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고등학교는 이달 초 고성에서 열린 제73회 ‘전국남녀종별 배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우승을 놓쳐 다소 아쉽지만 그 내용을 보면 준우승만으로도 주목할 만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이 대회 우승팀인 경북사대부고 주전 선수들의 신장이 190~200cm인데 속초고는 190cm를 넘는 선수가 한 명밖에 없었다. 속초고는 탄탄한 조직력과 수비로 결승까지 오르는 저력을 발휘했다.
속초고의 이번 준우승에는 또 다른 동력이 있다. 3학년 송민근 선수다. 송 선수는 공격수인 윙스파이커로 나서서 뛰어난 실력과 영리한 경기 운영으로 장신 선수들의 방어를 뚫어냈다. 또한 60~70%가 넘는 리시브 성공률로 뒷문을 든든히 지켜 이 대회의 수비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송민근 선수에 대한 놀라운 사실이 있다. 키가 168cm라는 것이다.
작은 키 만회하는 장점 지녀
배구는 선수의 신장이 실력에 큰 영향을 끼친다. 키가 크면 블로킹에서 유리하고 공격에서는 상대의 블로킹보다 더 높은 곳에서 스파이크를 내리꽂을 수 있다. 키가 실력과 상관관계가 큰 점은 배구가 다른 인기 스포츠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점이다. 운동 경기 중 많은 종목에서 장신이 특별히 유리하지는 않다. 가령 축구는 선수의 신장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뛰어난 축구선수 중에는 마라도나, 호마리우 등과 같이 170cm가 되지 않는 선수가 많고 현존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로 불리는 리오넬 메시도 키가 그 정도이다. 신장이 중요하다는 농구에서도 3점슛, 가로채기 등 단신 선수가 공격에 기여할 방법은 많다. 하지만 배구는 선수의 실력에 있어 신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운동보다도 막대하다. 우선, 키가 작으면 상대의 블로킹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
속초고 조길현 감독은 송민근 선수의 점프력이 자신이 지도한 선수 중 가장 좋다고 호평했다. 여기에다 그저 강하게 때리기보다 상대의 허점을 찌르는 노련한 모습을 아낌없이 칭찬했다. 이와 같이 송민근 선수는 키를 만회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송 선수가 배구를 시작한 것은 가정환경 영향이 크다. 그의 부모는 속초의 배구동호회에서 오래도록 활동을 했다. 어릴 때부터 그 모습을 보아 온 송 선수는 자연스럽게 배구와 가까워졌고 교동초교 때부터 선수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는 중학교(설악중) 때까지 수상 경력도, 우승 경험도 없었다. 그저 가능성이 큰 선수였다. 중학교 때는 고비도 있었다. 우승도, 수상도 못 해본데다가 키가 작아 배구를 관두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송 선수를 어릴 적부터 지켜본 조길현 감독과 중학교 은사인 임영일 속초고 수석 지도자는 그의 결심을 말렸다. 이때 이들의 만류가 없었다면 뛰어난 재목이 두각을 드러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대학서 리베로로 전향 예정
“송민근 선수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어요. 전국체전 8강전에서 경기 도중 펑펑 운 적이 있었죠. 전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죠. 그런데 그 대회가 끝난 후 민근이가 달라졌어요. 한동안 새벽 3시까지 혼자서 연습에 몰두하더니 그 이후 엄청나게 발전했어요. 팀의 주축이 됐고 배구계의 많은 관계자들이 주목하는 선수로 거듭났어요.”
임영일 코치는 그가 그토록 기대했던 송 선수의 가능성이 활짝 피기 시작한 때를 그렇게 기억했다.
송 군은 앞으로 대학에 가서 수비만 전문으로 하는 리베로로 전향할 예정이라 한다. 공격도 뛰어나지만 자신의 큰 장점인 수비에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전 제 키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요.” 송 군은 키 얘기에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좌우명이 뭐냐는 물음에 “지금 최선을 다하자”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 오지 않잖아요.” 단순하지만 명쾌한 답변이었다.
송 선수는 앞으로 많은 이들의 기대와 예상대로 배구계를 뒤흔들어 놓을 것이다. 물론 아직은 어린 송 선수 앞에 여러 관문들이 놓여 있다. 대학 진학과 프로팀 입단 같은 난관들이 버티고 있다. 하지만 현재 송 선수의 성장 속도로 본다면 그 관문들을 돌파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듯하다. 이광호 객원기자 campin@hanmail.net
속초고 송민근 선수(중앙)와 조길현 감독(왼쪽) 임영일 수석지도자(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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