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어. 6·25전쟁 때 헤어진 형이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니….”
지난 9일 오전 속초시 노학동 포레스건설(주) 사무실에서 만난 장구봉(82, 사진) 회장은 며칠 있으면 지금까지 죽었다고 생각하고 가슴 속에 묻어왔던 형을 70여년 만에 만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했다.
“지인이 형의 이름인 ‘장운봉’ 씨를 아냐고 물었을 때는 순간 정신이 멍했어, 지금까지 가슴 속에 묻어 왔던 형의 이름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들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까.”
하지만 상봉 일이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그의 가슴 속은 형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장 회장은 형 장운봉 씨의 이산가족상봉 신청으로 오는 24~26일 금강산에서 만난다.
형 장 씨는 남쪽에 있는 동생 장구봉 회장과 어머니(99년 작고), 누나(90)를 만나려고 상봉을 신청했다. 장 회장은 이번 상봉에 거동이 불편한 누님을 모시고 갈 계획이다.
장 회장은 “처음 형님의 생존 소식을 들었을 때는 한동안 정신이 멍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형님이 어떻게 변했을까, 가족은 어떻게 될까, 별의별 상상에 깊은 잠을 들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장 회장이 형 운봉 씨와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은 6·25전쟁이 한창인 지난 1950년 가을 무렵이다. 인천상륙작전으로 국군과 UN군이 38선을 넘어 북진에 나설 때이다.
인민군이 후퇴하고 국군이 북진하면서 공산치하에 있었던 논산리마을(현 조양동) 남성들은 자연히 피난길에 오르게 됐다. 당시 장 회장의 형 운봉 씨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같은 마을에 살던 중학교 담임선생님을 잠깐 만나러 가겠다고 나간 뒤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게 됐다. 운봉 씨의 나이는 17살이었다.
그 이듬해인 1·4 후퇴 때 북쪽으로 피난 갔다 논산리마을로 내려온 마을주민으로부터 “피난과정에서 비행기 공습으로 형 운봉 씨가 있던 곳이 초토화 됐는데 그 이후 담임선생님과 형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소식이 가족들에게 전해졌다.
그후 장 회장 가족은 더 이상 형의 소식이 들리지 않자 비행기 공습으로 죽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70여년간 가슴에 묻고 살아왔다.
오매불망 자식의 생존 소식만을 기다려 왔던 어머니는 지난 1999년 끝내 눈을 감았다.
장 회장은 “형의 생존 소식을 들으니 어머니가 눈을 감으면서 ‘형이 살아있으면 꼭 연락이 올 것’이라고 하셨던 말이 새삼 절로 생각난다”며 “형의 생존 소식을 듣지 못하고 눈을 감은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상봉일이 보름 앞으로 다가오자 장 회장은 북쪽 형의 가족들에게 전달할 선물을 준비하며 만남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장구봉 회장은 “두 번 다시 우리 후손들에게는 이런 비극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며 “빨리 남북이 통일 돼 이산가족의 아픔이 모두 사라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명진 기자 mjgo05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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