시작부터 끝까지 협업을 했다. 예산 역시 중복되지 않도록 도시재생국, 도로교통부, 내무부, 중서구 의회 등 각 부서의 자체예산을 공동부담하였다. 그 결과 성완 지역 일대 재생사업의 촉매역할을 하고 사회적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며 약화된 상업중심지의 정체성을 회복했다. 성완풍 재생사업은 단일 건축물 보존의 경우 주변 지역 연계 재생을 통해 건축물의 가치를 주변 지역으로 확대할 때 효과적임을 보여준 사례이다.
구 속초수협의 역사적 가치는 속초 수산업의 상징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가치를 공공미술과 디자인으로 현재화 할 수 있다. 본관과 냉동창고의 보존을 위한 용역을 착수하여 건물의 안전도를 마련하고, 청초호변 도시재생 구심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복합공간으로 만든다. 투기자본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중요장소의 건축물은 도시재생사업으로 매입하거나 건물주에게 지원하여 도시재생의 거점으로 활용해야 한다. 활용도에 대한 의견은 주민공청회와 워크숍으로 마련해야 한다. 다만, 과거 속초 수산업의 활황에 기대 속초로 이주한 주민들의 노력이 속초시의 출발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청초호변을 청년창업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지구단위 계획도 좋을 것이다. 성완풍 재생사업의 성공은 구 속초수협을 단순한 역사적 건물이 아니라 도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재생의 거점공간이 되도록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인섭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홍콩 웨스턴마켓 : 웨스턴마켓은 홍콩 성완풍 재생사업의 구심점으로 활용되었다. 역사적 건축물의 단일보존보다 인근 지역과 연계된 재생사업을 할 때 효과적임을 보여준 사례이다. 구 속초수협 역시 단일 건물의 보존이 아니라 청초호변의 문화적 재생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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