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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머구리 박명호의 살아온 이야기<8> - 탈북 준비, 그리고 탈북
마침내 북한을 벗어나다
등록날짜 [ 2018년04월16일 12시01분 ]

박명호 씨는 연대 정치지도원의 눈 밖에 나서 대위에서 상위로 강등됐고 중대장에서 소대장으로 강직됐다. 거기에다 이원에서 풍산으로 쫓겨났다. 이때 그는 아내에게 탈북 얘기를 꺼냈다. 그런데 아내는 박 씨가 복권될 거라면서 탈북을 거부했고 풍산에도 함께 가지 않았다.
박 씨는 풍산에 혼자 가 있는 동안 군 복무에 대한 의지가 약해져서 군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이 흐르자 상부에서 제대명령서가 떨어졌다. 한때 능력 있는 군인으로 인정받던 그가 군인으로서 20년이 다 되어 가는 때에 그렇게 제대했다. 그때가 2000년이었다.
그러나 그는 군대를 떠나지는 못했다. 그의 능력을 아깝게 여긴 이원의 원 소속부대 연대장이 그에게 새로운 일을 제안했다. 연대의 해상부업기지 기지장을 맡아 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그 사이 그의 처벌을 주도한 연대의 정치지도원도 제대를 한 상황이었다.
 
탈북 결심 후 1차 시도는 실패
해상부업기지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한 그는 직접 잠수복을 입고 바다로 들어가서 해산물을 채취했다. 잘 할 줄 모르는데도 스스로 요령을 터득해가면서 거의 매일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이 잘 풀렸고 부대에서 다시 박 씨에게 기대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상부로의 공식 상납도 잘했기에 그에 대한 신망도 두터워졌다. 그런데 탈북을 결심한 그에게 이런 신망이 오히려 걸림돌이었다. 일을 관두려고 해도 주위의 기대가 있어 관두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4년이 흘렀다.
그런데 부모를 모시던 동생이 뜻밖의 사고로 명을 달리하자 그는 황해도에 있는 부모를 모신다고 둘러대며 사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전 재산을 털어 트럭을 샀다. 서해안에 있는 부모에게 이사를 가기 위함이었다.
군인이었던 부친은 제대 후 황해도의 한 기업에서 당비서를 맡고 있었다. 그는 부친을 설득해 함께 탈북하고자 했다. 나아가 일가친척을 다 데리고 탈북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의 꿈은 부친에서부터 틀어지고 말았다. 박 씨는 부친을 1년 동안 설득했지만 부친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부친은 북한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박 씨의 생각에 동의했다. 하지만 부친은 자신이 평생을 바쳤던 사회주의 조국을 배반하지 않고 지키겠다고 말했다. 이에 박 씨는 탈북은 ‘배반’이 아니라 ‘선택’이라 답했다.
차마 부친이 있는 곳에서 탈북을 할 수 없었던 그는 옹진으로 다시 이사했다.(사람들이 혼동할 수 있겠지만 북한에도 옹진군이 있다.) 그때 아이들의 주민등록을 말소시켜 놓았다. 탈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옹진에서는 반토굴에서 살며 직접 배를 만들었다.
그런데 탈북을 위해 준비하던 그에게 돌발변수가 생겼다. 어떻게 알았는지 호위사령부에서 박 씨에게 사령부 예하의 수산사업소에서 일할 것을 제안했다. 이원의 해상부업기지에서 일하던 시기에 김정일 생일 때 북방대합 상납을 잘했는데 아마도 이때의 공적이 호위사령부에까지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호위사령부는 박 씨에게 수산사업소 당비서를 맡을 것을 요구했고 그와 그의 가족이 살 집까지 마련해뒀다. 그는 수산사업소 일을 맡을 수밖에 없었지만 탈북계획이 들통날까봐 이사는 거절했다.
박 씨는 수산사업소에서 일하면서도 한편으론 배 만드는 일에 열중했다. 자신이 머물던 반토굴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손으로 선반을 돌려가며 배를 만들었다.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도록 배의 높이를 최대한 낮췄고 밤에 관찰하기 어렵게 쥐색을 칠했다.
해군 경비정의 동태를 살폈고 경비정이 정박하는 곳이 어디인지도 파악해 뒀다. 2006년 4월, 드디어 탈북일자가 정해졌다. 4월 25일 북한의 건군절을 앞두고 24, 25일 이틀 동안 군인들이 쉬었기에 23일 밤 10시를 탈북일자로 잡았다. 23일, 아내는 짐들을 배로 옮겨 실었다. 박 씨는 남쪽에 가면 그 짐들이 다 필요 없을 거라며 말렸지만 아내는 그래도 모르는 일이라며 ‘이삿짐’을 챙겼다.
배를 타고 작은 섬들을 돌아서 가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눈앞에 연평도가 보이기 시작할 때쯤 해가 뜨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 밝으면 북한 경비정에 발각될 수도 있었기에 배를 돌려 북으로 돌아갔다. 1차 시도는 그렇게 실패였다.

중국 어선 무리 속 통과해 남하
바로 그다음 날 박 씨는 업무를 보기 위해 평양에 출장을 가야 했고 보름 동안이나 평양에 머물렀다. 박 씨는 평양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혹시 누가 자신을 잡으러 올까봐 두려웠다고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5월 말이 됐다. 이날은 오전부터 짐을 배에 옮겨 싣고 낮 12시에 출발했다. 그러나 너무도 환한 대낮이었기에 한동안 배의 운행을 멈추었고 밤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 밝은 아내가 앞에서 감시를 서고 박 씨는 키를 잡았다. 출발 전날 정비를 받았으나 배에 물이 새서 큰 아들이 물을 퍼냈다.
한밤에 배를 몰고 가는데 바다 한가운데에서 밝은 빛이 보였다. 중국 어선들이 북한 수역에서 조업 중이었다. 박 씨는 자신의 배가 추적당하지 않도록 중국 어선 무리 속으로 파고들었다. 중국 어선들을 통과해 한참을 더 가니 큰 부표들이 눈에 들어왔다. 북한에는 큰 부표들이 잘 없었기에 그는 그걸 보고서 마침내 남쪽 바다로 넘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박 씨는 안심하지 않았다. 그는 남쪽 경비정도 경계했는데 해경들이 자신의 배를 적군으로 오인하고 잘못 대응할까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불안한 조짐이 있으면 배가 레이더에 잡히지 않도록 엔진을 끄고 이불로 선체를 덮어 두었다. 그렇게 그는 계속 남쪽으로 가서 육지에 닿기로 했다. 그때가 새벽 한 시였다.
<다음에 계속>
구술 박명호·정리 이광호 객원기자

 

이광호 (campin@hanmail.ne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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