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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작업실<8> – 소울씨어터 남호섭 대표(하)
어둠 속의 배우, 사람은 있다
등록날짜 [ 2018년09월10일 11시46분 ]

남호섭 대표가 대학에 입학한 해의 어느 가을날이었다. 자고 일어났는데 왼쪽 눈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빛을 보면 잔상이 심하게 남았다. 전날 술을 마신 터라 그 때문인가 싶어 더 잤다고 한다. 그런데 좀 더 자고 일어났는데도 그 증상들이 없어지지 않았다.
처음에 병원에서는 이런 증상은 며칠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며칠간 상태를 지켜봤다. 그러나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그는 다른 병원들을 찾아가 다양한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다른 병원들도 그의 왼쪽 눈에 대해 명확히 이야기하지 못했다. 원인을 제대로 모르기에 치료도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의 병명은 포도막염이었다. 포도막염은 안구 내의 포도막과 그 주변에 생기는 염증을 총칭하는 말로, 그 발생 원인도 다양하며 이 병의 절반 정도는 원인이 불분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왼쪽 눈은 점점 심각해졌다. 얼마 안 가 그의 한쪽 눈 속엔 태양이 떠 있고 벌레가 날아다니며 지렁이들이 꿈틀댔다.
 
영화 ‘마이웨이’ 출연, 계약 앞두고 포기
그는 2007년에 대학을 휴학하고 속초로 돌아왔다. 그러나 왼쪽 눈이 완전히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기에 연극을 놓아버리진 않았다. 그는 극단 굴렁쇠에서 활동했고 한편으로는 10대 시절처럼 댄스팀에서도 활약하며 자신의 재능을 펼쳤다. 극단을 통해 속초여고, 속초고 학생들의 연기를 지도했고 동광농공고에는 직접 수업을 나갔다. 그가 휴학을 하고 속초로 돌아온 이후 잠시나마 그에게 희망이 비치는 듯했다.
그러나 이듬해 <라이방> 공연을 준비하면서 오른쪽 눈에도 이상이 생겼다. 오른쪽 눈마저 나빠지기 시작하자 그는 다시 절망에 빠졌다. 매일 죽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술을 마시고 거칠게 행동하기도 했다.
그러다 그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자신의 두 눈이 완전히 멀어버리기까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에 학업에 열중하기 위해 2009년 학교로 복학했다.
2009년은 바쁜 한 해였다. 1주일에 하루도 쉬지 못하기도 했다. 그는 속초와 서울 대학로, 단국대가 있는 용인을 오갔다. 속초에서는 굴렁쇠에서 강원연극제를 준비했고 대학로에서는 <D-day>를 공연했다. <D-day>는 2차 세계대전 때 한국인이 이역만리에서 독일군이 된 것에 관한 내용을 다룬 작품이다. 이 이야기는 후에 소설과 영화로도 나왔다. 영화는 강제규 감독의 <마이웨이>이다. <D-day>는 모노드라마로 혼자 극을 이끌기에 쉽지 않았지만 그는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대학에서는 자신이 참여했던 작품이 연말 학과 투표를 거쳐 작품상, 연기상, 연출상을 수상했다.
다음해에 그는 영화 <마이웨이> 오디션을 봤다. 1·2차 오디션까지 통과하고 계약을 앞두기까지 시간이 상당히 소요됐다. 그 사이 그의 눈은 더 나빠졌다. 영화사에서 계약을 제안했지만 그는 고민을 하다가 어쩔 수 없이 계약을 거절했다. 그가 맡으려고 한 역할은 이제는 메이저 상업영화에서 확고하게 주연급이 된 배우 김인권이 맡았다. 표면적으로 보면 영화 데뷔에 실패했지만 그는 자신의 눈이 나빠진 상황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만주전선’ 준비하며 대부분 시력 잃어
2011년 남호섭 대표는 소울씨어터를 창단한다. ‘소울’은 소통과 울림의 약자로 소통과 울림으로 영혼의 감동을 이끌어내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긴 이름이다. 소울씨어터에서는 연습과 새로운 시도에 중점을 뒀다. 돈을 버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연습실에서 거의 매일 합숙을 하며 연극 준비에 몰두했다. 마당극, 풍물, 탈춤, 한국무용 등 연기와 관련된 것은 단원들이 함께 익혔다. 극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 역사 공부도 했다. 좋은 연극을 위해서는 사회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신문을 읽으며 시사 공부도 함께 했다. 소울씨어터가 무대에 올리는 한 편의 극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남 대표는 2013년에 제12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오징어>란 작품으로 연기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그리고 영화 <해무> 출연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오른쪽 눈을 치료하고 요양을 해야 해서 이 영화도 놓쳐 버렸다.
그는 올해 거의 대부분의 시력을 잃었다. 강원연극제에서 자신에게 최우수연기상을 안겨준 작품 <만주전선>을 준비하면서이다. 그는 두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없게 됐지만 <만주전선>을 중단하지 않고 무대에 올렸다. 그는 눈의 상태가 악화된 이후 주로 앉아서 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다른 배우들과 함께 뛰며 호흡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작품이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랬기에 더 치열하게 임했고 좋은 결과를 얻었다.
소울씨어터 남호섭 대표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면 그는 일찍부터 두각을 드러낸 배우이다. 그러나 그만큼 너무 일찍 그에게 큰 제약이 주어졌다. 그의 눈이 괜찮았다면 지금쯤 그는 속초가 배출한 명배우로서 영화계도 넘나들며 주목받고 있을 것이다. 그가 이제 겨우 30대 중반이기에 그가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둘러싼 제약 조건에도 불구하고 연극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는 소울씨어터 단원들의 역할이 크다. 소울씨어터 단원들은 매일 남 대표의 집을 찾으며 남 대표와 함께 한다. 그에게 시력은 없지만 사람은 있다.
한 배우가 어둠 속에 있다. 그러나 어둠 속에 갇혀 있지는 않다. 그의 두 손을 누군가가 붙잡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손은 또 다른 이들과 연결돼 있다. 그렇게 모인 이들이 소울씨어터이다. 소울씨어터의 중심에는 남호섭 대표가 있다.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모노드라마 <D-day>(2009).
남호섭 대표의 옆에는 항상 소울씨어터 단원들이 함께한다.
올해 강원연극제에서 남호섭 대표에게 최우수연기상을 안긴 <만주전선>.
 

설악신문 (soraknews@soraknew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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